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2

헨리에타 레빗에 관한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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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둘리양은 밤하늘의 달과 별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수퍼 블루 문이 언제 떠오른다고 알려준다든지, 밤에 유성우를 함께 지켜보자고 하는 일이 그 예이다. 평소에 자신의 감정이나 관심사를 드러내지 않는 성격을 고려해보면, 둘리양이 얼마나 달과 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번 학기에는 교육학 전공 저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 중에 한 학생은 연극을 전공하면서 부전공으로 교사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내 수업을 듣고 있다. 두 번째 시험 일정이 연극 공연과 겹치게 되어서 따로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연출하고 있는 연극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일런트 스카이 는 2015년에 로렌 건더슨이 쓴 희곡인데, 여성 천문학자 헨리에타 레빗에 관한 이야기를 연극으로 보여준다. 100년전 실존 인물인 헨리에타, 그녀의 여동생 마가렛, 하버드 천문연구소 인간 컴퓨터인 애니와 윌리어미나, 피커링 교수의 조교이자 헨리에타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 피터가 등장한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은 무대 조연출이어서 무대를 설치하고 관리 감독하는 일을 맡고 있다고 했다.

연극 포스터

둘리양은 최근에 학교 클럽 중에서 사회봉사 클럽과 드라마 클럽에 가입을 했다. 사회봉사 클럽은 만들기 활동을 많이 하고 또 친한 친구들이 가입을 해서 둘리양도 가입을 한 것이다. 드라마 클럽은 뮤지컬을 연습해서 학기 말에 공연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둘리양은 그 또래 다른 아이들이 춤과 노래와 연기를 하고 싶은 이유로 가입하는 것과는 달리, 공연 연출을 하고 싶어서 가입했다. 매사에 모든 일을 미리 계획하고 계획대로 착착 진행하기 좋아하는 둘리양에게 연출은 아주 잘 어울리는 일인 것 같다.

여성 천문학자의 일대기를 다룬 연극 공연이라니, 둘리양에게 딱 어울리는 행사이다. 연극표 값이 원래 비싸지도 않은데다 나는 교직원 할인을, 둘리양은 어린이 할인을 받으니 더욱 좋았다. 동네 친구 매디와, 절친 주주도 함께 가자고 권했더니, 주주는 엄마까지도 함께 가겠다고 했다. 오랜만에 주주 엄마도 만나고, 아이들은 공연을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었다.

연극 연습중인 학생들 100년전 의상을 입어야 하니, 그 시절 의상과 비슷한 길이의 치마를 입고 연습을 하고 있다.

헨리에타 레빗은 하버드 대학교의 여학생 분과인 랫클리프 대학을 졸업하고 (당시에 하버드 대학은 남학생만 입학할 수 있었다.) 하버드 천문 연구소에서 인간 컴퓨터로 일을 시작했다. 컴퓨터라는 직종은 요즘으로 치자면 말단 경리 쯤 되는 일인데, 연구자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복잡한 계산을 하도록 고용된 사람들이고, 박봉에 단순직이어서 여자들이 주로 종사했다. 피커링 박사는 하버드 대학교 교수이자 천문학자인데, 자기집 가정부가 집안일만 하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똑똑한 것을 알고 자신의 연구실에서 컴퓨터로 일하게 한 것을 비롯해서 수많은 여성 컴퓨터를 고용해서 천문학 연구를 활발하게 한 사람이다. 헨리에타 레빗도 피커링 박사의 연구에 관심을 가져서 그 연구실에 취직을 했다.

그 당시 미국에서 여성은 투표권도 없고 대학에 진학하는 데에도 장애물이 많았으며 (예를 들면 여학생은 입학할 수 없는 하버드 대학교 교칙) 그저 집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주부 역할만이 사회가 기대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헨리에타는 단순사무직으로 일하면서 자신이 늘 계산하고 분석하는 연구 자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업무 시간이 끝난 밤중이나 주말에 자신만의 연구를 계속했다. 청각장애 외에도 건강이 좋지 못해서 고향집에 내려가 휴양을 한 적도 있고,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임종을 위해 고향에 내려가 있었던 시간도 있었는데 그 때에도 연구 자료를 가지고 가서 연구 활동을 지속했다.

