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벌써 한 달도 더 전에 시작된 일이 되었다.

코난군이 친구들 몇 명과 의기투합해서 코드 블랙 이라는 이름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몽고메리 카운티에서는 관내 모든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에게 크롬북 이라는 노트북 컴퓨터를 나누어 주고 일 년간 소지하게 하는데, 학교 수업 시간에 노트 필기용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집에 가지고 가서 숙제를 할 때 사용하게 하기도 한다.

우리집 아이들은 이미 자기만의 컴퓨터를 가지고 있어서 크롬북이 필요하지 않지만, 모든 아이들의 가정형편이 다 똑같지 않으니, 예산을 들여서 이런 혜택을 주는 것이다.

각 개인 학생에게 일년 간 대여된 크롬북 컴퓨터는 구글 어카운트도 연동되어 있어서, 아이들은 구글 문서 작성이라든지 인터넷 검색 등을 할 수 있다.

 

구글 문서 (Google Doc 이라고 표기한다) 라는 것은 온라인에서 문서를 작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 보통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아래한글이나 엠에스 워드 같은 프로그램과 흡사하지만, 온라인 기반이기 때문에 동시에 여러 사람이 하나의 문서를 작성할 수 있다.

그 장점 덕분에 우리 학교에서도 교수 회의록을 작성할 때 구글문서를 사용하곤 한다.

각자 자기가 맡은 업무에 대한 보고를 하나의 문서에 동시에 쳐넣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종이로 출력해서 복사해서 읽어볼 필요가 없고, 이메일로 첨부해서 각자 컴퓨터에 따로 저장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아주 편리하다.

 

21세기에 태어나고 날 때 부터 인터넷 환경 속에서 자란 요즘 아이들, 그 중에서도 늘 재미난 생각을 해내는 코난군과, 그와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은 이 구글문서와 크롬북 컴퓨터를 이용해 재미있는 놀이 하나를 시작했다.

코드 블랙 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기로 한 것이다.

처음 몇 개 챕터는 코난군이 쓰고, 그 다음 몇 개 챕터는 친구 아무개가 이어서 쓰고, 또 그 다음은 다른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를 쓰는 동안에 나머지 친구들은 동시에 혹은 나중에 시간이 허락할 때 구글문서에 접속해서 오자를 바로잡거나, 이야기의 세부적인 부분을 손보는 등의 편집 작업을 하기로 정했다고 한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만나서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과 결말 등을 의논하고, 저자는 그 의견을 반영해서 소설을 쓰도록 자기들끼리 정했다.

시작부터 모든 과정은 아이들끼리 주도해서 진행한 것이고, 부모인 내가 알게 된 것은 이미 며칠이 지나고나서였다.

내가 처음 그 소설을 읽을 때는 3장 까지 쓴 상태였는데, 코난군이 매인 작가였다.

 

아돌프 히틀러의 현조 손자인 프란츠 히틀러가 제 3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는데, 현조 (증조, 고조, 그 위의 조상이다) 할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미국의 상징인 13개 최초 식민주 (주로 미 동부 지역이다)를 먼저 공격했다.

그 공격 대상 중의 하나인 버지니아 주의 어느 마을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 여섯 명은 학교운동장에서 공습을 당하는데, 평소에 학교에서 시행하는 락다운 드릴 (학교 폐쇄 대피 훈련) 의 과정과 똑같이 선생님의 지도하에 대피소로 피난을 하는 와중에 주인공 여섯 아이들은 무리와 떨어지게 되는데, 전투기에서 투하된 폭탄이 다른 모든 아이들과 선생님이 대피한 건물로 떨어져서 모두가 죽고 여섯 아이들만 살아남게 된다.

네 명의 남자 아이들과 두 명의 여자 아이들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고 의논하고 결정을 내린다.

콜로라도 주에는 아직 비행장이 공격받지 않고 무사하니 그리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마국의 가장 서쪽 끝인 시애틀로 가서 거기에서부터는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로 피난을 가기로 했다.

그 여정 중에 랍 (Robert의 약칭인 Rob) 이라는 캐나다 군인을 알게 되어 위험에 처할 때 큰 도움을 받기도 한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기발한 생각을 해낸 아이들이 기특하기도 했고, 이 소설을 쓰지 않았더라면 온라인 게임이나 하며 주말 시간을 보낼터인데, 소설쓰기 덕분에 게임은 안하고 열심히 글을 쓰게 되어서 잘 되었다고 여겼다.

