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04-03-2018

소년공원 2018.04.03 13:44 조회 수 : 178

너무 자잘해서 별 것도 아닌 일들이 너무 많이 쌓여서 넉다운 되었던 이야기

 

2018년 4월 3일

 

잘 하든 못 하든 이제 4주만 더 버티면 이번 학기도 끝이 난다.

지난 가을부터 두 아이들이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해서 스케줄이 간편해졌고, 두 아이들이 많이 자라서 내 손을 덜 필요로 하게 되었고, 심지어 다음세대 원고 쓰는 일도 그만두었으니, 사실상 지금은 아주 편안해야 할 때이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여전히 매일매일 발을 동동 구르며 살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신경써서 하는 일들이 중차대한 큰 일도 아니다.

머~~나먼 발치에서 대략 보자면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는 제법 중요한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고, 게다가 두 아이를 키우면서 맞벌이를 하는 형편이니 그저 좀 바쁘고 힘들겠거니...

너그럽게 봐주면 딱 그정도일 뿐이다.

그런데 내 하루하루 순간순간은 맨날 몇 분이 모자라서 동동거리고, 그 동동거림 가운데서 사고를 치고, 그러다 지치곤 한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머릿 속에서는 오만가지 자잘한 일에 신경이 분산되어 있지만, 그 오만가지를 다 나열하기에는 너무 사소한 일들이다.

그러니까, 각각의 일은 아무것도 아닌 개미 한 마리 만한 무게의 일이지만, 그 개미가 오만마리가 모여서 버글거리며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일단 직장에서 자잘한 일 몇 가지:

이번 학기라고 다를 것 없이 몇 명의 불성실한 학생들이 있다.

그런데 각자 사정을 들어보면 정말 딱하긴 하다.

알바를 짤리면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하니, 일하다가 수업에 늦게 되고 현장실습을 못가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과제를 제 때에 제출하지 않고 실습 시간을 채우지 못하는 학생이 아무리 딱해도 부실한 성과를 눈감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4학년 실습 세미나 과목에서는 온라인으로 함께 트레이닝을 받는 수업 내용이 있는데, 이 온라인 과정이 처음에는 기술적인 문제로 컴퓨터에서 제대로 실행이 안되는 문제가 있어서 근 3주 가까이 시간을 끌며 회사 기술진과 통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해야만 했고, 겨우 그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이제는 트레이닝 기간이 만료되었다며 더이상 접속이 되질 않았다.

이번에는 그 회사의 다른 부서 담당자와 이메일 전화를 여러 번 해서 겨우 2주의 말미를 더 얻어냈다.

강의 내용이 그 온라인 트레이닝인데 번번히 실행이 안되거나 접속이 안되니 강의 시간을 공으로 날려버리는 일도 왕왕 있었다.

학생들은 수업 안하고 일찍 파하게 되니 기분이 좋았을지 몰라도, 나는 내 잘못은 아니지만 수업을망치니 기분이 나빴고, 학생들의 등록금을 낭비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3학년의 실습은 정기적으로 지도를 나가지 않고 한 한기에 한 두 번 동료 교수와 번갈아 불시에 방문해서 잘 하고 있는지를 살피는데, 우리 아이들의 등교 시간이 늦다보니, 실습생이 지각하지 않고실습지에 도착하는지를 확인할 수가 없다.

미안한 마음 가득 안고 동료 교수에게 실습생 지각을 확인하도록 부탁해야 하는 것도 내 마음이 불편하다.

어제부터 가을학기 등록이 시작되었고, 그래서 지지난주부터 오늘 저녁까지 내내 등록 면담이 이어진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집단으로 시간을 잡아서 면담을 하지만 언제나 그 시간에 못오는 학생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래서 그들과 각기 시간을 잡아서 만나야 하는데 어린 학생들은 가끔 자기가 정해놓은 시간을 잊어버리고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다른 일은 없고, 오직 그 면담 때문에 아침 일찍 출근했는데 학생이 안나타나면 내 스케줄은 그렇게 또 한 번 꼬인다.

그렇게 안만나게 될 줄 알았더라면 아침에 집에서 설거지라도 해놓고 나올 수 있었을텐데...

아니면 당장 똑 떨어진 아이들 샴푸를 사들고 출근할 수도 있었을텐데...

아너스 학생들도 등록 기간 즈음에 면담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 학생들도 각기 스케줄이 다르다보니 두 번의 금요일을 집단 면담으로 잡아두었고, 그 때에도 시간이 안되는 학생들은 따로 이메일을 해서 약속을 잡아 만나고 있다.

