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칼럼] 민주주의가 우리를 지켜준다

파파게노 2008.06.16 17:19 조회 수 : 746

이명박 정부와 여당이 구상하고 있는 쇄신론과 보수결집론은 철저한 지역주의적 사고와 전근대적인 '심보론'에 기반하고 있다. 즉 박근혜로 대표되는 영남 보수 지역기반을 다시 끌어안고, 부자를 보고 배 아파 하는 심보를 달래주면 지지도가 회복될 것이라는 과거회귀형 사고를 의미한다.
  
  그러나 촛불시위로 나타난 민심은 지역주의로 회귀하자는 것도, 부자에 대한 시기심도 아니다. 정부와 여당이 국민의 안전을 생각하고, 상위 소수만을 위한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지 말 것이며, 민주주의를 지켜달라는 매우 소박한 소통을 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민을 전근대적인 어린아이 수준으로 인식하고, 통제하고, 진압하고, 권위주의적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면 아무래도 양초 공장은 5년 내내 호황을 누리게 될 것 같다.
  
   동시에 정치공학적인 보수결집론은 일부 '참된 보수'를 포함한 대한민국 보수 전체의 몰락으로 결말을 짓지 않을까 생각된다. 마치 적벽대전에서 사슬로 묶여진 배에 올라탄 조조의 백만 대군이 제갈량의 화공에 일거에 무너지듯이 보수결집으로 묶여진 한국의 보수는 촛불이라는 화공에 동반침몰할지도 모른다.

근면하고 성실한데 정직하지 않다면?
  
   보수결집론의 허상을 얘기하기 전에 이명박 대통령과 그 세력이 미래의 한국 보수를 대표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소위 보수세력은 '능력'과 '신뢰' 면에서 너무나 많은 한심함을 드러냈기 때문이고(☞필자의 관련 칼럼 : 이명박 정부와 '통제의 추억') 한국의 참된 보수 세력은 이명박 정권과 함께 잠시 위기를 모면하기 보다는 앞으로도 오래 갈 수 있는 진정한 보수의 결집을 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냥 숫자 놀음으로 보수가 재결집해서 권위주의적 방법으로 무리하게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면 또 한 번 농락당한 국민이 이번에는 재협상이 아니라 '보수 퇴진'을 외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보수의 재기는 상당 기간 어려워질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실 참된 보수를 대표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결점을 안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한민국 보수가 내세우는 인류보편적 가치라 하면 근면, 성실, 정직 같은 걸 들 수 있다. 반공, 반북과 친미는 보편적 가치라기보다는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수단적 가치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근면과 성실이라는 면에서 보수를 대표할 만한 자격을 조금 갖춘 듯하다. 얼리 버드 신드롬을 낳았고, 새벽별 보기 운동에 준하는 근면과 성실성을 보여 주었다. 본인 스스로도 "열심히만 일하면 될 줄 알았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경제해결사가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정직'이라는 가치를 상당히 파손시키면서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점이다.
  
  위장전입을 비롯해 재산 증식과 관련한 무수한 의혹, 해이한 준법정신, 비도덕적인 발언,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고방식, 그리고 국정에 관한 정직하지 못한 해명과 꼼수, 미국에 대한 비굴함 등이 참된 보수의 보편적인 가치에서 볼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런데 불과 100일만에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해결사가 아니라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고, 인사나 정책의 설명책임성(accountability)과 투명성(transparency)에서 정직이라는 가치를 철저히 짓뭉개 버렸다. 나가도 너무 나가 버린 것이다.
  
   현대적 의미의 정직(integrity)은 투명성, 진정성, 민주성이 모두 포함하는데 본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위장전입, 탈세, 투기, 표절 등 정직이라는 기준에 너무나도 흠이 많은 내각과 청와대 인사를 보고 국민은 기가 질려 버렸다. 백번 양보해 대통령에 대해서는 경제 해결을 위해 잠시 유보해 줄 수 있었지만, 정부가 아예 집단적으로 정직이라는 가치를 포기하는 것을 보고 진보는 물론이고 보수적인 국민들도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면하고 성실한데 정직하지 못하면 이상한 방향으로 열심히 일하게 된다. 즉 상위 10% 정도만을 위하는 방향으로 청와대, 정부, 일선 공무원이 일찍 일어나 주말을 반납하면서 일을 하게 된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근면 성실하게 도박하고, 근면 성실하게 사기치고, 근면 성실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정직이 빠진 보수, 제대로 된 철학이 결여된 보수는 이렇게 위험한 것이다. 그리고 세계 경제는 이미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도 단순히 근면, 성실하게 일하기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70년대의 방식으로 경제를 끌어 나갈 수 없다는 의미다.
  
  국민이 원하는 진정한 보수란?
  
   국민의 기대와 달리 근면 성실로만 포장된 이명박 정권이 이대로 간다면 국민의 여망을 달성할 수도 없을 뿐더러 존경과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자명한 결론이 나온다. 살림살이도 회복시켜 주지 못하고, 정직하지도 못하고, 민주적이지도 못하며, 전문성도 갖추고 있지 않다. 국민들은 '좌빨'을 근면 성실하게 외치는 권위주의적이고 시대착오적 보수가 아니라 근면 성실하고, 정직하하고 민주적이며,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혜안을 가지고 있는 보수를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고치지도 않고 단순히 숫자를 불리기 위해 보수가 결집하면 친박세력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보수 전체가 동반추락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투명한 사회이기 때문에 문제점은 금방 드러나게 되어 있으며, 과거와 같이 권위주의로 돌아가게 되면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게 되어 있다. 박근혜를 중심으로 결집하게 되면 박근혜 진영 역시 근면 성실, 그리고 정직, 21세기적 혜안을 시험받게 될 것이다.
  