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니, 자기들끼리 정한 결말이 있지만 소설이 완성될 때 까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며 말해주지 않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구글문서를 업무 때문에 가끔 사용하는 나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세부 기능을 알아내서 글쓰기에 활용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요즘 애들은 이러고 노는구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한 두 주일이 더 지나갔고, 어깨 너머로 지켜보니 제법 많은 분량의 글을 써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여러 명의 아이들이 번갈아 글을 쓰니 지치거나 중도에 그만두지 않고 그렇게 방대한 분량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았다.

대략 30 페이지 쯤 썼을 무렵 문제가 발생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아이들 끼리 다음 장의 소설 내용을 의논하고 있는데 - 이 때 코난군은 영재반 수업을 받느라 그 자리에 없었다 - 담임인 그린맨 선생님이 크롬북 컴퓨터 화면에 떠있는 소설을 읽어보게 된 것이었다.

이 때만 해도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고, 소설의 첫 머리 부분을 읽던 그린맨 선생님이 이걸 누가 쓴거냐고 물었을 때 - 첫 일곱 챕터는 코난군이 매인 작가였으니까 - 한 목소리로 코난군이 썼다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 때 마침 영재반 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온 코난군...

 

그린맨 선생님은 코난군을 불러다놓고 어마어마하게 야단을 치면서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이 글을 다 지우라고 명령했다.

구글문서에 써 둔 글은 따로 다운로드 받아서 저장해두지 않은 이상, 지워버리면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그걸 아는 코난군은 몇 주일 동안 열심히 친구들과 함께 써온 글을 다 지우라는 말에 화가 나고, 야단을 치는 선생님이 무섭기도 하고, 도무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하기도 하니, 손이 떨려서 글을 제대로 지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옆에서 침울한 얼굴로 지켜보던 공동 저자 아이들이 도와주어 그렇게 코드 블랙 소설은 영원히 그존재를 소멸당하고 말았다...

 

글을 다 지운 후에도 그린맨 선생님은, 한 번만 더 이런 짓을 했다가는 퇴학을 당할 줄 알라며 꾸지람을 했고, 감수성이 풍부해서 원래 눈물이 많은 코난군은 엄청나게 울었다.

얼마나 울었으면 방과후 교실 선생님이 걱정이 되어서 코난군을 데리러 간 코난아범에게 귀띔을 해주기도 했다.

 

(아빠 추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자초지종을 들었는데, 무척 화가 났다. 화가 나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하지. 선생이 왜 지웠는지 설명을 했냐, 선생이 소설을 다 읽었냐고 물었고. 코난의 대답은 그냥 내용이 부적절해서라고 선생이 이야기해고, 한 페이지만 읽은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너는 잘못한 것이 전혀 없고, 내가 학교에 가서 따질 것이다고 했다. 코난은 내일 학교에 가야하냐고 물었다. 퇴학 운운하는 선생 때문에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일로 너를 퇴학시키는 일이 절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너는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당당히 학교에 가야한다고 이야기 했다. 다소 누그러지긴 했으나 코난은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나는 왜 계속 우느냐고 물었고, 그는 소설이 완전히 지워진 것이 너무 슬프다, 오랜 시간 동안 써온 그들이 노력이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아주 분개해 하고 슬퍼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나도 그 당시 이 부분에 대해서 가장 화가 났다. '도대체 뭐하는 거냐?' 속으로 이야기 했다. 집으로 가는 동안 일단 어떻게 지웠는지가 궁금했고, 복구가 가능할지 고민을 했지만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보면 아이들이나 선생이 지우는 방법을 잘 몰라서 다행지만 ) 일단 아빠가 복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거란 말에 누그러지긴 했다. 다른 부모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론 많은 다른 아이들도 소설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많이 울었단다. 정말, 이게 뭐하는 일인가.)

 

그 날 저녁에 늦은 수업을 마치고 귀가한 나에게 이 모든 일을 말해주는 코난아범 옆에서 코난군은 또 얼굴을 붉히며 한없이 울었다.

 

나의 반응은...

그걸 왜 다 지워야 해?

도대체 뭐가 문제야?

 

아이를 부당하게 야단치고 퇴학 운운하며 협박에 가까운 말을 한 그린맨 선생에 대해 코난아범은 아주 분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은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 코드 그레이 라는 시리즈로 이 일이 진행되는 과정을 쓰려고 한다.

그레이...

회색...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색이라서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쓰인다.

박쥐같은 사람을 말할 때 회색분자 라고 한다든지...

더러운 물을 그레이 워터 라고 한다든지...

 

아마도 이 글은 미국의 공립 초등학교 교사나 교장의 훈육에 대한 태도와 정의실현을 위한 가치판단의 애매모호함을 지적할 예정이므로 그레이가 아주 적절한 컬러 코드가 될 것 같다.

 

 

2018년 12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