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살던 집에서 설치하고 사용하던 역삼투압 정수기는 집을 팔때 덤으로 끼워주고 (사실은 철거하고 새 집에 다시 설치하는 과정이 너무 번거로워서) 새로 이사온 후에는 냉장고에 딸려있는 정수기의 물을 마셨다.

집에 있는 수질검사기로 수치를 측정해보니, 냉장고 정수기에서 나오는 물과 수돗물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브리타 정수기처럼 활성탄소로 물을 한 번 걸러서 그저 수돗물 냄새 정도만 제거하는 듯 했다.

더우기 우리 동네는 해발고도가 2,000피트, 600미터 정도로 높은 지대라서 그런지 수돗물의 수질 자체가 무척 좋은 편이라서 어지간한 정수기는 필요가 없을 정도라서 그렇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런 잡맛이 없는 순수한 물의 맛이 그리웠던 남편은 결국 역삼투압 정수기를 구입해서 오늘 설치했다.

이웃의 디군네 부모도 새로 이사한 집에 정수기를 설치하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오늘 공사를 할 때 직접 와서 보라고 불렀다.

전에 살던 집에서는 싱크대 아래에 공간이 충분하지 않았고, 또 정수기 필터의 부피가 훨씬 더 커서 복잡한 공사를 해서 지하실에 필터 탱크를 설치했지만, 이번에 새로 구입한 제품은 부피가 작아서 싱크대 아래에 설치할 수 있어서 비교적 쉬운 작업이었다.

 

디군네 가족은 타주에 사는 친구집에서 웅진코웨이 정수기를 렌탈해서 사용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이용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정기적으로 직원이 방문해서 필터교체와 위생관리를 해주는 비용까지 포함해서 매달 40달러 정도의 사용료를 낸다고 하는데, 우리가 구입한 제품은 350달러 정도의 가격에 1-2년 주기로 교체해야할 필터의 값이 25달러와 65달러이므로 (25달러짜리 필터는 1년마다, 65달러짜리는 2년마다교체해야 한다), 1년만 사용해도 렌탈비용보다 저렴하니 경제적 이득이 훨씬 크다.

뿐만 아니라, 웅진 정수기는 인터넷에 나와있는 제품 설명상으로는 역삼투압 방식이라고 하는데, RO 필터가 얼마나 성능이 우수한지 의심스러웠다.

역삼투압 방식은 물에 고압을 가해서 걸러내는 방식이라서 반드시 버려지는 물이 생기고, 그 버리는 물이 빠져나갈 관이 있어야 하는데, 만약에 그 관이 없다면 역삼투압 방식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뜨거운물이 나오는 장치는 세균번식이 되기 쉽고 화상의 위험도 있고...

관리해주러 오는 직원과 미리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에는 외출도 못하고 집에 있어야 하는 번거로움...

이래저래, 내가 사용할 것은 아니지만 디군네 가족이 웅진 정수기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지랖 발동... ㅎㅎㅎ)

 

한국에서는 정수기와 화장실의 비데, 안마의자, 등등 몇 가지 가전제품을 구입하지 않고 렌탈로 사용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한꺼번에 큰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정기적으로 와서 필터를 갈아준다거나 청소를 해준다거나 고장이 나면 고치거나 교체를 해준다는 점에 끌려서 렌탈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사용은 하지만 진심으로 내 물건이 아닌 것... 그 점이 싫다.

사실 한국에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전세나 월세가 아닌 자가를 소유하고 살아도 진정으로 그 집을 소유하고 있다기 보다는 사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티비나 냉장고 세탁기 등의 가전제품도 그렇다.

어디가 고장이 나면,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고장이 없어도 그 제품의 작동원리가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목수가 될 필요도 없고 순돌이 아빠 같은 가전제품 수리기사가 될 필요도 없다.

편리하게 전화 한 통이면 전문가가 달려와서 아주 친절하게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시스템이 좋기는 하다.

하지만...

진정으로 내 물건, 내 집, 내 차를 소유하고 있다면, 기본 작동 원리를 알고, 전문가를 부르기 전에 내가 한 번 살펴보는 정도의 오너쉽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웅진정수기 렌탈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에 역삼투압 필터의 물이 들어오고 나가고 버려지는 물의 관이 어디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공부하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쩐지, 그런 공부는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고 돈으로 간편하게 해결하려는 태도가 모순적으로 여겨진다.

