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게 지내는 제이 교수님이 열흘간 한국을 방문하러 가셨다. 고등학생인 아들도 함께 데리고 갔기에, 제이 교수님은 연로하신 시부모님과 건강이 좋지 못한 시누이가 잘 지내고 계실지 걱정을 하셨다.
오랜만에 친정 부모님과 상봉하고 모처럼 남편과도 오붓한 시간을 보내게 될텐데, 내가 시댁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자!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금요일의 요리를 시작했다.
(금요일은 오아시스 마켓에 새로 야채와 생물이 들어오는 날이라서, 금요일에 장을 보고 새로운 요리를 하게 된다.)
마침, 길건너 이웃에 사는 엘 교수님의 어머니도 한국에서 다니러 오신 터라, 이번 금요일 요리의 주제는 어르신도 좋아하실 음식 으로 정해졌다.
어르신들이 좋아하실만하기도 하지만, 내 자신이 매운 음식이 먹고 싶기도 했고, 마켓에서 아직도 살아서 움직이는 블루크랩을 본 둘리양이 저걸 사자고 조르기도 해서, 게와 각종 해물을 콩나물과 함께 조리하는 해물찜을 만들기로 했다.
큰 찜솥 안에 콩나물을 듬뿍 깔고, 그 위에 케일과 깻잎을 가늘게 썰어서 얹었다. 한국에서라면 미나리와 쑥갓이 빠지지 않았겠지만 여기서는 구할 수 없어서 대신에 해물의 비린내를 덮어버릴 수 있는 맛있는 향을 생각하다가 케일과 깻잎이 선택된 것이다. 케일은 마켓에서 샀고, 깻잎은 우리 마당에서 자란 것을 뜯어서 썼다.
그렇게 각종 채소를 먼저 깔고, 그 위에 명태와 각종 해산물 (봉지에 포장된 것), 그리고 가장 위에 블루크랩을 얹었다.
명태는 오래전에 한국 마트에서 사다가 냉동실에 넣어놓고 잊고 있던 것을 마침내 꺼내 썼다.
해물에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케일과 깻잎과 콩나물이 솥의 부피 80퍼센트를 차지하고 깔려있다.
한국에서 공수받은 색깔좋은 고춧가루로 양념을 만들어 얹으니 색이 아주 곱다.
양념은 고추장, 고춧가루, 찧은 마늘을 듬뿍 넣고, 깊은 맛을 위해서 멸치액젓과 국간장을 더했다.
20분 가량 찌니 야채의 부피가 줄어서 이렇게 가라앉았다.
생각해보니 게는 잘못 휘저었다가는 콩나물이 엉켜서 먹기도 불편하고 보기에도 안좋을 듯 하여 – 그리고 어쨌든 맛있는 게 국물은 이미 다른 재료에 충분히 스며들었기도 하고 – 먼저 건져내고, 찹쌀가루를 뿌려서 5분 정도 더 쪘다.
찹쌀 가루가 어느 정도 뜸이 들었다 싶을 때 야채와 해물이 잘 섞이고, 찹쌀이 국물을 걸쭉하게 만들도록 크게 휘저어주고, 접시에 담은 후에 아까 건져두었던 게를 맨 위에 올리니 보기에 제법 근사하다.
이맘때 오아시스 마켓에 자주 나오는 블루크랩은 싱싱하기는 하지만 너무 작아서 살을 발라 먹는 품이 더 드는 비효율적인 음식인데, 이렇게 해물찜에 조금 넣으니 게살을 열심히 발라먹지 않아도 그 향을 충분히 즐길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운 해물찜을 먹을 때는 달콤한 샐러드를 함께 먹으면 좋겠고, 브로콜리는 건강에 좋은 슈퍼푸드라고도 하고, 오아시스 마켓에 인근 농장에서 키운 브로콜리가 싼 값에 새로 들어왔길래, 브로콜리 샐러드도 만들어서 이렇게 배달하기 좋은 통에 나눠 담았다.
나는 유학생 시절부터 음식을 만들어서 주위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것을 좋아했는데, 가끔은 ‘이런 정성으로 내 부모형제한테는 베풀지 못하고 (너무 멀리 계시니), 남좋은 일만 하는건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 부모님 같은, 내 형제 같은 사람들에게 내가 잘 대하면, 멀리 계신 내 부모 형제에게도 그 누군가가 이렇게 선한 마음으로 다가와서 좋은 대접을 해줄거라 믿는다.
돌고돌아 몇다리 건너면 다 이어지는게 사람 사는 세상이기도 하고…
좋은 일 하면 복받는다 라는 너무나 상식적인 말이 결국 이런 상황에 적용되는 것이니 말이다.
코난군과 함께 음식 배달을 갔더니, 두 집의 어르신들이 모두 무척 고마워하며 덕담을 해주셨다.
어차피 우리 먹을 음식을 하면서 조금 더 만들어서 이웃사람들을 챙기니, 나중에 받을 복을 기다릴 것도 없이 오늘 당장 기분이 좋다.
2014년 7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