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 고등학교에서는 스포츠 활동을 중요히 여긴다. 새 학년이 시작 되면서 부터 가을 스포츠, 겨울 스포츠, 그리고 봄 스포츠 등으로 학년 내내 다양한 스포츠를 제공한다. 우리 아이들이 2월 하순부터 시작하는 학교 스포츠 활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코난군은 고등학교 테니스 팀에, 둘리양은 육상 팀에 가입하게 되었다. 한참 자라는 나이에 스포츠에 참가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다만, 미국의 학교들의 스포츠에 대한 과도한 관심 (프로 선수가 되길 바라거나,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거나 하는) 혹은 집착에 의해, 다양한 재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된다는 것이 문제다. 코난 군의 테니스 팀의 경우 월, 수는 3시간 이상, 다른 날은 2시간 이상의 연습, 토요일 오전의 근력 운동 등 6일의 참가가 요구된다. 학교의 행사 이거나 아픈 경우가 아니면, 연습에 빠져서는 안된다. 둘리 양의 경우도 주중 5일 연습에 하루라도 빠져서는 안된다.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집 아이들은, 다른 집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봄 스포츠가 시작되기 전에,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주중에 2번 버지니아 텍에서 하는 테니스 클리닉, 일주일에 한번 하는 코난군의 바이올린 레슨, 둘리 양의 피아노 레슨과 드라마 클럽 그리고 미술 수업. (이들 레슨을 하는 사람들도 주말에는 쉬어야 하므로 레슨은 주중에 받을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이 테니스 팀에 혹은 육상 팀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다. 당연히 선택의 문제가 따르는데, 음악은 정말로 포기할 수 없었다. 피아노 선생님도 지금 한창 꽃을 피우는 시기에 관두는 것은 희생이 너무 크다고 극구 말렸다. (사실 미국 사람들 중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만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예체능의 경우, 아이들의 잠재력으로 극대화할 수 있는 시기가 있는데, 이 중요한 시기에 다양한 재능 중의 일부를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 한다는 것은 아주 불합리해 보였다. 우리 아이들이 프로 테니스 선수나 육상 선수가 될 것도 아닌데, 한가지 스포츠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게끔 강제하는 스포츠 코치들의 (문서에도 없는) 규칙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온 것이 어제 오늘이 아니지만, 일주일에 1시간만 빼달라는 요구를 묵살하는 현실이 정말 터무니 없이 여겨졌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한번 따지기로 했다. 이곳의 많은 사람들은 불합리하지만 규칙이 그렇다면 할 수 없다고 체념한다. 하지만,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나는 규칙도 사람들이 만든 것이므로 불합리한 것은 싸워서 고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전인 교육을 강조하는 공립 중고등학교에서 코치들의 과도한 요구에 반하여, 다른 많은 과외할동 중 일부는 희생하더라도 일주일에 적어도 1시간 만이라도 팀의 시합에 방해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허용해 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몽고메리 카운티의 교육감에게 보냈다.
첫번째 메일은 아래와 같다. 영어로 쓴 편지를 번역기로 돌린 후 수정을 한 것인데,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도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몽고메리 카운티 공립학교의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학기 중의 스포츠 활동 정책에 관한 사항을 문의 드립니다.
부모로서,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공부 뿐 아니라 예술, 음악, 스포츠 및 기타 다양한 활동과 같은 과외 활동을 포함한 광범위한 교육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둔 것에 대해 큰 감사를 표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스포츠 팀 코치들이 매주 5일 참여를 강제하는 현재 정책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스포츠 활동을 통해서 학생들의 체력 및 실력의 향상에 대한 코치들의 노력에 대하여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으론, 이러한 엄격한 요구가 음악, 미술 같은 예술적 재능을 발전 시키거나, 또는 기타 클럽 활동과 같은 다양한 경험을 지향하는 학생들에게 어려움을 초래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아이가 자신의 재능을 탐구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나치게 엄격한 스포츠 참여 정책에 제약받지 않으면서 일정의 유연성을 허용함으로써, 학생들은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와 그들이 가진 잠재력을 육성하는 할 수 있는 전인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팀 내 젊은 선수들을 관리하고 육성하는 데 코치들의 헌신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학생들을 고려하는 스포츠 프로그램 내에서의 조항이 제공되기를 제의합니다. 다른 관심사에 노력할 수 있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허용함으로써,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을 개발하도록 촉진할 뿐만 아니라, 약간의 휴식을 통해서 학교 공부를 소홀히 않고, 수면 부족이나 번아웃(burn-out) 을 막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부모로서 바라는 우리의 아이들이 엄격한 일정이나 제한되지 않으면서 학문적으로, 사회적으로, 창의적으로 번성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매주 5회 스포츠 참여 규칙을 다양한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와 포부를 더 잘 수용할 수 있도록 고려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문제에 대한 관심에 감사하며, 당신의 생각과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 메일을 보낸 후 일주일이 지나도 답장이 없어 메일을 다시 보냈다.