한꺼번에 다 모아놓고 하면 좋은 공지사항을 각각의 학생을 만날 때마다 반복해서 하자니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너스 학생 지도 하는 일로 수업을 한 과목 면제받고 있고, 작지만 수고비도 받고 있으니,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대학원생 졸업시험에 들어가는 일로 한동안 바빴는데, 그 와중에 서류 전달이 제대로 안되어서 대학원 오피스에 전화하고 이메일하고 그래도 아직 서류를 못받았고, 그러다가 잘못하면 이 학생은  학위를 제 때에 못받게 생겼고...

비지팅 스칼러 선생님의 연구실이 갑자기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어, 부랴부랴 아랫층으로 이사를 했는데, 또 기나긴 사연으로 인해 어느날 갑자기 그 방의 모든 가구가 싹 빠지고 한명숙 선생님은 앉은 의자 하나 없고 컴퓨터 놓고 작업할 책상 하나 없는 상황에 빠지셨다.

학교 기물 관리실은 일주일에 단 이틀 그것도 오후에 두 시간 동안만 여는데, 겨우 시간을 내서 찾아가서 가구를 주문했다.

마침내 배달이 완료된 것은 2주 정도 지난 후였으니, 그 2주간 나는 계속해서 가구 배달이 어찌 되어가는지를 학과 비서와 연락해야 했다.

또한, 가구가 사라지는 사건과 동시에 한명숙 선생님의 이메일 계정도 함께 사라져서 인사부와 컴퓨터 기술부를 전화하고 이메일하고 찾아가고 하기를 도합 30여차례는 한 모양이다.

두 달 가까이 걸려서 마침내 정상복귀를 하고나니, 너무나 허무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해서 이룬 것이 기껏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었다니...

학교 인사부는 도대체 왜 멀쩡한 계정을 만료시켜버려서 나를 이렇게 오랫동안 고생을 시키는지, 그러고도 미안하단 말 한 마디가 없다.

오히려 매 번 전화나 이메일을 할 때 마다 내가 '도와줘서 고마워' 라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이 속상하다.

학과 회의때 마다 내 심기를 거슬리는 얄미운 동료 이야기라든가, 부설 어린이집의 위탁운영 회사와 원감 사이의 갈등 문제라든가, 은퇴하는 동료의 자리를 채울 신임 교수를 뽑는 과정에서 있었던이야기라든지, 유아교육의 새로운 전공을 개설하는데 지역 전문대와 의견조율을 위해서 새로운 과목을 개설해야 한다든가, 커미티에서 맡은 일 때문에 점심을 못먹고 미팅에 참석한다든가...

정말로 가짓수를 세면 이만 오천 가지 쯤은 되는 일이 있지만 여기서 줄이고 다음은 내 사생활에 관한 이만 오천 가지를 써본다.

노후 건강을 미리 준비하려는 이유로 매일 45분씩 트레드밀에서 운동을 하는데, 지난 봄방학 때  빠마를 한 이후로 자기 전에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면 아침에 머리 상태가 출근하기에 영 적절하지 못한지라, 아침잠 많은 내가 아침에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있다.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젖은 머리가 마르기 전에 젤을 발라서 손질을 하고, 가족들 도시락 준비도 하고 - 아침을 먹는 두 남자들은 알아서 자기 아침을 챙겨 먹으니 그나마 도움이 된다 - 아이들 등교 준비를 다그쳐가며 내 화장도 하고, 아이들을 등교시키면서 나도 출근을 한다.

아이들은 저마다 원하는 도시락 메뉴와 간식 메뉴가 다르고, 엄마가 아무거나 싸주는 것을 잘 먹지않는 편이라, 전날 저녁에 뭘 원하는지 미리 물어봐서 아침에 그에 맞게 준비해주어야 한다.

둘리양은 메뉴 뿐만 아니라 물병의 디자인이나 숟가락과 포크 조차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넣어주어야 한다 :-(

정해진 등교 시간은 8시 45분에서 9시 15분 사이이고 그 시간 안에만 학교에 도착하면 되지만, 코난군은 되도록 일찍 등교하기를 원한다.

그래야만 아침 자습을 제 시간에 마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8시 45분 전에 도착하면 학교 문이 안열린 상태이므로 45분에 딱 맞추어 최대한 일찍 데려다 주어야 한다.

