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면서 인터넷으로 보는 한국은 좀 문제가 있어보였다.

친한 사람으로부터 전해 듣는 소식도 그닥 바람직하지 않았다.


아빠는 아빠노릇하느라 아빠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

엄마는 엄마노릇하기에 바빠서 엄마 노릇을 잘 못하고 (?)

아이들은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학교에 가는 것이 힘들다 (?)

대통령은 대통령질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젊은이는 생각이 없거나 꿈이 없고...


뭐, 그런 이야기를 몇 번 들으면, '그래,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으니 다행이야' 라는 생각을 하던가, 혹은 우쭐해 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날에는, '가만, 혹시 지금 나만 이렇게 바보같이 살고있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례를 들자면, 나는 김치를 직접 담궈 먹는다.

여러 차례의 실패를 경험하면서 이제는 제법 시원한 국물이 우러나는 김치를 담글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맛있게 먹는 가족이나 친구들을 보는 것이 흐뭇했고, 그들이 해주는 칭찬에 즐거웠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선 전업주부 아줌마들조차 김치는 커녕, 찌개까지도 배달시켜 먹는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직장일도 하면서 이렇게 충실하게 주부역할까지 잘 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제는 가끔씩 '왜 나만 이렇게 바쁘고 힘든거야?' 하는 불평이 나도모르게 생긴다는 것이었다.


저녁 강의를 마치고 집에 와서 화장도 지우지 못한 채로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든지, 졸리는 눈을 비비며 도시락 설겆이를 할 때면 그런 울퉁불퉁한 생각이 더 쉽게 들면서, 그 누구가 대상인지도 모르는 볼멘 소리를, 나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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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가서 남편 친구들을 많이 만났었다.

(사진은 남편의 여/자/친/구/들)

대게 나이 사 십이 넘었고, 괜찮은 학벌에 괜찮은 직업을 가진, 굳이 분류하자면 '사회지도층' 되시겠다.


그들과 만나서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면서 참으로 좋았던 것은, 그들도 나처럼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다.

자기 일에 열심이면서도 아빠나 엄마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김치담기나 도시락 싸기 같은,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이지만 내게는 중요한 지표가 되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없이 살든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철학이나 신념을 지키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퇴근후에 세 아들들과 만두를 빚는 판사,

두 아이의 도시락을 손수 싸고 아침밥을 꼭 먹여 등교시키는 약사,

강남에 살면서 자식을 과외는 커녕 학원도 안보내는 고3 담임 교사,


이 외에도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우리처럼, 열심히 살고 있었다.


이젠 더이상 '나만 이렇게 살고 있다니 불공평해' 따위의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나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