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500달러 가까이 하는 키친에이드 스탠드 믹서가 베스트바이 (전자제품 상점) 에서 깜짝 세일로 200달러에 파는 것을 구입했다.

집에서 빵 좀 굽는 사람이라면 이 유명한 제품을 가지고 있거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베이킹에는 다소 소질도 부족하고 관심도 덜한 편이지만 이 기계에는 관심이 많았다.

이 기계만 있으면 집에서 순대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소세지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지만, 순대를 만들 때에도 똑같이 사용할 수 있는 부속품도 구입하고 마침내 어느 주말에 난생 처음 순대를 만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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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았다면 손쉽고 값싸게 사먹을 수 있는 순대가 여기 명왕성에서는 비싼 값을 주고도 살 수 없을 때가 많은 귀한 음식이다.

직접 만들어 먹으려해도 희귀한 재료를 구입하고 소세지 기계를 마련해야 하는 등 만만한 일이 아니다.

스탠드 믹서를 구입하고보니 나머지 재료는 인터넷으로 주문하거나 오아시스 마트에서 비교적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아래 사진에서 오른쪽 봉지에 든 것이 염장한 돼지 창자인데 하룻밤 물에 불리면 순대 껍데기로 사용할 수 있다.

한 봉지에 몇 달러 안하는 가격인데 한 봉지로 순대를 한 드럼통은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 된다 :-)

왼쪽 위에 보이는 돼지피는 오아시스 마트 냉동코너에서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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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재료로는 돼지고기, 불린 당면과 찹쌀밥, 부추와 파, 양파, 다진 마늘, 후추, 소금 등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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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재료를 대충 잘게 썰어서 스탠드 믹서에 넣고 섞는다.

소세지 기계에서 재료를 더 다져주기 때문에 너무 잘게 썰 필요는 없다.

돼지피를 넣는 것이 처음에는 다소 징그러울 수 있는데, 이것이 순대의 본연의 맛을 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니 빠뜨려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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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린 돼지 창자 (아마존 닷 컴에서 소세지 케이싱 이라고 검색하면 나온다) 를 너무 길지 않게 잘라서 한 쪽 끝을 묶어주고 나머지 한 쪽을 소세지 기계 부품에 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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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지 기계 윗쪽 깔대기에 순대 속을 밀어 넣으면 모터가 돌아가면서 순대 속을 더 잘게 다져서 돼지 창자로 밀어낸다.

처음 만들 때는 익숙하지 않아서 재료를 바닥에 흘리거나 하는 일이 있었지만, 두 번째 만들 때는 바닥에 넓은 쟁반을 받히고, 또 돼지피와 다른 재료의 배합 비율을 적절히 조정해서 깔끔하게 만들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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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면과 야채의 양이 꽤 많았는데 순대로 만들고보니 이렇게 한 접시에 담길 정도밖에 안된다.

순대도 김밥처럼 밀도가 무척 높은 음식이었던 것이다.

순대 일 인분이 너무 작다고 생각했지만 속을 꽉 눌러 채운 것이라 실제로 일 인분으로 충분한 칼로리가 들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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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검색한 레서피들이 하나같이, 순대를 물에 삶으라고 했다.

한 번 삶아서 익힌 후에는 찜솥에 찌지만 처음에는 삶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마도 속까지 완전히 잘 익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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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삶은 순대는 채반에 올려 약한 불에 찌고, 먹을 만큼 꺼내서 썰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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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앞에 가면 민주 떡볶이 라는 떡볶이 집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주문을 받으면 "1번 테이블에 김떡순이요~" 하고 외치곤 했다.

김밥과 떡볶이와 순대를 주문했다는 뜻이다 :-)

그게 생각나서 순대를 만든 김에 김밥과 떡볶이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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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분식집 분위기를 내려면 김밥과 떡볶이가 너무 화려해서는 안된다.

김밥 속재료도 단순하게, 떡볶이도 오직 떡과 어묵, 그렇게 단촐해야 옛날에 먹던 그 맛을 재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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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전날 만들어서 먹고 남은 튀김 만두가 있어서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게 하니 완벽한 포장마차 떡볶이를 재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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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떡볶이 집에서 공짜로 나오던 어묵국물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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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수업을 위해 오신 한명숙 선생님 모녀와 투빈이네 가족까지 모셔놓고 대망의 김떡순을 차렸는데, 식탁으로 옮길 새도 없이 부엌에 둘러서서 선채로 맛있게 먹었다.

김떡순은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서 먹는 것보다 이렇게 서서 먹어야 제맛이긴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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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육고기를 거의 안드시는 한명숙 선생님 마저도 순대에서 역한 냄새가 전혀 나지 않고 맛있다며 맛있게 들었다.

이렇게 훌륭한 순대는 기념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면 투빈엄마 송이씨가 포즈를 잡게 하고 남편을 시켜 사진을 찍었다.

낡은 셔츠에 흘러내린 머리카락 하며... 내 모습조차 포장마차 떡볶이 아줌마를 완벽 재현하는 데에 성공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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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 생활 반 년이 넘어가는 도원양도 이제 이런 것을 자급자족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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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공수한 찹쌀가루와 팥으로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찹쌀떡을 만들어 왔다.

하나는 단팥이 들어가고 다른 하나는 다크 초코렛이 들어간 찹쌀떡이다.

김떡순을 먹은 뒤 후식으로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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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