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이사를 시작한지 꼭 2주일이 되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짐을, 일꾼을 고용해서 나르기도 하고, 남편과 내가 트럭을 빌려서 나르기도 하고, 남편 차와 내 차로 수십번 넘게 나르기도 했다.

헌집을 완전히 비워주어야 하는 날이 오늘이어서 남편은 지금도 헌집에 가서 마무리 일을 하는 중이다.

어차피 집은 팔렸고 돈까지 다 받은 상태이니, 양심없는 사람이라면 청소나 찢어진 장판을 새로 사다가 깔아주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그런 양심없는 사람을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차고와 지하실까지 150평은 족히 될만한 면적을 깨끗히 청소하고, 시멘트와 마룻바닥의 흠집을 떼우고, 세탁실의 찢어진 장판을 새로 사다가 깔았다. 

가구를 빼고난 자리에 덜 칠해진 페인트도 말끔하게 칠했다.

나는 어제 오전 내내 지하실과 차고의 천정에 솜사탕처럼 걸린 거미줄을 걷어내고 빗자루로 흙먼지를 청소했다.

네 개나 되는 화장실의 욕조와 세면대를 락스로 닦고, 거울을 닦기도 했다.

 

지난 2월에 집을 팔기 위해서 이렇게 깨끗하게 온집안을 청소했었는데, 그 때는 "우리집 이쁘지?" 하고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청소를 했다면, 이번에는 "우리에게 지난 15년간 보금자리가 되어 주어서 고마웠고, 새 주인 만나서 잘 있어라!" 하는 작별 인사의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청소를 했다.

구석구석 우리 가족의 흔적을 치우고 지우면서 이화정 선생님이 알려주었던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잠언 14장 4절에 나오는 말이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해석하자면, 소 한 마리 키우려면 일도 많고 지저분하기도 하겠지만, 그로 인해 얻는 것이 더 많다. 소가 없으면 구유가 아무리 깨끗하게 있어봤자 어디에 쓰겠는가? 하는 뜻이다.)

 

이화정 선생님은 갑자기 병으로 죽은 강아지가 없어지니 흩날리던 털은 안치워도 되지만, 그 강아지가 없어진 허전한 자리를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어서 슬퍼하다가 이 성경 구절을 떠올렸다고 한다.

나는 흙먼지 가득한 지하실을 쓸면서, 욕조의 얼룩을 박박 문질러 닦으면서, 거울에 튄 치약 묻은 물자국을 지우면서 같은 구절을 생각했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거울이나 욕조 청소가 훨씬 쉬웠을지 모르지만, 아이들 덕분에 더 큰 집으로 이사까지 하게 되었으니, 오히려 아이들에게 고마워해야겠다 :-)

 

그렇게 헌집과 작별 작업을 하느라 새집은 아직 정리하지 못한 짐이 차고에 가득하게 쌓여있다.

가장 많은 짐이 들어가는 남편의 서재도 아직 풀지 못한 박스가 쌓여있고, 거실의 오디오 짐도, 지하실의 운동기구 짐도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다.

나는 안방에 들인 짐과 부엌살림을 정리하느라 분주한 와중에 여름 학기 강의를 해야 했고, 한 과목 강의가 이번 주말로 끝나자마자 또 한 과목 강의를 시작해야 한다.

학생들의 과제를 채점하다 말고, 남편이 짐을 한 차 가지고 오면 차고로 뛰어나가서 짐을 나르곤 하는데, 비는 또 어찌 그리 많이 내리는지...

그래도 이제 헌집 정리는 오늘로 끝날테니, 앞으로는 새집 정리에만 집중하면 되겠다.

 

그동안 집을 팔고 사는 일로,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오래도록 친구와 함께 놀지 못했던 코난군을 위해 드디어 친구 조나스를 불러서 함께 놀게 해주었다.

집 정리가 완전히 끝나면 슬립오버도 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최근에 그림 그리기에 취미를 붙인 조나스가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미술 레슨을 자기도 하고 싶다고 해서, 오늘 시험삼아 한 번 레슨을 받아보기로 했다.

레슨 전과 후에 어울려 놀아야 하니, 꼬마 손님들이 아침부터 우리집에 와있다.

오늘 점심과 저녁은 우리집에서 먹이고, 금요일이니까 불금을 즐기라는 의미로 밤늦게까지 놀아도 된다고 허락했다.

아이들이 없으면 집은 깨끗하고 조용할지 몰라도, 소가 없는 구유가 아무짝에 쓸모가 없듯, 아이들이 없는 넓은 집은 그 구실을 다 하지 못한다 :-)

 

점심 식사는 내가 바빠서 냉동식품을 데워서 먹였다.

냉동 핏자와 냉동 타코를 주주 엄마가 가져다준 상추 샐러드와 함께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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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아이들은 음식의 맛 보다도 친구와 함께 앉아서 먹는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니, 냉동식품을 차려주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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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성능 좋은 식기세척기가 있으니, 넓은 부엌 캐비넷에 좌악~ 넣어둔 그릇을 마음껏 꺼내다가 차려주었다.

부엌이 넓어서 식사 준비하는 시간이 무척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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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후 두시 반이 되면 이 네 명의 아이들을 모두 내 차에 싣고 아트 레슨에 데려다 주고, 나는 또헌집으로 가서 남은 짐을 실어오기로 했다.

오아시스 마트에 들러서 저녁식사 재료도 사야겠다.

강의 준비 공부는 조용한 밤에 하면 되지 :-)

 

2020년 6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