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예약한 일정과 객실
어린이 두 명을 포함한 4인 가족이 4박 5일간 식사와 숙박과 선내 대부분의 활동에 참가할 수 있는 크루즈 비용은 성수기와 비수기간에 차이가 많이 난다.
남편과 나와 아이들 학교를 무단 결석하고 비수기의 싼 일정을 고른다면 2500 달러 선에서 다녀올 수도 있다. 하지만, 둘리양이나 코난군이 학교를 빼먹는 것은 아직 어리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대학 교수가 학기 중간에 강의를 취소하고 크루즈 여행을 다녀온다는 것은, 아무리 테뉴어를 받아 철밥그릇이라 하더라도 너무 뻔뻔하고 비윤리적인 행위이다.
그래서 학기 한중간의 일정은 모두 고려대상에서 먼저 제외했다.
남은 것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기간.
그런데 여름방학 기간 중에도 회사원들의 휴가가 몰리는 독립기념일 주간이나 그럴 때는 성수기 못지않게 가격이 높았다. 조금 낮은 가격대의 일정을 찾으면 역시나 남편과 내 학기말 시험 기간이끼거나 가을학기 개강준비를 위한 출근 기간에 끼었다.
게다가, 여름에는 운이 나쁘면 허리케인을 만나서 배가 많이 출렁이기도 하고, 항구에 기착하지 못하고 바다 위에서만 떠돌다가 돌아와야 하거나, 해변에서 폭우를 만나 놀지 못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
그 모든 문제에 더해서 한여름에 플로리다주로 내려가는 것 자체가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격이다. 우리 부부는 플로리다 바로 위 조지아 주에서 다년간 살아봤기 때문에 한여름에 남쪽 주에서의 야외활동은 어른은 물론이고 아이들까지도 지치게 만드는 힘든 일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더우기 후배네 집에서 두 가족이 함께 놀아야 하는데 한여름은 그집에게도 민폐이고 우리도 즐거운 여행이 되기가 어려워서 여름 일정도 제외시켰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의 집중 탐구 대상이 된 겨울 방학 기간.
1월 2일에 출발하는 일정이 3천 달러 초반으로 가장 저렴했다.
그런데 남편이 이직을 안하기로 결정하면서 그 주간에 반드시 출근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12월 22일에 출발해서 26일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5천 2백 달러 짜리이다.
16년 전에 남편과 연애를 막 시작했을 때, 겨울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야반도주 하듯이 단둘이 몰래 떠난 디즈니 월드 여행에서 하룻밤 33달러 짜리 모텔에서 숙박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럭셔리여행이다!
중국인이 운영하던 썬 모텔… 그 빨간 간판의 글자가 아직도 기억난다 🙂
신문의 쿠폰 조각을 오려서 물어물어 찾아갔던 일식당도 기억나고…
그렇게 피어난 우리의 사랑이 동지애로 맺어져서 이젠 두 아이들을 데리고 무려 열 배도 넘는 예산 규모의 여행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므흣하다 🙂
그런데 5천 달러라는 액수에 허걱 하고 놀라기 전에 잘 따져보면 그게 또 그렇게 심하게 비싼 것은아니다.
3년 전에 한교수네 집에 놀러가서 두 아이들을 데리고 디즈니 월드를 갔던 경험을 돌이켜보면, 디즈니 월드에 입장하는데 쓴 돈만 해도 한 사람당 100달러 가까이 되었고, 주차비도 비쌌고, 너무 넓어서 차를 타고 나와서 점심을 사먹고 다시 들어가는 일이 불가능하니 놀이공원 안에서 식사와 간식을 다 사먹어야 했던 그 비용을 생각하면 우리 가족이 하루를 디즈니 월드에서 즐기는 비용이 500달러는 훌쩍 넘었다.
거기에 (한교수네 집에서 지내서 따로 지불하지는 않았지만) 숙박비까지 포함한다면, 한 가족이 디즈니월드에서 하루를 온전히 즐기는데 드는 돈 곱하기 4일 한 것과 디즈니 크루즈에서 고급 음식을 무제한 먹고 고급 객실에서 서비스를 받으며 줄서서 기다리지 않고 디즈니 캐릭터가 제공하는 쇼와 볼거리를 즐기는 4박 5일의 값에 차이가 크지 않다.
그래, 두 부부가 아이들 키우면서 밥벌이 하느라 고생 많았는데 추운 겨울에 따뜻한 남쪽나라 가는크루즈 배에서 500만원 쓰고 호강 좀 하는 거… 좋지 않아?
