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5
새해맞이 파티, 주주 엄마의 초대

새해맞이 파티, 주주 엄마의 초대

Loading

지난 번 김장 김치를 맞교환하며 만났을 때, 겨울 방학 동안에 같이 밥 한 번 먹자고 주주 엄마 제니와 약속을 했었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바쁜 여자 제니는 짧은 겨울 휴가를 내기 전에 모든 환자를 다 보느라 일주일에 80시간을 일했다고 한다. 단순 노동을 하더라도 주 80시간은 가혹한 노동인데, 정신이 아픈 사람들을 만나 증상을 파악하고 진단과 처방을 하는 고도의 정신 노동을 그렇게나 많이 하다니,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오랜만에 만난 주주와 둘리양

그렇게 바쁜 시간을 보낸 후에 드디어 우리가 함께 모이는 시간을 가졌다. 코난군과 남편은 테니스 대회를 다녀오느라 참석하지 못하고 둘리양과 나만 제니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는데, 거기에는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분도 계셨다.
주주가 아기였을 때부터 함께 살면서 주주를 돌봐주시던 주주의 외할머니는 몇 년 전부터 프랑스 니스에서 주주의 이모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이번에 주주의 이모와 함께 미국을 방문하셨다.
지금 연세가 84세인데 프랑스에서 수영을 열심히 하시고 맏딸이 정성껏 모신 덕분인지 전보다 더 건강하고 좋아보였다.

주주의 외할머니와 나

나를 다시 만나 기뻐하신 것은 물론이고, 몇 년 안본 사이에 훌쩍 자란 둘리양을 보고 놀라워하셨다. 영어를 전혀 못하시는 분이어서 나는 중국어로 신녠 콰이러! 하고 인사를 했다 🙂
중국의 명절 인사는 명절 이름을 먼저 말하고 그 다음에 콰이러 를 붙이면 되는 것 같다. 지난 추석에 쫑추지엥 콰이러 를 연습하면서 배운 것이다. 콰이러 중에 마지막 음절인 “러”의 발음에 유의해야 하는데 “러시아” “러브” 등의 “러”와는 사뭇 다른 발음으로, 아랫턱은 살짝만 내리고 혀는 입천장을 튕긴 다음 입안에 떠있도록 유지해야 하는 까다로운 발음이다. 주주와 주주 엄마가 내 발음이 완벽에 가깝다고 칭찬해 주었다 ㅎㅎㅎ

주주의 큰이모가 음식을 나르고 있다.

이번 미국행은, 주주의 이모, 즉 제니의 언니가 사위를 맞이하는 결혼식이 미국 시카고에서 있어서 이루어진 것이다. 제니의 집에서 연말과 새해맞이를 하고 시카고에 가서 결혼식을 시키고 다시 우리 동네로 돌아왔다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는 긴 여정이다.
주주의 이모부는 ITER 라고 하는 전세계 과학자들이 모여서 새로운 융합 에너지를 개발하는 연구소에서 일하는 과학자이다. 부부가 원래는 중국인이었으나 일본에서 오래 살면서 일본 국적을 취득했고 그 이후에는 다시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주주의 이모는 영어는 전혀 못하지만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말한다.

12월 31일 저녁에 미리 새해를 축하하는 건배

주주의 아빠까지 함께 모인 이 날은 가족모임인데다 중국어 밖에 못하시는 할머니를 배려해서 중국어를 주로 사용했지만, 나의 아주 짧은 일본어로 주주 이모와 간단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주주의 아빠와 엄마가 영어를 중국어로 통역해주기도 해서 모두들 즐거운 대화를 했다. 주주의 엄마도 10년 정도 일본에 살면서 직장을 다닌 경험이 있어서 내가 아는 일본어를 연습하는 것이 더욱 재미있었다.