헨리에타 레빗

연극 중에서는 남자 조교인 피터와 사랑에 빠지지만 가정사와 연구활동 때문에 둘의 사이가 오래 가지는 못한다. 실제에서도 헨리에타 레빗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 병약한 몸으로 연구를 열심히 해서인지 고작 53세의 나이로 죽는다. 하지만 그녀의 연구 결과는 전세계 천문학계에 큰 공헌을 했는데, 별의 밝기가 지구로부터의 거리와 상관이 있다는 발견을 했고, 그 덕분에 우주에는 우리 은하계 말고도 수많은 은하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밝히는 근거를 제공했다. 은하계 하나 안에 태양과 같은 별(=항성)이 오천억에서 육천억 개 존재한다고 하는데, 그런 은하계가 하나가 아니라 천 칠백 억 개 이상이 있다는 사실이 헨리에타 레빗의 연구 덕분에 밝혀졌다. 허블 망원경으로 유명한 천문학자 허블 박사는 헨리에타 레빗의 연구를 높이 치하했고, 노벨상 위원회도 마침내 헨리에타 레빗에게 노벨상을 주려고 했지만, 헨리에타는 이미 사망한 시점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주는 상이어서 아쉽게도 노벨상은 수여되지 못했다.

연극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무대연출을 맡은 내 학생이 인사를 하고 둘리양에게 연극 연출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이 학생은 그로부터 며칠 후에 미국의 유명한 어린이 티비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릿 제작사에서 인턴쉽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내게 알려주기도 했다. 내 수업에서도 언제나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인데,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맞다.

2023년 10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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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h

블로그 즐겨 읽는 애독자입니다. 타국에서 에너지 넘치게 생활하시는 모습이 큰 귀감(?)이 되어요.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하기도 하구요.
일전에 댓글을 남겼던 것도 같은데, 저도 워낙 둘리양과 비슷한 성격이라 글을 읽을 때마다 아.. 울 엄마 입장에선 내가 저렇게 보였겠구나..ㅋㅋ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중학생때쯤 천체랑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서, 이미 알고 계실 수도 있지만.. 제가 흥미롭게 봤던 리소스도 공유해드리고 싶어서요.

https://apod.nasa.gov/apod/astropix.html 나사에서 매일 사진을 올려주는데, 너무 전문적인 지식도 있지만 가끔 들어가서 이런저런 사진을 보면 재미있어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이건 중3때쯤 읽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제 인생 책입니다.

sky guide: 앱인데 휴대폰을 들면 보이는 별 이름을 보여줘서 좋아요. 비슷한 앱이 많습니다.

그럼 이번 주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Papageno

댓글 감사합니다. 천체 망원경으로 행성이나, 안드로메다 은하를 좀 보여주고 싶은데, 준비만 해놓고 아직 실행을 못했습니다. 핸드폰을 거치대로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준비를 했는데….얼마 전 까지는 해가 늦게 져서 어두울 때까지 기다릴려면 너무 늦어서 못해보고. 이젠 해가 좀 일찍 지긴 하지만, 너무 피곤해서 못하거나, 날이 춥거나 해서 기회를 못 찾고 있네요. 천체 지도 책도 사놓았는데 아직 못 쓰고 있습니다. 조만간에 꼭 시도를 하고 둘리에게 사용법을 익히게 해서 스스로 보고 싶은 것 찾게 하고 싶은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조만간 망원경으로 찍은 천체 사진도 블로그에 남길까 합니다.

hhh

둘리양은 둘리아범님이 계셔서 참 든든하겠어요. 부모님 두 분 모두 매사에 열정적이시니.. 저는 둘리양만할 때 대기 질 안좋기로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곳에 살아서, 대학에 가서야 천체망원경을 접해봤네요. 천체 사진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