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을 날이 다가오니 유아교육이고 먹고사는 이야기고 뭐고 안중에 없고 임신일기만 쓰게된다. 호르몬의 영향인지, 몸이 무거워 정신이 없는 것인지, 요즘은 두뇌가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듯 하다. 방금 들은 얘기도 금새 잊어먹거나, 늘 해오던 일에 실수가 생기는 일이 다반사이다.
이렇게 정신없는 나로부터 한결 더 정신을 빼놓게 하는 일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제목에 쓴 것처럼, 눈물겹도록 알뜰살뜰한 노산 임산부 케어 시스템이다.
이제 며칠 후면 만으로 세는 미국 나이로 마흔이 된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 의학계에서는 만 35세 이상의 산모를 고위험군 노령산모로 정의하고, 특별한 케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코난군을 낳을 적에는 갓 만 35세가 되는 나이라 그랬는지 양수검사도 안해도 되었고, 이렇게까지 정밀하고 세심한 케어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 하기야, 이번에는 임신성 당뇨가 추가되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 아주 사람이 귀찮을 정도로 병원에서 오라가라, 이런저런 검사를 받으라며 안그래도 정신없는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
그래, 나이 마흔이면 노산이라고 볼 수도 있다.
늦둥이 낳아서 키우기 힘들다고 맨날 말씀하시던 울엄마가 내 막내 동생을 낳은 것이 만 서른 세살 이셨고, 막내딸 친구들로부터 “할매” 소리를 들으시던 우리 외할머니와 막내 이모의 나이 차이는 서른 여덟 살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과학적 연구결과상으로도 만 35세 이후에 출산하는 산모와 아기는 건강상 여러 가지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익히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건강하고, 지금의 임신도 매우 정상적인 과정을 밟아오고 있다. 그래서 의사도 내게 상당히 미안해 하면서 각종 검사를 추가로 받으라고 시키고 있다. “태아의 성장 상태가 매우 정상이고, 네 혈압도 정상이고 피검사 수치도 정상보다 아주 조금 높은 편이라, 별 문제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혈당이 아주 조금 높으니 당뇨교육을 받고 하루에 네 번 자가혈당검사를 해야겠어” 이런 식이다.
임신 32주 부터는 한 달에 한 번 하던 정기검진을 한 달에 두 번으로 늘린 것 정도는 양반이었다.
36주 부터는 매주 정기검진을 받으라는 지시도 불만이 없었다. 출산이 임박했으니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36주 부터 혈당이 높으니 하루 네 번 손가락을 따서 수치를 기록하는 것은 물론이고, 매 끼니 식사를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지 기록하고, 게다가 혈당을 낮추기 위해서 안먹던 아침식사도 해야하고, 식사와 식사 시간 사이에 간단한 – 그러나 탄수화물 수치가 낮은 품목을 골라서 – 간식도 먹어야 한단다. 헐… 그러니까, 하루에 두 끼 먹고 살기도 바쁜 나에게 식사 세 번과 간식 세 번을 두 시간 간격으로 병아리 눈물만큼씩 먹으면서 매일 아침 공복과 세 끼 식사 후 한 시간 마다 혈당을 측정해서 기록하고 먹은 음식의 종류와 양을 기록하라굽…쇼?
임신 38주쨰 접어드는 오늘 정기검진에서는, 앞으로 일주일에 세 번을 병원에 다녀가라는 지시까지 받았다. 물론 혈당검사를 하루 네 번 하는 것도 중단하면 안되고…
이 사람들이… 누굴 놀고먹는 백수로 아나?
안그래도 출산 전에 강의며 해야할 일을 미리 마쳐두자니 바쁜데다, 몸이 무거워서 정신마저 오락가락하는 나에게 이런 무리한 처방을 내리다니!
그 와중에 학생들과 동료교수들이 미리 짜고서 깜짝 베이비 샤워를 해준 것은, 내 정신없음의 불길에 약간의 휘발유를 뿌린 것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주말마다 혹시 이번 주에..? 하는 마음으로 미역국거리와 밑반찬을 준비하고, 신생아 옷과 물품을 준비해두는 것도, 곧 동생이 생기는 코난군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것도, 그냥 심심한 인생에 양념일 뿐이다.
괴담수준의 미국 의료비 체제 하에서 그나마 운좋게 보험 혜택 잘 받는 직장에 다니는 덕분으로, 이 모든 고령임산부 케어를 추가 비용없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불평불만을 해서는 안된다.
내가 참아야지… 길어봤자 2-3주… 어쩌면 내일이면 이 모든 정신없는 상황이 종료될 수도 있다… (물론, 그 이후부터는 더욱 정신없는 인생이 펼쳐지겠지만…)
2012년 2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