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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사과가 자꾸만 쌓여간다. 사과는 평소에도 만만해서 사놓곤 하는 과일인데 사다놓기만 하고 잘 안먹게 되는 일이 자주 생긴다. 치아 교정을 하는 둘리양이나 치아를 아껴서 조심히 쓰는 남편은 통째 먹지 않고 잘라서 먹어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한 단계 더 일을 해야 먹을 수 있어서 바쁠 때 챙겨 먹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른 과일은 내가 시간이 날 때 미리 깎고 썰어서 먹기 좋게 냉장고에 넣어두는데, 사과는 시간이 지나면 갈변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어서이기도 하다.

오늘 아침에 세어보니 알이 작기는 해도 무려 서른 개나 되는 사과가 집에 쌓여있다. 아이들 운동 팀에서 경기가 있는 날이면 부모들에게 간식을 기부 받는데 아무거나 사보내면 되는 것이 아니고, 사과와 바나나, 씨리얼바 같은 품목을 보내달라고 한다. 너무 과한 간식은 경기에 지장을 주고, 너무 단 음식도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에 수분을 적절히 포함하고 허기를 달래줄 수 있는 사과와 바나나가 언제나 환영받는 간식이다. 마트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품목이기도 하다.

올해 아주 훌륭한 코치를 모시고 시작한 블벅고 테니스 팀은 코난군이 캡틴이 되었고 코난아범이 학부모 자원봉사 코치를 하고 있다. 우리집이 학교 코트에서 가깝기도 하고 남편이 자원봉사를 하다보니, 아이들이 먹고 남은 간식을 버리기 아까워서 집으로 들고 올 때가 있다. 거기에 더해서 어제 홈경기 간식은 내가 자원해서 보냈는데, 모자라는 것보다는 남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넉넉하게 챙겼는데 날씨가 추워서 그랬는지 아이들이 사과는 거의 먹지 않았다고 한다. 씨리얼바나 스포츠 음료는 집에 장기간 보관하면서 먹어도 되지만 바나나와 사과는 며칠 안에 먹지 않으면 못먹게 된다.
밥대신 사과만 먹는 다이어트가 있다던데, 저 사과를 얼른 먹어 치우려면 내가 그 다이어트를 해야겠다 ㅎㅎㅎ 끼니마다 두 개씩 먹으면 하루에 여섯 개, 이번 주말 동안에 거진 다 없어지겠다.

가을 학기에는 마칭밴드 활동으로 바빴던 둘리양이 봄학기에는 다시 육상을 시작해서 또 바쁘다. 작년에는 중학교 1학년 초보 선수라서 100미터 달리기만 출전했었는데, 올해에는 한 학년 더 높은 언니라서 그런지, 실력이 향상되어 그런지, 여러 가지 종목에 출전하고 있다. 지난 주에 있었던 홈 경기에서는 무려 네 종목이나 뛰었다. 100미터 달리기, 110미터 허들, 200미터 달리기, 그리고 멀리뛰기.
홈경기라서 블벅중 선수들이 대거 참가했고, 둘리양도 그래서 많은 종목을 뛰었나보다 생각했는데, 다음 주에 있는 원정 경기에서도 100미터와 200미터, 그리고 110미터 허들을 뛰게 된 것을 보면 제법 잘 하기는 하는 모양이다. 원정 경기는 소수 정예 선수를 선발해서 가기 때문에 거기에 뽑혔다는 것은 실력이 우수하다는 뜻이다.

우리 아이들은 경기가 있는 날이면 부모가 와서 봐주고 응원해주기를 바란다. 평소에 자기가 원하는 바를 절대 말하지 않는 둘리양조차도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엄마가 와서 봐달라고 부탁을 할 정도이다. 다행히도 우리집이 아이들 학교, 즉 홈경기를 하는 곳과 가까워서 (다행이라기 보다는 이럴 줄 알고 이 터에 집을 지었지만…) 저녁 강의와 시간이 겹치지만 않으면 나가서 응원을 할 수 있다.

어느날은 코난군과 둘리양이 동시에 경기를 했는데, 남편은 코난군의 팀을 지도하는 역할이다보니 테니스 코트에 주로 머물면서 자전거를 타고 육상 경기장에 가서 둘리양의 경기를 지켜보고 다시 코트로 돌아왔다. 나는 학교에서 강의를 마치자마자 바로 둘리양의 육상 트랙으로 갔는데, 거기서 둘리양이 뛰는 종목을 보고 다음 종목 경기까지 시간이 남아서 코난군의 경기를 응원하러 갔다. 그런데 차를 가지고 가면 걷는 것보다 더 먼 거리를 돌아야해서 차는 트랙 근처에 세워두고 걸어서 코트로 갔다. 코난군 경기를 지켜보다가 조금 더 걸어서 집에 가서 저녁 식사준비를 했다. 후다닥 준비해서 준비가 끝나갈 무렵 둘리양의 200미터 달리기가 곧 시작한다는 문자가 왔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열심히 걸어가서 둘리양의 경기를 보고, 모든 경기를 마친 둘리양을 태워서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 봄방학 동안에 너덜너덜하던 내 차도 말끔히 수리가 되어서 기쁘다. 11년을 넘어선, 10만 마일을 넘게 달린 차이지만 그래도 아직 멀쩡하고 아이들 라이드를 주는데에 아무 문제가 없다. 둘리양이 운전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 그래봤자 4년 정도 밖에 안남았다 – 이 차를 물려주고 새 차로 바꿔볼까 싶다.

2025년 3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