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군은 고등학교 두 번째 학년이어서 대학에 입학 지원을 하는 마지막 학년이 되려면 아직 2년이 남아 있지만, 우리 부부는 미국 대학의 학부과정 입학 절차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아이의 입시를 도와줄 준비를 해야 한다. 요즘은 한국의 대학 입시도 그렇다고 하는데, 미국의 입시는 너무나 다양한 경로가 있고 합격자를 가려내는 심사 기준이 대학마다 학과마다 전부 다르다. 게다가, 대학에 입학을 지원할 때 첨부할 자료가 수능시험 성적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활동 경력, 수상 경력, 등이 포함되기 때문에 12학년이 되어서야 그 준비를 하는 것은 너무 늦다. 그래서 지금부터 입시 준비를 차근차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나와 같은 대학에서 같은 전공을 공부했고, 미국 유학을 와서 교수로 일하는 것, 아들과 딸을 자녀로 둔 것까지 비슷한 점이 많은 일 년 후배 한교수는 이번에 첫 아이가 대학에 입학을 했는데, 그 가족으로부터 얻어들은 지식이 좋은 간접 경험이 되고 있다. 후배인 한교수도 미국 대학 입시는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일이어서 혼자 공부를 많이 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귀동냥으로 정보를 얻기도 했다고 한다. 코난군이 그 집 첫 아이보다 세 살 아래인 덕분에 나는 한교수가 취합한 정보와 실제로 겪은 경험담을 손쉽게 물려 받을 수 있어서 운이 좋다. 심지어 한교수의 아이는 공부를 아주 잘해서 대단한 대학의 더욱 대단한 장학금을 받고 입학을 했기 때문에 코난군에게 클라라 누나 처럼 너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에 진학하라는 격려를 해줄 수 있어서 더욱 좋다.
클라라 누나가 “대단한” 학교에 진학했다고만 쓰는 것은, 그 학교의 이름을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즉,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아는 하버드, 엠아이티, 같은 학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버럴 아츠 컬리지라고 분류되는 작은 규모의 사립대학교들은 소수정예로 학생을 모집해서 매우 수준높은 교육을 제공하고, 사회 각계에 자리잡고 있는 동문들의 기부와 협조로 장학금은 물론이고 인턴쉽이나 취업에 무척 유리한 지위를 갖는다는 잇점이 있다. 그런 학교들은 사립대이기 때문에 등록금이 무척 비싸지만, 가족 소득이 낮거나 학생의 수준이 아주 높은 경우에는 그 비싼 등록금을 감면받는 장학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다. 클라라 누나는 등록금 전액 지원은 물론이고, 기숙사에서 생활할 때 들어가는 비용과 한 학기 해외연수를 받을 때 들어가는 비용까지도 받으며 입학을 했는데, 1학년 한 해 동안 8만달러를 받은 셈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공부만 잘 한다고 좋은 대학에 갈 수는 없다. 물론, 공부를 못하면 당연히 좋은 대학에 갈 수 없다 🙂 해마다 입시철이 지나고나면 미국의 한인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어떤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오만가지 수상 경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난무한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게 다 아시안 인종을 차별해서 생긴 일이라는 억측도 많이들 한다. 어찌보면 억측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 대학교 입장에서는 다양한 인종의 학생을 선발하고 싶은 이유로 성적이나 다른 경력이 좀 부족해도 특정 인종 학생에게 가산점을 준다든지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얼마전 미국 연방법원에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판결이 나오기는 했지만, 입학 심사 과정이 공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학교마다 전공마다 입시지원 종류마다 다른 심사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학 입시와 인종 차별의 상관성을 그 누구도 명확하게 그렇다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대학 입시에서 내가 노력해서 만들어내는 경력과 실력이 있고, 인간의 힘을 넘어선 그 어떤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수학과 영어를 잘 해서 수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 운동이나 악기 연주 등으로 전국 대회에서 상을 받는 것, 교내외 조직에서 회장을 맡아 리더쉽을 발휘하는 것, 지역사회에 큰 공헌을 해서 상을 받는 것 등은 아이가 노력하고 가족이 도와서 해낼 수 있는 분야이다. 