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김장 이야기

소년공원 2011.11.28 05:41 조회 수 : 7624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김치를 많이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살면서 입맛이 바뀌었다기 보다는 내 몸 깊은 곳에 배어있던 김치의 성분이 옅어진 탓인 듯, 그렇게도 김치가 좋아졌다. 만약에 내일 하루종일 회의 때문에 미국식 음식을 먹게될 예정이면, 그 전날 꼭 밥에 김치를 미리 먹어둘 정도이다. 지난 번 플로리다 출장을 다녀와서도 매운 라면에 김치를 먹은 것이 첫번 째 한 일이었다.

그러니 고소한 가을 배추가 제철인 이 시기에, 일주일 황금같은 추수감사절 방학에, 거금을 주고 마련한 김치냉장고도 있겠다, 김장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임신 7개월차 배가 조금 많이 부른 것 따위는 김장에 대한 내 열정을 식힐 수 없었다.

추수감사절 방학이 시작되는 주말 첫 날에 네 시간을 달려 배추와 다른 김장 재료를 사러 노던 버지니아 한인타운으로 갔다. 평소 즐겨 가던 히읗시장 (H-Mart) 대신에 지읗시장 (G-Mart or Grand Mart) 으로 간 것은, 거기서 50달러 이상 물건을 구입하면 배추 한 상자를 4.99 달러에 싸게 파는 세일 정보를 미리 알았기 때문이다. 한 가족당 한 번만 해당된다는 것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코난 아범과 나는 번갈아 따로 카트를 몰고 들어가서 장을 보고 배추 두 상자를 싸게 살 수 있었다. 게다가, 친절한 계산대 아주머니 덕분에 제철 무를 한 상자에 99센트 특별 할인 가격으로 사기도 했다.


kimchi01.jpg 배추 두 상자와 무 한 상자가 차 트렁크를 가득 채웠다. 이 모든 것의 값은 11달러!


조금 더 맛있는 젓갈을 사기 위해 히읗시장에도 따로 한 번 더 들르고, 점심을 사먹고, 하다보니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열 시에 가까웠다. 그리고 다음날인 일요일에 뒷마당에서 배추를 절이는데, 날씨도 따뜻하고, 배추는 싱싱하고, 코난군은 오랜만에 마당에서 뛰어놀고, 이래저래 신이 났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외할머니께서는 시래기국을 끓여서 한 입 드시고는 "아이구 시워~~언 하다!" 하시며 좋아하셨던 모습이 기억난다. 고작 멸치국물에 시래기와 된장양념이 뭐 그리 맛있다고 하시는지, 그 때는 도통 몰랐다. 그런데, 초록색 배추 겉잎을 하나씩 떼어서 줄에 엮어 매달아놓고 보니, 이제야 우리 할머니의 그 때 그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 구수한 멸치 국물에 요놈을 넣고 된장을 풀어 푸욱 지져서 밥 한 숟가락 위에 처억 얹어 먹으면 그간 먹어온 느끼한 미국음식의 흔적이 남아있는 내 식도와 위장과 십이지장, 소장, 대장 까지 깨끗하게 정화시켜줄 것 같은 느낌이다.


kimchi03.jpg 배추시래기를 지하실 천장에 매달아 말리고 있다.


지난 봄에 뒷마당 자두나무에서 떨어진 시어빠진 자두 한 바구니를 먹자니 너무 시고 버리자니 아까워서 설탕을 들이붓고 지하실에 두었던 것을 꺼내보니 새콤달콤한 액체의 형태로 발효가 되어있었다. 한국에서 살림 좀 한다는 주부들은 봄마다 매실 액기스 라는 것을 만들어두고 각종 음식에 양념으로 쓴다고 하는데, 매실과 비슷한 자두로 만들었으니 뭐 그럭저럭 비슷한 효과가 나지 싶어서 김치 양념에 넣었다. 찹쌀풀도 끓여넣고, 한국에서 보내주신 고춧가루를 넣고, 마늘과 생강도 넣고, 요리책이며 인터넷에서 보았던 각종양념 중에서 생각나는 것은 모두 찾아다 넣어서 양념을 만들었지만 배추가 아직도 숨이 덜 죽어서 김장을 마무리한 것은 그 다음날인 월요일이었다.

배추 두 상자, 스무포기, 그걸 네 쪽으로 잘랐으니 여든 쪽의 배추를 헹구고 짜서 양념을 버무리고 김치통에 넣는 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양념의 양조절을 잘못해서 중간에 모자라는 양념을 더 만드느라 시간이 더 걸린 이유도 있었다. 이래저래 김장을 다 마치고보니 장장 사흘이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배추 사러 가는 길이 멀지만 않았다면, 배추가 한국배추처럼 연해서 금방 절여졌다면 그보다는 짧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고생해서 얻은 것이 더욱 귀하게 여겨지는 법. 내년 여름까지 김치냉장고에서 맛있게 숙성된 김치를 꺼내먹을 때마다 마음은 흐뭇하고 입맛은 더욱 흐뭇할테니 별로 고생스럽게 여겨지지 않는다.


kimchi02.jpg 배추 스무포기를 절이고 있는 중


김장을 다 마친 다음날은 코난군의 생일이라, 어린이집에서 하는 파티 준비로 바빴고, 그 다음 날인 수요일에는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티나네 가족과 타주에 사는 친구들을 불러서 김장김치에 돼지고기 보쌈으로 잔치를 했다. 돌아가는 손님들에게 선물로 김장김치 한 통씩을 들려보내기도 했다.


kimchi05.jpg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티나와 매운 음식을 아주 잘 먹는 에드리언네 가족이 코난군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금방 버무린 김장김치에 참기름 고소하게 뿌려서 금방 지은 밥과 함께 먹으면 정말 맛있는데...

우리 엄마가 가까운데 계시면 둘이 다정하게 마주앉아 서로 김치찢어 밥숟갈에 얹어주며 먹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도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비하면 언제고 화상채팅으로 얼굴을 볼 수 있고, 우리집에 다니러 오시기도 하니까 그렇게 많이 섭섭해 할 일은 아니다.


kimchi04.jpg 갓 지은 밥에 김장김치, 그리고 단백질 보충을 위해 쏘세지를 보탠 나만을 위한 상차림이다.





2011년 1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