–> 이런 악마의 속삭임이 내 안에서 강하게 메아리쳤다 🙂
어떤 여자들은 핸드백 하나에 그 정도 돈을 내고 사서 들고 다니기도 한다는데…
하는 내 말에 남편이 부창부수로 맞받아친다.
어떤 사람들은 몇 천만원 하는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도 사고 그러더라!
ㅎㅎㅎ
그래, 갑시다!
하니 남편이 여름학기 강의를 열심히 해서 크루즈 비용을 벌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객실을 골라보니, 창문이 전혀 없는 가장 싼 방이 5천 몇 십 달러, 창문이 있는 방은 5천 백 몇 십 달러, 베란다가 달린 방은 5천 2백에서 5천 3백 달러 사이이다.
디즈니 크루즈의 객실은 배의 종류에 상관없이 등급을 나누어 구분하고 있는데, 10A, 10B, 9A, 9B, …. 5A, 5B, 5C, 5D, 5E, … 1 A, 1B… 하는 식이다. 숫자가 높을수록 비싼 고급 객실인데, 1, 2, 3 정도의 급은 호텔로 치자면 방과 거실이 따로 있는 스위트룸 같은 곳이라 그 가격이 나로서는 굳이 알아보고 싶지 않을 만큼 비쌌다.
우리가 예약한 방은 5등급인데 베란다가 딸려 있는 객실이다.
처음에는 굳이 창이나 베란다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1-200달러 차이로 베란다를 선택할 수 있다면 방 안 공기를 신선하게 환기할 수도 있고, 아이들도 좋아할 것 같아서 베란다가 붙은 방 중에서 가격이 좋은 것을 찾아보았다.
10층의 가장 뒷편에 위치한 방은 베란다가 다른 방보다 두 배도 더 넓어서 의자 뿐만 아니라 기대어 눕는 기다란 침대까지도 놓여 있는데, 베란다의 기다란 벽 때문에 방 안에서 바다가 많이 보이지 않는다며 (Obstructed view) 오히려 싼 값으로 나와있었다.
이 방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도 한 층만 걸어 올라가면 뷔페 식당이 있어서 붐비는 시간대에 얼른 올라가서 음식을 가지고 내려와서 방 안에서 먹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렇다! 여기 뷔페에서는 음식을 싸들고 나올 수가 있다 🙂 물론 식당에 남보다 먼저 가서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도 있다.
인터넷을 잘 살펴보면 각 방별로 사람들이 평가를 남긴 싸이트가 있다.
자기가 예약할 방 번호를 쳐서 후기를 읽어보면 그 방의 장단점을 잘 파악할 수 있다.
우리가 묵을 방은 위에 쓴 장점이 있는 반면, 단점은 바로 위가 식당인데 평소에는 전혀 소음이 들리지 않지만 이른 새벽 시간에 식당 직원들이 일을 하는 소리가 들려서 잠귀가 밝고 예민한 사람들은 다소 시끄러울 수 있다고 한다. 코난군과 코난아범이 소리에 예민한 편이라 이런 점을 설명해주니, 놀러가서 편한 마음으로 잘 때에는 그깟 소음이 그렇게 방해가 되지 않을거라고 한다. 드넓은 베란다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더욱 그런가보다 🙂
예약금 1천 달러를 입금했고, 나머지 잔금은 여행을 출발하기 90일 전까지 입급해야 한다.
만일 그 사이에 마음이 변하거나 사정이 생겨서 여행을 취소하게 되면 계약금은 전액 되돌려 받을수 있고, 90일이 넘어가면 기한별로 위약금이 산정되어 있어서 그 금액을 제하고 나머지를 돌려 받을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준비를 시작하는 것.
가장 먼저 나는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
수영복을 입을 일이 많을테니 사진에 찍혀도 민망하지 않을 정도의 몸매를 만들고, 또 4박 5일간 무제한 먹고 놀 예정이니 그에 대비해서 몸의 살을 미리 없애야 한다.
1월의 내 모습: 수영복을 입고 사진찍기에는 다소 부적합해 보임
2월의 내 모습: 일주일간 앓고난 뒤라 군살이 다소 제거된 상태. 조금 만족 🙂
매일 열심히 운동해야지!
도시락도 간편하게 준비해서 가볍게 먹고!
디즈니 크루즈 가서 맛있는 거 많이 먹을테니 지금은 좀 부족하고 부실하게 먹어도 괜찮아!
2016년 2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