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도 제법 분주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둘리양을 주주네 집에 데려다 주었다. 방학 동안 월요일과 목요일은 주주네 집에서 함께 놀고 주주 엄마가 공부도 봐주겠다고 했는데, 목요일은 이른 오후에 아트 레슨이 있으니 일찍 시작해서 조금이라도 더 놀겠다는 의지로 방학치고는 이른 시간인 아침 8시 30분까지 데려다 주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후에는 수술 환자가 있는 이웃집의 저녁밥 당번인 날이라 분주하게 재료 준비를 했다 (이 이야기도 다음 블로그에서 쓰겠다 ㅎㅎㅎ). 코난군의 점심을 차려주고 귀가한 남편의 도시락 설거지를 하고 저녁에 배달할 음식을 미리 만들고, 2시에 코난군을 데리고 집을 나서 주주네 집에 들러 둘리양을 픽업하고 아트 레슨에 데려다 주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채식주의자가 된 조나스가 우리 아이들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저녁 메뉴를 따로 요리하고, 아이들을 레슨에서 데려온 뒤에는 이웃집에 음식 배달을 했다. 그 다음에는 주주네 집에 놓고 온 물건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 둘리양과 함께 또 한 번 주주네 집을 다녀왔다. 이 모든 일상의 과정 중에 간간이 이메일을 확인하고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의 과제를 채점하고, 한명숙 선생님과 출판할 책의 원고를 검토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전 날인 수요일도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대략 나열해보자면… 오전에는 온라인 강의 일을 하고 (채점과 이메일 등) 한국책 원고를 썼다. 남편은 전날 메이브 엄마가 사와서 먹고 남은 피자를 도시락으로 챙겨보내고 아이들은 요리를 해서 점심을 먹였다. 다음은 둘리양의 치과 진료를 받으러 갔다. 얼마전 정기 검진에서 예전에 충치치료를 했던 자리에 충치가 더 진행된 것을 발견해서, 떼운 곳을 파내고 다시 더 넓게 떼워야 했다. 다행히도 영구치가 아니어서 더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단도리를 하고 1-2년 안에 빠지게 두면 된다고 했다. 둘리양은 이제 더 이상 병원에서 울고불고 하는 아기가 아니어서 무척 대견스러웠다. 치과 진료를 마친 다음 둘리양을 집에 데려다주고 바로 차를 돌려 래드포드에서 있는 회의에 참석했다. 사외이사로 봉사하고 있는 보드에서 새로운 CEO를 작년에 임용했고, 이런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늘 그러하듯, 새로운 비전과 향후 몇 년 간의 전략적 계획을 수립하는 회의를 하고 있는데, 이런 추상적인 일이 실생활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도 또 이런 철학적인 기초 개념을 정립해야 실질적인 업무에서 필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에 등대같은 역할을 한다는 깨달음이 오기도 한다. 암튼, 그 회의를 마치고 집에 와서는 또 마찬가지로 주차를 하고 집안에 들어갈 틈도 없이 다시 둘리양을 픽업해서 동네 도서관에 갔다. 둘리양이 필요한 책이 있다며 도서관이 문을 닫기 전에 데려다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도서관 문을 닫을 시간도 가까웠지만, 얼른 돌아와서 가족들 저녁 식사도 준비해야 하니, 좁은 동네에서 부지런히 달렸다. 이런 식으로 동네 안에서만 왔다갔다 운전을 해서 하루에 40마일 (64킬로미터) 주행은 너끈히 하고 있다. 연료비도 비싼데 말이다.
둘리양이 자기 책을 고르는 동안에 나는 또 다음날 업무에 필요한 문자를 보내고 있었는데, 둘리양이 돌아와서 ‘저쪽 코너에 한국책이 있더라’ 하고 알려주었다. 누가 기증을 했는지 한국책이 아주 작은 책꽂이 두 칸에 들어있었다. 그 위의 네 칸에는 중국책이 들어있기도 했다. 절반은 아동 서적, 절반은 어른들이 읽기 좋은 책이었는데, 그 중에 세 권을 골라서 빌려왔다.
그게 바로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집, 달려라 아비 이다. 책을 빌려온 날과 그 다음날은 위에서 거창하게 나열한대로 너무 바빠서 책을 들춰볼 시도조차 하지 못했고, 오늘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서 달려라 아비 를 읽기 시작했다. 짧은 단편 소설이어서 한 편을 읽고 둘리양 아침을 차려주고, 또 한 편을 읽은 다음 설거지를 하고, 그렇게 주의를 집중하지 않고 지속적인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읽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1980년생인 김애란 작가는 (내 기준으로는) 아직 젊은 나이지만 삶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난 것 같다. 동네 편의점 세 곳을 번갈아 다니며 일상생활용품을 구입하는 이야기일 뿐인데 그 안에 온 세상 사람들의 삶이 투영되고, 옥상에서 스카이 콩콩을 타고 노는 아이의 관점에서 가족과 사회와 우주까지 아우르는 이야기가 서술된다. 사소한 듯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는지!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 나도 이틀 동안의 사소한 일상을 써보았다 🙂
여름 방학이라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어쩐지 더 바쁘고 그래서 자칫하다 중요한 일을 놓칠까봐 주의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2022년 6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