그에 반해, 아침잠 많고 일어나는 것이 힘든 둘리양은 조금이라도 더 침대에 머물기를 원하고, 그러면서도 그 날 입을 옷은 자기가 직접 골라야 하니, 내가 무작정 아무 옷이나 억지로 입혀서 등교준비를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퇴근하는 길에 시간이 허락하면 장을 봐서 집에 오자마자 저녁식사를 준비하지만, 코난군의 바이올린이나 태권도 등등의 스케줄에 따라 어떤 날은 내가 반드시 둘리양을 픽업해야 하는 날이 있고,목요일은 저녁 수업이 있어서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저녁을 먹이는데, 8시 30분 혹은 더 늦은 시각에 집에 도착하면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밥을 먹는데 두 아이가 옆에 와서 말을 시키고 뭘 해달라고 하거나 한다. 부엌에는 온가족의 도시락통 설거지가 쌓여있고, 아이들의 외투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책가방은 반쯤 열려서 소파 옆에 있고 거기서부터 식탁까지 교과서나 공책, 과제물, 공지사항이 적힌 종이 등이 이어져 있다. 마치 헨델과 그레텔이 숲속에서 조약돌을 떨구어 놓은 것처럼 말이다 :-)

발바닥에는 항상 무언가가 - 주로 말라붙은 밥풀이나 작은 장난감 조각 - 밟히곤 하는데 그 느낌이 싫어서 청소기를 돌려야 하고, 가구 위에는 하얗게 앉은 먼지가 보기 싫어서 오래된 수건을 잘라놓고 물적셔서 닦곤 한다.

전기밥솥의 밥은 꼭 필요할 때는 밥이 없고, 안그러면 96시간동안 보온중이라는 메세지가 뜬다.

뚜껑을 열어보면 하얀 쌀밥이 아닌 노란 쌀밥이 가득 들어앉아 있다.

내가 부엌에서 일을 하는 동안에 내게 와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내 곁에서 각자 할 일을 하는 가족들 덕분에 식탁 위에는 언제나 아이들의 장난감, 학용품, 남편이 고치던 가정용품, 며칠 전에 배달된 우편물, 반창고, 시계, 먹다 남은 간식 등등이 놓여 있다.

그걸 다 치우지 않으면 밥상을 차릴 수 없으니, 일단은 옆에 놓인 상으로 다 옮겨두고 식사를 한 후에 시간이 허락하면 그 모든 잡다한 물건을 치운다.

빨래는 며칠째 미루다가 겨우 다 개어서 정리해서 넣어두면 바로 그 다음날 또 개켜야 할 빨래가 두 바구니 씩 생긴다.

코난군의 학교 견학에 어느 부모가 함께 갈지를 정하려면 각자의 근무 일정도 확인해야 하고 그에 따라 견학동의서에 쓸 내용과 지불할 비용이 달라지니 그것도 아무 것도 아닌 일이지만 신경은 쓰이는 일이다.

둘리양의 발레수업이 부활절에는 쉬니까 다른 날에 보충수업을 받으라고 하는데, 어느 날에 어떤 수업을 누가 데리고 갔다가 누가 데리고 올지를 정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신경 쓰이는일이다.

코난군의 검은띠 수여식은 지난 여름에 했지만 국기원에서 정식으로 단증이 와서 받게 되는 수여식이 또 있다며 행사 이틀 전에야 안내를 받았고, 그러면 여느 수여식 행사처럼 또 음식 준비를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도, 그래서 만두 50여 개를 빚어서 튀기는 것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신경 쓰이는 일이다.

매 주말마다 투빈이네와 우리집 그리고 가끔은 학교를 번갈아 가며 아이들 한국어 수업을 받는 것도, 한명숙 선생님께서 지도하시고 나는 보조나 할 뿐이지만,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신경쓰이는 일이다.

게다가 코난군이 요즘 사춘기가 시작되려고 그러는지 한국어 수업도 심드렁하고 다른 모든 일에도 의견을 물어보면 "아이 돈 노~" 하고 대답해놓고는 정작 엄마 마음대로 결정을 내리면 그에 대해 반항하는 일이 자주 있다.

그래서 한국어 수업을 정하는 일이 내게는 점점 스트레스가 되어가고 있다.

그 밖에도... 코난군이 영재교육 수업을 받은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에 누가 참석할 것인지 (남편과 나 둘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 때였지만, 부모가 아무도 오지 않으면 실망하고 풀죽을까봐 결국 남편이 강의를 취소하고 참석했다), 학교가 일찍 마치거나 부활절을 끼고 쉬는 날 동안에 친구한테서 초대를 받기도 하고, 친구를 집으로 부르기도 하고, 내가 학교에 데리고 오기도 하고, 온종일 아이를 데리고 있어준 아이 친구 엄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챙겨야 하고...

둘리양 샴푸와 머리 고무줄이 다 떨어져서 꼭 사야 하고, 내 립스틱도 바닥을 긁어서 사용하고 있은지 며칠이 되었고...

그 와중에 이명박이 구속되었으니 떡도 해먹어야겠고...

떡 본김에 제사지낸다고, 떡 만든 김에 82쿡에도 모처럼 글을 올려야겠고...

이렇게 오만가지 일들이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한꺼번에 오만가지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니, 가끔은 내 머리가 화산처럼 폭발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 하기에는 너무도 길고 너무도 사소해서 이렇게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