특정 인종으로 태어나는 것, 특정 연도에 특정 학교에서 꼭 선발해야겠다고 정한 그룹에 속하는 것 (예를 들면 학교 테니스 선수층이 약해졌으니, 올해는 이왕이면 테니스를 잘 하는 학생을 우선적으로 선발하자 하는 것과 같은 학교 내부 사정이 있을 수 있다), 등등은 어차피 미리 알 수도 없고 미리 준비할 수도 없는 분야의 일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대학에 입학한 이후 아이의 생활과, 대학을 졸업한 이후의 진로도 고려하고 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하나의 성취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이후의 모든 삶이 다 성공적으로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대학과 전공이 우리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곳을 고르고, 그 학교에서 원하는 입시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시키려고 한다. 충격적인 소문이지만, 하버드와 같은 명문대학에 진학한 이후에 세상에는 자기보다도 더 똑똑한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그런 학생들과 경쟁에서 뒤쳐져서 낙심하다가, 자퇴하거나 심지어 세상을 등지는 아이들이 드물지 않다고 한다. 마음 약한 코난군이 만약에 자신의 실력보다 높은 대학에 운이 좋아 입학했다 하더라도 이런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으니, 거름지고 장에 가는 사람처럼 무작정 아이비리그 명문대를 가라고 부추겨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대학 학자금은 몇 년 전부터 저축을 해오고 있다. Virginia 529 College Saving 이라고 하는 주정부에서 지원하는 저축 상품에 가입을 했는데, 가입 당시의 주립대학교 등록금을 지정해놓고 그 액수 만큼을 수 년에 걸쳐 적금처럼 매월 분납하다가 아이가 버지니아 주립대학교 중에 한 곳을 가게 되면 그 해의 등록금이 얼마까지 올랐든 상관없이 저축한 돈으로 등록금 해결이 된다. 다행히도 버지니아 주에는 수준 높은 주립대가 많아서 선택의 폭이 넓다. University of Virginia 같은 주립대는 미국 전체 주립대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교육 수준이 높고, 윌리엄 앤 메리 는 하버드에 이어 신대륙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역사와 명망을 자랑하는 대학이다. 남북전쟁 당시에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남부군 편이었던 바람에 전쟁 이후 정부의 지원을 많이 받지 못했던 아픔이 있고, 그 때문에 하버드처럼 명성을 드높이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우리가 사는 동네에 있는 버지니아 공대가 있고, 조지 메이슨 등의 좋은 주립대학교가 많다. 만약에 리버럴 아츠 컬리지를 간다고 하면, 주립대 등록금 혜택은 받을 수 없지만, 대신에 장학금 제도를 노려볼 기회가 있다. 클라라 누나가 진학한 워싱턴 앤 리 대학교나 리치몬드 대학교 같은 곳이 버지니아에 있는 리버럴 아츠 컬리지이다.
그렇다면 전공은 무엇으로 선택해야 할까? 아직까지도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수학을 또래 친구들보다 잘 하기는 하지만 이과 성향을 가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므로 버지니아 주립대 중에서 버지니아 공대에 입학할 것 같지는 않다. 위에 언급한 다른 주립대는 법대나 인문학 경제 등의 문과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니, 그 학교에서 제공하는 전공을 잘 살펴보고 코난군의 관심사와 맞는 것을 지금부터 찾아봐야겠다. 글쓰기도 잘하고 수학도 잘하고 바이올린도 테니스도 잘하는데다 친구들과 인간관계도 좋은, 팔방미인이라서 코난군의 전공을 찾는 일이 간단하지 않다 ㅎㅎㅎ
2023년 9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