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그레이: 결말은 해피 엔딩!

소년공원 2019.03.14 13:47 조회 수 : 242

남편과 타미의 아빠는 거의 넉달이 넘는 기간을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며 지속적인 싸움을 했다.

배움이 긴 사람들이라, 육탄전을 벌이는 싸움이나 감정을 앞세우는 싸움이 아닌, 고도의 심리전이자 장문의 이메일로 승부하는 싸움이었다.

몽고메리 교육구의 높은 양반들에게 이메일로 잘잘못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이메일을 보내고, 그에 대해 부정하거나 비판적인 답장이 오면, 그 답장을 또다시 짚어가며 반박하는 이메일을 보내고... 

그러기를 몇 달 끌어오면서 남편과 타미 아빠는 매주 일요일 낮에 커피숍에서 만나서 다음 작전을 의논하는 회의를 하기도 했다.

다른 학부모들은 아예 코드 블랙 사건 자체를 희미하게 잊어가고 있었고, 남편을 응원하던 나조차도 이제는 지겨워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난군 학교의 영어 수업 교재로 채택되었던 소설속 잔인한 장면과, 그런 잔인한 내용을 사전에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미리 알리는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학교측이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약점이 우리편에 유리하게 작용했고, 선출직 공무원에게까지 코드블랙 사건을 알리면서 절대로 뒤로 물러서지 않는 두 아빠들의 집요함에 마침내 교육구에서 한 발 물러서면서, 4월 말까지 코드블랙 소설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면, 학교 컴퓨터와 학교 구글 어카운트를 사용해서 글을 계속해서 쓰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단, 원래 소설을 쓰던 오리지널 멤버 아이들만 허락되고, 추가로 작가 영입은 안되며, 소설이 완성된 다음에는 각자의 컴퓨터에 저장하고 구글문서에 올라가있는 글을 지워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오리지널 멤버라고 교육구나 학교측에서 알고 있는 아이들 중에서 두어 명은 사실상 장난삼아 자기 이름을 구글 문서에 쳐넣었을 뿐, 소설쓰기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아이들이고, 대신에 그   명단에 이름이 빠져있지만 - 구글 문서는 온라인에서 실시간 수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건이 터지던 그 순간에 저자의 이름이 잠시 지워졌던 것일 뿐 - 실제로 소설을 함께 썼던 아이들은 여전히  글쓰기가 허락이 안된 것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을 목격한 다른 아이들이 이미 구글 문서로 소설 쓰기 놀이를 시작해서 다른 이야기들이 공동 창작되고 있는데, 왜 유독 코드 블랙은 구글 문서에 남겨둘 수 없고 창작이 끝난 뒤에는 없애라고 하는지, 뿐만 아니라 소설 첫 머리에 학교 건물이 폭격을 당하는 장면을 삭제하라고 하는 등, 째째하고 비이성적으로 자기들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는 안간힘이 보여서 만족스럽지도 않고 불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더이상 코드블랙 쓰기를 미루다가는 소설의 완성을 이루어내기가 힘들 것 같아서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코난군과 공동저자 친구들은 다시 즐겁게 저녁시간이나 주말에 구글 문서에서 온라인상으로 만나서 소설을 함께 쓰고 있다.

4월 말까지는 무난하게 결말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이 소설쓰기를 마무리 지으면 축하 파티를 열어주자고 의논했다.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가 싶었지만...

 

지난 1월 말부터 이 동네에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독감 증세를 보이며 아픈 환자들이 속출했는데, 코난군도 처음에는 그 희생자인 줄 알았다.

가족 중에 가장 먼저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학교갈 준비를 하던 코난군이 늦은 아침이 되어도 일어나지 못하고 두통과 인후통을 호소하는 일이 자주 생겼다.

체온을 재어보면 정상인데 머리가 아파서 앉아있지를 못할 정도이니 학교에 보낼 수가 없었다.

하루를 결석하고 집에서 쉬게 하면 괜찮아져서 다음날 학교를 보내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는 또 머리가 아파서 결석을 하고, 그렇게 격일로 등교를 하는 날이 2월 내내 이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코난군의 담임이 얼마나 막무가내로 학생들에게 무자비하고 불친절하게 구는지를 코난군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해야할 일을 모두 마친 코난군에게 연속적으로 왜 네 할 일을 안했냐며 야단을 친다든지 - 그 때 마다 코난군이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해도, 못듣는지 기억을 못하는지 잠시 후에 똑같은 야단을 또 반복했다고 한다 - 각도기 사용법을 아직 완전히 익히지 못해 (결석이 잦았으니 당연한 결과) 서투른 코난군을, 다른 모든 아이들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무안을 주고 윽박지른다든지 하는 식의 일이 거의 매일 있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코난군만 표적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 아이들 거의 모두에게 그렇게 못되게 군다는 점이었다.

