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좋아하고 즐겨 마시다보니, 각종 식품회사에서 만든 커피를 다 맛보았다거나, 갖가지 커피 만드는 기구를 사용해보는 것은 이미 수 년 전에 거친 일이고, 최근에는 생 원두를 구입해서 집에서 직접 로스팅하고, 바로 갈아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까지 하게 되었다.

커피 라는 것은... 배가 고파서 먹는 것도 아니고, 몸에 좋은 약처럼 마시는 것도 아닌, 참으로 순수하게 취미나 호사를 위해서 섭취하는 음료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이는 잠을 깨기 위해서나, 다이어트 등의 목적을 가지고 커피를 마시기도 하겠지만, 우리 부부에게 커피 - 특히나 주말 아침에 마시는 커피 - 한 잔의 의미는, 그저 느긋하게 향기를 즐기는 호사로운 취미생활이라 하겠다.

어떤 취미생활이든, 깊이 빠져들수록 더욱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게 되는 법...


스위트 마리아스 라고 하는 웹싸이트를 동료교수로부터 소개받아 여러 가지 맛/품종의 커피 원두를 구입했다. 오늘 만들 커피는 콜롬비아 텐저린 이라고 하는 이름인데, 달콤한 향취가 특징이라고 봉지에 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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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로스팅하지 않은 커피 콩은 약간의 초록빛을 띄는 노르스름한 색깔이고, 크기는 메주콩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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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이 볶아지면서 껍질이 날려떨어지기 때문에 실내보다는 야외에서 로스팅을 하는 것이 편리하다. 한 20분 가까이 소요되는 작업이므로, 칭얼댈만한 아이가 있다면 이렇게 단도리를 미리 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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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로스팅하는 도구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고장날 염려가 적고, 구입 가격도 저렴한 것을 골랐다. 원래 이 냄비는 꿀땅콩을 만드는 용도로 제작된 것이지만, 커피나 아몬드 등의 견과류를 타지 않게 볶을 때도 유용하게 쓰인다. 볶기 시작한지 2-3분이 지나면 탁탁 소리가 나면서 콩껍질이 벗겨져서 바람에 날리기 시작하고, 콩의 색깔도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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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이상 볶으니 이렇게 윤기가 좔좔 흐르는 짙은 갈색이 되었다. 티브이 광고 같은데서 자주 보던 그런 원두의 모습이다. 오늘 선택한 품종은 에스프레소 커피를 만들기에 좋은 것이라고 하더니, 유난히 기름기가 더 많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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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원두를 갈아보면, 에스프레소용 커피빈은 기름기가 많아서 부드럽게 잘 갈리고, 그렇지 않은 것은 손맷돌을 돌리는 손맛이 거칠다. 커피 가는 도구도 얼마전에 새로 구입한 것이다. 예전에 쓰던 전기식도 아직 가지고 있지만, 이것만큼 입자가 곱게 갈아지지 않아서 잘 사용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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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놀러온 이웃집 이교수님이 커피를 직접 갈아보고 싶다고해서 찬조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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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갈아진 커피를 비알레티 주전자 깔대기 부분에 넣는다. 깔대기 아랫쪽에는 물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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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알레티 주전자의 위아래 부분이 잘 맞게 돌려서 잠근다. 아래위 아귀가 잘 맞지 않으면 물이 끓는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커피가 틈사이로 새어나오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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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부분의 물이 끓으면서 압력을 받아 중간 부분의 커피 깔대기를 거쳐 주전자의 윗부분으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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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마시면 에스프레소, 뜨거운 물을 부어서 희석시키면 아메리카노 커피가 된다. 우유 증기를 넣어서 가페라테로 만들어 마셔도 맛이 일품이지만, 처음 시음하는 품종의 커피맛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 원래 향과 맛 그대로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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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 길건너 이웃집에서 마실 온 이교수님과, 남편과 나, 세 명의 박사가 커피를 볶으면서 생기는 변화를 관찰하고, 가능한 변수에 대해서 토론하고, 결과물을 분석하듯 찬찬히 음미하는 "커피 학술 세미나"를 한 판 잘 치루어냈다.


그깟 커피 한 잔, 그냥 인스탄트 믹스 커피에 뜨거운 물 부어서 휘휘 저어 한 잔 마셔도 커피 한 잔이고, 갈아서 파는 원두를 사다가 커피메이커에 내려서 마셔도 커피 한 잔이고, 또 이렇게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서 조물조물 만들어낸 것도 다 같은 커피 한 잔이다.

바쁜 평일 아침 출근길에는 기계의 힘을 빌어서 간편하게 한 잔 마시고, 주말 아침 좋은 사람들과 여유를 즐길 때는 이렇게 색다른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인생을 재미나게 사는 방법일 것이다.


2013년 4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