   박근혜는 사실 이명박 정부가 위기를 맞는 동안 복당이라는 원칙 외에 아무런 해법도 제시하지 못 했다. 쇠고기 협상에서 처음부터 국민의 편에 서지도 않았다. 경제 문제 해결에 있어 혜안을 보이지도 않았다. 촛불 시위대가 짓밟힐 때도 인권에 관해 단 한 마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주변 인물이 정직(integrity)한지 제대로 검증받은 적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근혜를 중심으로 보수가 재결집하게 되면 어쩌면 그는 차기 지도자로서의 길을 빨리 접어야 할지 모른다. 어차피 이명박 정부가 국민 살림살이를 개선시킬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에, 이에 대한 동반책임을 반드시 지게 된다.
  
  그러나 보수 결집이 곧 회생으로 이어지는 길이 하나 있다. 전반적인 정책 전환과 정직(integrity)을 회복하는 것이다. 민주적이면서 국민의 안전, 즉 인간안보를 최우선으로 하며 특권적 이익을 지양하는 보수가 결집하게 되면 회생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쇠고기 재협상, 대운하 포기, 공기업와 의보 등에 대한 민영화 정책의 전면 재검토와 투명성 보장, 촛불시위대 폭력 진압 책임자의 처벌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극단적으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가 미국에서 비준에 실패하는 상황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이명박 정부가 이같은 전환을 꾀한다면 친박세력의 합류 없이도 충분히 지지율을 회복하고 5년을 끌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보수결집이 필요 없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정책을 전환한 후 보수적 비전을 새롭게 제시할 수 있을까? 그냥 난파한 배를 이끌고 무인도라도 상륙하기를 바라는가?
  
  분명한 것은 정책의 전환과 정직 및 민주성의 회복 없는 결집은 보수 전체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이렇게 몰락한 보수는 재기의 시일을 얼마나 세어야 할지 모를 것이다. 한번 흔들린 신뢰는 정말로 회복하기 어렵다.
  

민주주의는 밥을 먹여준다

  
   한국에서 보수라 하면 괜히 권위주의가 떠오른다.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을 무시하고, 특권의식과 우월의식에 쌓여 상대방을 무시하면서 밀어붙이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통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권위주의적인 옛날이 좋았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꽤 있다. 한국에서는 민주주의와 보수를 연결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촛불 시위를 통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정말 값진 민주주의 학습을 한 것 같다. 촛불시위의 방식, 구호,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한 소통과 토론, 그리고 의사표현의 방법 등을 보면 한국의 젊은 세대가 정말로 민주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대다수의 국민이 이들의 민주주의에 성원을 보내고 있다. 국민들은 매우 민주주의적이 된 것이다.
  
  국민들은 어떻게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된 것일까?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나? 그렇다. 민주주의는 밥을 먹여준다. 민주주의가 없으면 한국의 특권세력이 10%만을 위한 정책과 정치를 통제와 강압에 의해 밀어붙이고, 국민을 기만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실업이 늘어나고, 나의 희생을 통해 엉뚱한 사람들이 배를 불리는데, 민주주의가 없으면 이러한 사실 조차도 알 수 없고, 또 알아도 이를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만을 막아내야만 나도 계속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편 민주주의는 우리가 획득한 당당한 권리이다. 얻은 것을 잃어버리면 대단한 박탈감이 온다. 민주주의가 귀중한 가치라는 것은 진보와 보수를 넘어 모두가 강조해 온 것이고, 또 약자가 밥을 먹을 수 있게 해 주는 제도적 장치라는 것도 많은 국민들이 학습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가치와 제도를 국민들이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의 정치인과 지도층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명심해야할 사실이 하나 있다. 민주적이지 않으면 다 죽는다는 것이다. 시민은 이제 CSI(과학수사대) 수준으로 정부와 정치인의 모든 것을 파헤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가장 염두에 두는 것 중의 하나가 민주주의이다.
  
  투명하지 못하고, 권위주의적이고, 부정하고, 비민주적인 정치인은 그 모든 것이 알려져 결국 선수로 생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즉 통제와 권위주의 시절로의 회귀를 모색하는 정치세력은 다 죽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디지털 참여민주주의가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보수재결집은 상위 10%만을 위하는 정책을 포기·수정하고, 정직이라는 가치를 실천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세 가지 결합이 없으면 실패한다. 침몰하는 배에 동승하는 보수세력은 동반추락의 운명을 걷게 될 것이다.
  
   보수는 단시안적인 해결을 모색하지 말고 국민의 입장에 서서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길 바란다. 그래야 다시 부활하고자 하는 진보세력과 대안 정치세력에게도 제대로 된 자극제가 되고 경쟁 구도가 만들어 질 수 있다.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이 사라지는 민주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근/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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