“우리는 지난 2월 15일 목요일에 보냈던 몽고메리 카운티 공립학교의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스포츠 활동 정책에 관한 문의 메일에 보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회신을 받지 못했으며, 우리가 지난 번에 보낸 메일이 당신께 잘 도달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학교에서 스포츠 활동을 하는 일부 선수들은 운동선수로 대학에 진학하길 원하거나, 아니면 다른 분야에 대한 별다른 관심없이 특정 스포츠에 집중하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목표라면, 해당 분야에 전념할 것을 당연히 권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양한 관심과 재능을 가진 다른 학생들은 다른 활동들(예술, 음악, 밴드, DECA, SCA 등의 클럽)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의 결석이 참가하고 있는 스포츠 활동에 심각한 방해가 되지 않는 한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스포츠가 주당 최대 6회의 모임을 요구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경기가 아닌 연습만으로 6일) 그 중 2일은 각각 3시간 이상이 걸리는 운동 세션을 포함합니다. 여기에 대해 주 2일의 경기일을 포함하면, 학생들은 (주말이 아닌) 주 중 4일간을 스포츠에 긴 시간을 써야 합니다. 학생들이 이렇게 많은 시간을 운동에 투자하면, 학교 공부와 숙제를 효과적으로 따라가는 데 충분한 시간이 부족하고, 수면 부족 문제가 발생합니다. 피로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부상의 가능성도 커지구요.
우리는 MCPS가 긴 시간의 연습(경기나 게임을 제외하고)을 되도록이면 지양하고, 학생들이 예정된 경기나 게임을 빼먹지 않는 한 매주 한 번 또는 두 번씩은 다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고려할 것을 강력히 제안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관심에 감사드리며,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한 당신의 관심과 응답을 기다립니다.”
위의 두번째 메일을 보낸 후에 하루 만에 ‘만나서 이야기 합시다’ 라고 답장이 왔다. 원래는 우리 부부를 포함해서 버지니아 텍 교육심리학과 교수도 같이 만나기로 했었는데, 그는 중간에 생각을 바꾸었다. 이 메일과는 별도로 졸업반(12학년)인데 좋아하는 테니스를 포기한 두 명의 부모와 단체 톡을 하게 되었다. 작년에 코치의 지나치게 엄격한 출석요구(그리고 결석으로 말미암은 불이익)를 경험하고는 테니스를 관두기로 해서 마음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마침 우리도 이와 비슷한 문제로 교육감에 메일을 보냈다고 하면서, 메일의 내용을 공유했다. 그리고, 우리가 교육감을 만날 예정이니 참여하고 싶다면 참여하거나,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생각을 공유하면 전달하겠다고 했다. 물론 같은 소리를 내고 싶다고 말하긴 했지만, 교육감을 같이 만나겠다는 사람을 아직 없다. 미국에서 살아 오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기를 두려워 하거나 꺼려하는 일을 경험한 것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서 이제는 그렇게 실망스럽지 않다.
여담이지만 미국 사람들(아마도 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 겠지만)은 이런 말을 너무 잘, 자주 한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 고. 나도 처음엔 순진해서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을 했는데, 다들 피했다. 바빠서 안된다고 빠지거나, 연락을 아예 안하거나, 아니면 도움이 필요한 시기를 훌쩍 넘겨서 연락을 늦게 받아서 미안하다, 이런 식으로. 사실 ‘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 는 상당히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수사이다. 나는 그것을 좀 늦게 깨닫은 셈이다. 반면에 나는 이런 외교적 수사를 하지 않으려 좀 지나치게 노력한다.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은 그 심정을 헤아리기 때문이랄까. 대신 내가 이 말을 뱉은 후에 상대가 도움을 청하면 꼭 도와주려고 노력한다. 가끔은 그 일 때문에 내 할일을 못하게 될지라도….
아무튼 우리 부부는 3월 6일에 교육감을 만나기로 했다. 교육감으로의 고충도 이해는 한다. 문서에도 없는 코치들의 무리한 출석요구가 옳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우리 부부와는 다른) 스포츠에 몰빵하기를 바라는 부모와 트로피를 요구하는 학교 측에 부응하면서, 자칫 느슨해지가 쉬운 팀 분위기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이런 생각에서 교육감은 첫번째 메일을 무시했을 것이다. (내가 무시했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있다. 그는 여태껏 답장을 아주 빨리 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나도 빠른 답장 받은 경험이 있고.)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우리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잠재력이 과도한 스포츠에 눌려지기 않기를 바란다. 사실, 나는 다양한 경험이 스포츠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교육감과의 만남의 결과는 대략 두가지로 예측된다. 하나는 완전히 무시해버리기, 다른 하나는 정책을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만 (혹은 우리처럼 요구하는 아이에게만 ) 편법으로 허용하기. 두번째 방법이 서로가 윈윈하는 방법이겠지만, 결과는 어쩔지 모르겠다. 생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현명한 결과가 나와서, 아이들이 다른 것들은 포기를 하더라도 음악은 계속해서 레슨을 받으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겁게 테니스나 육상을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