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1

미국 어린이 생일파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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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을과 겨울은 코난군네 어린이집 레드룸 친구들의 생일파티 시즌인 듯 하다. 왜인고 하니, 버지니아 주 교육법 상으로 9월 30일 기준으로 만 5세가 된 아이들은 초등학교 첫 학년인 킨더가튼에 입학하고 (한국으로 치자면 7세 아동의 초등병설 유치원 입학과 같은 것이지만, 차이가 있다면 전면무상교육이라는 점이다), 그 이후에 즉, 10월 부터 5월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레드룸에서 1년을 더 지내야 하기 때문에 가을과 겨울에 생일을 맞이하는 아이가 많은 이유 때문이다. 우리 코난군도 2013년 여름에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킨더가튼에 입학할 때 까지 레드룸을 2년 동안 다녀야 한다.

지지난 달 크레이그의 파티를 시작으로 해서 달튼, 코난군, 카너, 잭슨, 등등의 생일 파티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데, 활동적인 남자아이들의 생일인데다, 요즘 우리 동네 날씨가 따뜻하다가 갑자기 추워지곤 하는 변덕을 부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파티가 실내 놀이터나 볼링장 혹은 수영장에서 열린다.

어제 다녀온 카너의 생일 파티는 이웃 마을인 크리스찬스버그의 공립 수영장에서 열렸다. 준비물은 수영복과 타월,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동반해야 하는 부모이다. 지난 번 달튼의 볼링장 파티에서도 그랬지만, 초대받은 어린이들의 오락 (수영이든 볼링이든) 에 드는 비용과 식사, 케익 등은 파티 주최자가 모두 부담하고, 초대받은 어린이 손님은 그 정도 비용을 충당하는 수준의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관례인 듯 하다. 만일에 초대받은 손님의 형제가 동반한다면 그 비용은 손님의 부모가 지불하는데, 그것이 합리적이고 예의바른 일인 것 같다. 어제 꼬마손님 중에 알리와 크레이그는 꼬마 동생들이 함께 왔는데, 아이들 아빠가 수영장 입구에서 따로 돈을 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우리집은 코난군 혼자이기 때문에 파티 손님 명단에 싸인만 하고 무료입장을 했다.

배불뚝이가 된 나는 코난군과 코난 아범의 짐을 챙겨서 의자에 앉아 구경만 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부자는 어린이용 풀에 들어가서 물놀이를 시작했다. 남자 어린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아빠가 함께 온 집이 많았지만, 엄마와 함께 온 여자 어린이 손님도 간간이 있었다. 젖먹이 둘째 아이를 처음으로 떼어놓고 나왔다는 알로나네 엄마와, 큰 아이들은 이미 중고등학생인데, 생각지도 못한 늦둥이를 두게 되어 새삼스레 어린이집 학부모가 된 엘리네 엄마는 수영복을 입고 물속에서 아이들과 즐겁게 놀아주고 있었다. 요즘 한국 사람들은 사고방식이 얼마나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10여년 전의 한국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유치원 학부모들이 수영복만 입고서 전혀 거리낌없이 서로 웃고 이야기하며 아이들과 놀아주는 모습이 좋아보이기도 하고, 한국에서라면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몸매, 화장안한 맨얼굴, 등의 외모를 과하게 걱정하는 것이 한국 사람들의 정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이 오십에 늦둥이 딸과 놀아주기 위해서 흰머리와 쳐진 몸매를 드러낼 자신이 있는가? 아빠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이는 똥배가 나오고, 어떤 이는 팔뚝에 문신이 있고, 또 어떤 이는 머리숱이 현저하게 적지만, 그런 것 개의치 않고 수영복 바지 하나 걸치고 물놀이를 하다가, 다른 아이의 부모와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은 미국 사람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 덕분일게다.

한 시간 정도 물놀이를 한 다음, 간단한 샤워를 하거나 젖은 몸만 닦은 후에 파티룸으로 갔다. 얼마를 지불하는지는 모르지만, 각 파티룸 마다 전담 서버가 있어서 꼬마 손님들에게 음료수를 따라 주거나 피자를 갖다주고, 아이들이 흘린 것을 그때그때 치워주어서 파티 주최자에게 큰 편의가 되는 것 같아보였다.

식사를 어느 정도 마치면 케익에 촛불을 끄고 후식으로 그 케익을 나눠먹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의 하이라이트 순서는 선물 개봉! 다시 한 번, 요즘 한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한국에 살 적에는 선물이라는 것은 포장채로 받으면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고 한 켠에 잘 모셔두었다가 손님들이 가고나면 혼자서 열어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선물을 받은 그 자리에서 열어보고, 그 자리에서 선물을 준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심지어 누구에게 무슨 선물을 받았는지 적어두었다가 파티가 다 끝나고 며칠 안으로 땡큐 카드를 보내기까지 한다. 카너네 엄마도 선물을 열심히 개봉하는 아들 옆에서 누가 무슨 선물을 주었는지 받아적느라 무척 바빴다. 어쩌다 받아적기를 놓치기라도 하면 옆에 있던 다른 엄마가 “이 스타워즈 라이프 세이버는 알리네 선물 가방안에 가면과 함께 들어있던 거야” 하고 알려주기도 한다.

지난 번 달튼의 생일이 지나고 받은 땡큐카드에는 “코난군이 선물해준 디즈니 카 선물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 버튼을 누르면 미사일이 발사되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 파티에 와준 것도 고맙고,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어서 정말 고마워!” 이런 식으로 선물에 대한 자세한 묘사까지 곁들여 적혀있었다. 물론 이제 만 네 살이 된 달튼이 그 카드를 썼을 리가 없고, 부모의 크나큰 숙제거리였을 것이다. 요건 좀… 내게는 부담스런 문화이다. 그냥 받을 때 고마워했으면 되었지, 땡큐카드 까지 그렇게 자세하게 구구절절 써서 보내야 하는지 원…

지난 번 코난군 생일은 어린이집 간식 시간을 이용해서 케익을 나눠먹는 것으로 간소하게 지나갔다. 원래는 우리집 뒷마당 트리하우스에서 친구들을 초대해서 치루어볼까 계획을 해보았으나, 날씨가 어떻게 될지 짐작하기 어려웠고, 꼬마 손님들을 따라오는 어른 손님 대접할 일이 큰 일인데다, 초대장 보내고, 땡큐카드 써보내고, 하는 등의 미국식 파티 절차가 너무도 번거로워 보여서 포기를 한 것이다.

내년 생일도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을까?

그렇기를 바랄 뿐이다…

2011년 1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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