 

정수기를 설치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싱크대 상판에 위치를 정하고 구멍을 뚫었다.

타일이나 인조대리석과 같이 단단한 재질에 구멍을 낼 수 있는 강력한 날을 구입했는데, 그 가격이얼마 되지 않고, 디군네 가족이 사용한다고 하면 빌려줄 수 있으니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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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찰에서 나오는 열을 식히는데에는 약간의 물만 뿌려주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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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수대 안쪽으로 물이 나오는 꼭지가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아서, 국요리를 할 때 큰 냄비에 물을 받을 수도 있고, 한두방울 뒤늦게 떨어지는 물방울이 개수대로 흘러서 주변을 적시지 않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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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유튜브로 정수기 설치 공부를 열심히 했던 디군의 아빠는 화면으로 보던 것을 실제로 보니 더욱 이해가 잘 된다며 남편이 하는 일을 보조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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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기에서 나오는 물과 수돗물의 수질을 측정하니, 수돗물은 65 ppm,  정수기물은 6 ppm 정도의 수치가 나왔다.

물을 마셔보니 맛도 차이가 났다.

순수한 물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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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위해 한국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는데, 헬스컨슈머 (발음 표기부터 틀렸다. 컨수머 라고 썼어야지!) 라는 매체에서 2019년에 역삼투압 정수기 물을 마시면 "죽은물"을 마시게 되어 심혈관질환에 걸리고 암에 걸리고 뇌졸중에 걸린다며 온갖 협박을 하는 내가 보기에는 근거없는 엉터리 기사를 쓴 것이 가장상위 검색결과에 나왔다.

피곤해서 그 논거를 뒷받침하는 실제 연구논문을 찾아보지는 않았으나, 예전에 엄마 아이큐가 자녀에게 유전된다는 엉터리 기사를 파헤쳐본 경험으로 미루어, 이 엉터리 기사도 믿지 않기로 했다.

너무 다 걸러내서 미네랄이 하나도 없는 물이라서 그걸 마시면 위험하다는 것인데, 그게 과연 위험할 일인가 말이다.

기자도 어쩐지 그것만으로는 협박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는지, 음식으로 미네랄을 섭취해도된다고 하지만 음식에 들어있는 미네랄은 인체에 흡수가 되지 않는다는 엉터리 소리를 써놓았다.

그렇다면 영양학에서 말하는 5대 영양소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무기질(이게 바로 미네랄), 비타민 중에서 음식으로 섭취가 안된다는 무기질은 왜 포함시킨 것인가.

게다가, 물속의 미네랄이 없어지면 공기중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서 산성을 띄게 된다고 하는데, 미네랄이 없는 물이 갑자기 광합성을 하는 것도 아닌데 공기중의 이산화탄소를 어떻게 빨아들인다는 것인지...

그렇다면 공기청정기 대신에 정수기물을 받아두면 되겠네...?

그리고 물에 이산화탄소가 섞이면 산성이 되나...?

그러면 식초가 들어간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모두 심장병, 뇌졸중, 암에 걸린다는 말인가...?

1단계 부터 5단계 6단계 더 나아갈수록 더욱더 말이 안되는 소리만 하는 것도 기사라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만 해도 기가 막힌데, 그게 가장 상위 검색으로 눈에 보인다는 점이 아주 불쾌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진정한 소유를 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 즉 정수기의 원리를 모르고 정수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엉터리 기사를 믿고 사용하던 정수기를 반품하거나, 그런 "문제점"을 해결했다고 선전하는 신제품을 더 많은 돈을 내고 구입 또는 렌탈해서 사용할 것이다.

암튼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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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 아래에 들어가는 크기라서 필터를 가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 보다 쉽다.

손잡이를 돌려서 빼고 새 것으로 넣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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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기를 설치하고 처음 30여분 간은 물을 틀어서 버리라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처음에는 활성탄소가 섞여 나오는지 시커먼 물이 잠시 나오고, 중간 중간에 나오는 물을 받아서 수질검사를 해보니점점 수치가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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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 아래에 물이 새는 곳도 없고, 모든 작업이 깔끔하게 되었다.

내일부터 커피는 이 물로 내리게 될테니 더욱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겠다.

 

 

2020년 8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