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미국 교육의 장점

내가 생각하는 미국 교육의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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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날이 없는 미국의 5월 5일 오늘은 아이들 학년이 막바지로 가고 있는 시기의 평범한 어느날이다. 종업까지는 2주일이 조금 더 남았지만, 학교 수업 진도는 다 나가서 새로이 배우는 내용은 없고, 시험이나 과제도 없다고 한다. 즉, 온라인으로 현재 확인 가능한 아이들의 성적이 7학년과 11학년의 최종 성적이라는 뜻이다.
아직 중학생이어서 배우는 내용이 많이 어렵지 않고, 자신의 일은 다른 누구의 간섭 없이 혼자 알아서 하기를 좋아하는 둘리양의 성적표는 무난하게 모든 과목에서 에이를 받았다.
반면에 대학생 수준의 AP 수업을 듣는 코난군은 생물학, 통계, 미적분 등등의 시험과 과제를 치르는 것이 쉽지 않고, 거기에 더해서 테니스 팀의 캡틴이자, 학교 봉사 클럽의 회장, 오케스트라 연주, 등등의 수많은 일을 동시에 해내느라 피곤하고 힘들었다. 다행히 아빠가 공부를 도와주어서 초중고 과정을 통틀어 가장 힘들다는 11학년의 성적을 올 에이로 마무리 했다. AP 클래스로 올 에이를 받았기 때문에 내신 성적은 최상위가 되었다. 대학 입시를 위한 관문 하나를 통과한 것이다.

클라라가 만든 블벅고 테니스팀 인스타그램 포스팅

올 여름이 지나고 12학년이 시작하면 코난군은 곧바로 대학 지원을 하게 된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수능 점수 뿐만 아니라 소위 “스펙”을 잘 쌓아야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가 있다고 들었는데, 미국의 대학 입시도 그렇다. 미국판 수능시험이라 할 수 있는 SAT나 ACT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것도 좋지만, 내신 성적을 얼마나 잘 관리했는지, 공부 말고도 어떤 다양한 활동을 했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에세이, 등의 여러 다양한 분야를 심사한다. 에세이 쓰기나 시험 점수는 단기간 집중해서 노력하는 것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내신 성적과 다양한 활동은 한 두 해 반짝 잘 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입시사정관들이 더 눈여겨 보고 당락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그 스펙 이라는 것을 만드는 것이 부모의 재력으로 강남의 컨설팅 업체가 담당하고 있다고 들었다. 미국에서도 한인이 많이 모여 사는 대도시 부촌에서는 비싼 SAT학원이 번창하고, 대학병원 자원봉사직이나 대학 연구소 보조 일을 얻어내기위해 부모들이 총력을 기울인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일부일 뿐, 미국의 대다수 청소년들은 스펙을 쌓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흥미를 따라가며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 부모가 공부만 잘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학교에서도 성적 우수자만을 높이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각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여기서 그 “무언가” 는 참으로 다양한 활동들이다. 코난군의 경우라면 테니스, 바이올린, 미술 등이 해당하고, 둘리양은 피아노, 클라리넷, 육상, 마칭밴드, 그림, 등이 있다. 다른 아이들을 살펴보자면, 연극부에서 연기를 하는 아이들, 비지니스 클럽에서 경제와 경영을 배우는 아이들, 로봇을 만들어 조종하는 아이들, 그래픽 디자인을 좋아하는 아이들, 올림픽 종목 만큼이나 다양한 운동 종목 중에 하나를 좋아해서 열심히 연습하고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는 아이들…

역시나 클라라가 만든 포스팅

학교와 가정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 걸쳐 아이들을 단 하나의 잣대 (=성적)로 비교하고 줄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꼽기에도 벅찬 수많은 분야에서 “잘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미국 교육의 장점이다.
실생활에서 비유를 하자면, 한국의 사회 분위기는 마블링이 훌륭하게 형성된 최상등급 한우 고기를 평가의 대상으로 정하고, 어느 동네 어느 마트에서 그것을 가장 좋은 값에 판매하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수치로 판단할 수 있는 평가의 결과는 쉽게 비교가 가능하다. 전문가의 눈으로 쇠고기의 육질을 등급으로 나누고, 가격을 올림순 혹은 내림순으로 정리하면 일목요연하게 일등부터 꼴등까지 알 수 있다. 쇠고기 이외의 다른 품목은 아예 비교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공부는 지지리도 못하는 아이가 허구헌날 음악만 듣고 연주한다면 “딴따라” 같은 낙인을 받는 것과 같다.
반면에 미국의 분위기는, 쇠고기를 포함한 모든 육고기, 해산물, 채소, 과일, 곡식, 상자에 포장된 가공 식품을 각기 평가하는 셈이다. 어떤 사람은 일등급 한우를 최상품이라 평가하겠지만, 채식주의자에게 육고기 따위는 안중에 없다. 과일을 평가하더라도 사과는 사과끼리, 망고는 망고끼리 비교해서 더 좋은 것을 고르지, 수박과 포도와 오렌지 중에 어떤 것이 가장 좋은 과일이냐고 묻지 않는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도 칭찬을 받지만, 음악을 좋아해서 독학으로 여러 악기를 연주하는 법을 익히고, 작곡을 하는 아이도 같은 분량의 칭찬을 받고, 타고난 미적 감각에 더해서 부단한 노력으로 멋진 그래픽 디자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 아이도 같은 칭찬을 받는다. (코난군의 현재 여친인 클라라의 사진 편집 기술은 전문가 수준이라고 칭찬을 받고 있다.)

블벅고의 색상인 파란색을 넣고, 학교 마스코트인 브루인을 적절하게 넣어서 이렇게 멋진 포스터를 만든 클라라!

사과는 사과라서 맛있고, 고등어는 고등어의 맛이 있는 것처럼, 아이들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재능과 성격이 다 다르고 다 아름답다. 일등급 한우와 콩나물의 가격 차이는 크지만, 그렇다고 콩나물이 한우에 비해 열등하다거나 못먹을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미국의 대학 입시는 자신의 능력에 맞는 학교를 선택해서 진학하고 그 안에서 또 열심히 잘 하면 졸업 후 안정된 미래를 찾아나갈 수 있다.
가까운 일례로, 우리 가족이 다니는 치과 의사 선생님은 코난아범이 가르치는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공부하고, 내가 가르치는 래드포드 대학교로 편입을 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치과대학에 진학해서 치과 의사가 되었다. 한국에서라면 전문대를 졸업하고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는 것은 상당히 좁은 문이고, 명문대가 아닌 지방의 작은 대학교를 졸업한 뒤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의사가 되기 위한 자질이 국영수 시험 성적만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일까? 한국 정치계에 숱하게 널린 서울대 법대 졸업후 판검사 출신 인물들을 보아도 그렇다. 성적으로만 보자면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들이겠지만, 인격과 도덕성 부문에서 너무나 열등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일등급 쇠고기만 먹고 콩나물이나 김치를 먹지 않으면 병에 걸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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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5일에 쓰기 시작해서 5월 9일에 마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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