주주 엄마가 찍어준 사진을 보니, 내가 가장 상석에 앉아있었다. 내가 거기에 앉은 것이 아니라 주주 엄마가 앉으라고 해서 앉았던 자리이다 🙂

주주의 이모는 올해 환갑을 맞은 주주 아빠와 동갑내기인데, 젊었을 때 국가대표 쿵푸 선수여서 그런지 지금도 활기차고 미모도 뛰어났다. 나보다 한 살 위인 제니나 나보다도 더 젊어보일 정도였다.

주주 아빠가 가지고 온 중국 술인데 알콜 함유량이 아주 높다고 한다.

원래는 우리집으로 주주의 이모와 할머니를 초대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주주 엄마가 음식을 우리집으로 가지고 와서 장소만 빌리고 우리집에서 새해맞이 파티를 하자고 계획을 했었다. 아무래도 우리집이 제니의 집보다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앉아 식사를 하기 편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코난군의 테니스 대회가 겹치고, 노환으로 약간의 치매 증상과 시력 문제 때문에 주주의 할머니는 일몰 후에 집밖에 나가있는 것을 싫어하신다는 문제가 있어서, 제니의 집에서 모이게 되었다.
공연히 나 때문에 안그래도 바쁜 주주 엄마와 멀리서 온 손님인 주주 이모가 음식 준비를 하고 집을 정리하느라 바쁘게 된 셈이다. 식탁에 앉을 때도 얼떨결에 주주 엄마가 앉으라는 자리에 앉았는데 나중에 보니 가장 상석에 나를 앉혔다.

음식 준비로 분주한 모습

뷔페식으로 차려놓고 각자 덜어서 먹게 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음식을 덜기 전에 먼저 나에게 코난군과 코난아범을 위해 미리 음식을 덜어놓으라고 권했다. 과분한 친절과 대접으로 민망할 지경이었다. 코난군과 코난아범이 좋아할 만한 음식 몇 가지를 큰 반찬 통 두 개에 덜어놓고 식사를 시작했는데, 나중에 집에 가려고 하니, 더 큰 통 두 개와 봉지 서너개에 음식을 더 싸주었다. 다음날이 지나면 결혼식 참석차 집을 며칠 간 비우게 되니 남은 음식이 처치곤란이라는 말로 민망한 나를 설득해주기까지 했다.

뷔페식으로 차린 여러 가지 음식들

넓은 국토를 가진 중국의 설날 풍습은 지역에 따라 많이 다르겠지만, 제니의 고향인 연변에서는 반드시 만두를 빚어서 먹어야만 설날을 보냈다는 의미가 된다고 한다. 만두 속은 낯선 중국 향신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고 부추와 돼지고기를 주로 사용해서 내 입맛에 맞았다.

만두피까지 손수 반죽한 완전 홈메이드 만두 – 중국의 설날 음식이라고 한다.
닭튀김과 새우
두부 요리와 냉채

만두 말고도 여러 가지 음식을 먹었는데 죽순, 목이버섯, 벨페퍼를 매운 양념과 함께 볶은 요리가 가장 맛있었다. 오아시스 마트에 가면 여러 가지 중국 양념을 파는데, 어떤 맛인지 몰라서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 요리에 사용한 양념은 맛을 알게 되었으니 다음날 당장 마트에 가서 같은 제품을 사왔다. 주주 엄마도 같은 식으로, 내 덕분에 몰랐던 식재료를 오아시스 마트에서 구입해서 요리를 하는 일이 종종 있다. 주방에서 발생하는 문화교류이다 🙂

매운 양념이 맛있었던 죽순 버섯 볶음

이 중국 양념은 핫 칠리 소스 라고 영어로 써있는데, 우리 나라의 고추 기름보다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 있다. 고춧가루 외에도 땅콩이나 말린 두부 같은 것이 들어 있어서 다른 양념을 따로 더 넣을 필요없이 음식 맛을 잘 낸다. 매운 맛을 좋아하는 내게 아주 좋은 양념이어서 앞으로 자주 사먹을 것 같다.

2024년 1월 4일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Oldest
Newest Most Voted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