짜장상한 이야기 그 두 번째 :-)

소년공원 2016.09.16 10:32 조회 수 : 270

월요일 저녁에 퇴근해와서 냉장고에 넣지 않아 상한 짜장 때문에 남편한테 한 마디를 듣고나니 두뇌 속이 하얗게 빛이 바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살면서 신경써야 할 분야의 넓이와 깊이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이다.

냉장고와 냉동실 안에 있는 식재료의 재고와 기원을 숙지하고 있어야 하고, 가족들의 저녁 식사를  결정해야 하고, 다음날 누가 도시락을 싸고 누가 안싸는지 파악해서 그에 맞게 준비하고, 코난군이학교 급식을 먹겠다고 하는 날이라도 마실 물을 싸주고 간식을 챙겨주어야 한다.

엄마이고 아내니까... 그런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일단 출근을 하고 나면 강의 준비를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젯밤에 학생들이 온라인으로 제출한 페이퍼와 교육계획안을 일일이 읽으며 코멘트를 달아주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이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할 것들을 정리해서 파워포인트를 만들어야 한다.

그 와중에 교생실습 지도로 인해 발생한 출장비 지급 서류를 기한에 맞추어 작성하고 제출하라는 이메일, 학생들 실습 성적 관리를 위한 담임 선생님의 연락처를 당장 제출해달라는 이메일, 차가 퍼져서 오늘 결석을 할 수 밖에 없다는 학생의 이메일... 등등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해야 한다.

학술지에 게재할 소논문은 벌써 일 년이 넘도록 내 머릿속에만 들어있고 진척이 없다.

다음 달에, 내년에, 혹은 내후년에 있을 각종 학회에서 논문발표를 하라거나 다른 사람의 발표를 들으러 오라는 초대도 빈번한데, 최소한 1박2일, 길게는 3박4일 일정으로 학교를 비우려면 나를 대신해서 강의를 돌봐줄 사람 구하는 것도 어렵고 어린 둘리양을 떼놓고 집을 비우기도 힘들어서 그냥 눈 딱 감고 지나간다.

여섯명의 교생이 실습하는 세 군데 학교를 어떤 동선으로 돌면 가장 효과적으로 참관을 하는 동시에 담임 선생님이 수업에 묶여 있지 않은 조용한 시간에 교생이 잘 하고 있는지를 의논할 수 있을까 생각해내는 것도 무척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는 유례없는 강진이 있었다는데 내 일가친척과 시댁 친척들이 대거 살고 계시는 지역이다.

오늘이 양력으로 몇월 몇일인지를 늘 기억하지 못해 서류에 싸인을 할 때 마다 날짜를 확인하며 살지만, 음력 날짜도 간간이 확인해야 추석이며 부모님의 생신 같은 날을 기억할 수 있다.

무늬만 맏며느리라 추석이라고 송편을 빚지도 않고 양가 부모님의 환갑이며 칠순에 미역국 한 번 끓여본 적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내 마음으로 '오늘이 아버지/어머니 생신이다...' '오늘은 얼굴 한 번 뵌 적 없지만 남편을 그렇게 사랑하셨다는 시할아버님의 기일이다...' 하고 기억만은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의 폐렴은 좀 나아졌는지...

민주당 혹은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교육정책과 법안은 어떻게 바뀔지...

그래서 그것이 대학 교육은 물론이고 내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유아교육과 초등교육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에 따라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정교수로서 해야 할 일...? 승진을 못하면 부교수로서 해야 할 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한 아너스 펠로우 교수로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과 하도록 기대되는 일...

한반도에 사드 배치는 한국에 계신 내 가족 친척 친구들과 미국에 사는 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어젯밤에 운동하며 봤던 스타트렉 에피소드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도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부작용이 있다.

 

아...!!!

나의 머릿속은 짜장에서 유아교육 학계를 넘어 국제 정세와 우주의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그 광대함이 대단하다!

그런데 이렇게 위대하고 방대한 생각을 하다보면 어이없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화요일 오전에 교생실습 학교를 두루 돌아보고 점심 시간이 다 되어서 연구실에 도착했는데 당연하게도 주차장에 빈 자리가 없고 건너편 동전 주차장에만 빈 자리가 그나마 한 두 개 남아있었다.

2달러를 넣으면 두 시간 동안 주차를 할 수 있으니, 일단 동전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두 시간 후에는 건너편 교수 주차장에 빈 자리가 생기겠거니... 그러면 그 때 차를 옮겨야지... 하고 생각하고 차를 세웠다.

(이 글을 읽는 남편님하, 내 다음부터는 같은 실수를 절대 안할테니, 부디 잔소리와 구박을 참아주시구려... 부탁하오... 싸랑해용... :-)

그리고 오후 다섯 시에 둘리양을 픽업하기 위해 퇴근을 하면서야 비로소 내 차가 오후 내내 동전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하게도 자동차 앞유리창에 30달러 벌금을 내라는 딱지가 붙어있었다.

불행중 다행이라면 학교 내 주차단속이라서 벌금이 많이 비싸지 않다는 점이었다.

사실은 거의 매일, 퇴근하기 위해 학교 건물을 나설 때마다 '오늘 내가 어디다 주차를 했더라?' 하고 멍청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견된 사건이기는 하다.

 

다음날인 수요일...

연달아 이어지는 세시간 짜리 강의를 하고 있는데 잠시 휴식시간 중에 이메일을 확인해보니 매월 초에 내야 하는 둘리양 어린이집 등록금이 무려 열흘이 넘게 연체되고 있었다며 벌금 5달러를 보태서 얼른 내라는 메세지가 와있었다.

ㅠ.ㅠ

이쯤 되면 내 두뇌내 신경전달물질 분비에 이상이 있거나 시냅시스 연결부위에 손상이 있거나 기타등등 신경학적 질환을 의심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제 목요일...

학과장과 면담일정이 잡힌 화요일 아침부터 틈틈이 면담 자료를 만들고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해서 내가 원하는 바를 얻어낼 전략을 짜고 있었다.

단 30분 만에 어떡하면 내 평가점수를 올려 받을 수 있을까?

우리 학교에 부임해온지 몇 달 안된 신임 학과장이라 이 사람의 성향이나 업무처리 스타일을 잘 알지 못해서 작전을 세우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학과장의 체면은 최대한 구기지 않고, 그러면서도 당신의 평가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야 하는데, 인정에 호소해야 할지,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짚어가며 접근해야 할지, 평가의 결과와 내 정교수 승진심사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지도 물어봐야 하고...

그래서 내가 말할 내용을 요점정리하고 내가 스스로 매겨본 평가점수 자료도 준비하고, 그런 후에 어제 짜장면 속상하다 글의 1편을 올였던거다 :-)

 

어제 면담 결과만을 말하자면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독자여러분들 께서는 일단 안심을 하시고, 다음 글을 기다려 주십사 부탁드린다.

지금부터는 회의에 들어가야 하고, 연달아 세 개의 회의를 참석한 다음에는 둘리양을 픽업하고,  장을 봐서 내일 코난군 축구경기에 들고가야 할 간식을 준비하고 김치를 담아야 하기 때문에 주말이 다 지나갈 때까지 다시 글을 쓸 시간이 없을 것 같다.

 

 

2016년 9월 16일

 

남편에게 추신:

주차 벌금 30달러는 어제 현금으로 냈다오.

힘들었던 나의 이번 한 주간을 긍휼히 여기어 부디 아무소리 안해주기를 바라오.

다음부터는 각별히 더욱 조심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