담임이 그렇게 막무가내이니 교사에게 불만을 가진 학생과 가족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코드블랙 사건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더 센 한 방을 맞은 코난군은 그 이후 담임교사가 못되게 굴 때 마다 받는 정신적인 충격이 훨씬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심지어 이제는 시력조차 나빠져서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없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코난군의 눈 건강을 면밀히 살펴본 안과의사 (이자 우리의 친구이기도 한 올리비아) 는 코난군이 듣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말해주기를 시력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코난군은 무자비하고 못된 담임 선생 때문에 불안증 (영어로는 anxiety 라는 병명이다) 이 생겨서, 실제로 안구나 시신경에는 문제가 없지만 시력이 떨어지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아니지만 두통과 인후통에 시달리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코난군의 건강에만 적신호가 오는 것은 아니어서, 거의 매일 저녁 코난군이 학교에 다녀온 날이면 담임교사의 악랄한 언행에 대해 온가족이 듣고, 그에 대해 분개하는 아빠와 조롱하는 엄마를 보면서 둘리양은 이런 말까지 했다.

 

"엄마, 난 5학년이 되고 싶지 않아요"

"왜?"

"그린맨 선생님 반이 되기 싫어서요"

"5학년은 세 반이나 되니까 너는 그린맨 선생 반이 안될거야"

"아니예요, 난 틀림없이 그린맨 선생님 반이 될 거예요. 왜냐하면 코난군이 킨더학년일 때 윌리스 반이었는데 내가 킨더학년이 될 때 윌리스 반이 되었잖아요. 그러니 나는 해마다 코난군을 가르쳤던 선생님 반이 되는 거라구요"

 

아직 일학년 밖에 안되는 둘째 아이 조차 학교와 교사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 얼마나 청천벽력같은 일인가!

남편은 이 일에 대해 타미의 아빠와 상의하기도 했고, 나와 남편은 우리가 실질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리해서 교장을 만나기로 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

궁극적으로는 무식하고 무신경하고 무자비한 그린맨 선생이 해고당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다.

(무능한 교사이기는 하지만 초등학교에서 희귀한 남자 선생이라 되도록이면 계속 고용하려고 하는 태도이고, 그런식으로 십 년이 넘게 근속하고 있기 때문에, 신문에 나올법한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은 해고당할 가능성이 없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코난군과 그린맨 선생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또한, 우리 가족 내의 대화 중에 선생이 얼마나 고약하고 학교가 얼마나 끔찍한 곳인지를 토로하는것도 없어졌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었다.

타미 아빠와 또 다른 학부모 친구들이 코난군의 반을 옮겨보라고 조언해주었다.

따라서, 우리 부부는 교장을 만나서 코난군이 겪고 있는 심리적 어려움을 털어놓고 반을 바꿔줄 수있는지 물었다.

가급적이면 특정 교사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어떡하든 교장이 자기방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해야만 코난군이 반을 옮기도록 허락해줄 것 같아서였다.

다행히도, 교장이 이번에는 우리의 요청을 잘 들어주었다.

내가 분석하건대, 코드블랙 사건으로 우리에게 약간의 부채의식이 있지 않았나 싶다.

반을 바꾸는 일은 교장인 자신의 권한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고, 어차피 학년이 끝나가는 시기이니, 뒷말이 나거나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반을 바꿔달라고 요청할 염려가 없다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우리가 교장을 만나던 날로부터 일주일 후에 중간 성적 처리가 완료되니 그 때부터 다른 반으로 옮겨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코메디는 그 다음날부터 시작되었다.

아마도 그린맨 선생에게 교장이 이러저러한 사정을 설명했을 것이고, 다른 어느 반으로 코난군을 보낼지를 다른 모든 5학년 교사와 의논했을 것이다.

그린맨 선생은 그 때 부터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태도를 바꾸어 코난군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풀고 있다고 한다.

의자에 걸쳐둔 코난군의 외투가 바닥에 떨어지니 달려와서 허리를 굽혀 옷을 주워주기도 했고, 너는 이런 것도 모르냐고 창피를 주던 사람이, 과학 퀴즈를 내면서 정답을 맞춘 아이에게 사탕을 한  개씩 주는데, 코난군이 잘 몰라서 틀린 대답을 했는데도 "맞는 답은 아니지만 열심히 생각해서 대답을 했다"고 칭찬하며 사탕을 주었다고 한다.

물론 코난군에게만 착한 사람으로 돌변하여 웃기도록 과도하게 친절한 사람이 된 것이다.

 

아침마다 머리가 아파서 학교에 못가겠다던 코난군에게 이번 한 주간 동안 결석하지 않고 학교를 가면 주말에 좋아하는 팽이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하니, 끙끙대며 등교를 했는데, 저녁에 돌아와서 그린맨 선생의 코메디를 신이 나서 들려주었다.

코메디 쑈가 어찌나 웃기던지 온가족이 으하하 하고 웃으니, 어쨌든 둘리양도 더이상 5학년이 되는 것에 대해 두려워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오늘은 코난군이 그린맨 반이 아닌 다른 반으로 등교한 첫 날이다.

담임도 바뀌고, 멋쟁이 안경도 장만했고, 조만간 팽이 장난감도 얻게 되고, 소설도 완성하고...

어쨌든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2019년 3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