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를 해독하라: 중학교 시간표 읽는 법

암호를 해독하라: 중학교 시간표 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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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놀이공원에서 간식을 먹으며 쉬고 있는데 동네 후배 학부모에게서 문자가 왔다. 두 딸을 키우고 있는데 그 중 큰 딸이 이번에 중학교를 입학하게 되었고 첫 학년인 6학년의 시간표를 받았는데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자기가 짐작한 것이 맞는지, 시간표에서 뭔가 잘못된 점은 없는지를 물어보는 문자였다. 이 엄마는 한국인인데 일본인과 결혼해서 일본에서 두 아이를 낳고 키우다가 남편의 유학과 이직으로 미국으로 이주한지 4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미국 남부에서 살다가 우리 동네 블랙스버그로 이사온지는 이제 겨우 1년이 지났기 때문에, 미국의 교육 제도에 대해서 한창 배워가고 있는 중이고, 초등학교가 아닌 중고등학교, 그것도 우리 동네 블벅중고등학교의 체계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깝다. 그런 이유로 나와 간간이 연락을 주고 받으며 조언을 구한다.

후배 학부모가 받은 시간표를 첫눈에 보고 모든 정보를 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같은 이민자가 아니라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 하더라도, 블벅중학교에 자녀를 보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런 시간표를 받아들고 우리 아이가 이번 학년에 어떤 스케줄을 따르게 되는지를 알기란 쉽지않다.

이게 뭔말인지 알 수 있는 사람? ㅎㅎㅎ

어제 점심에 이 후배 엄마를 초대해서 같이 밥을 먹으면서 첫 아이를 내가 경험해보지못한 학교 시스템에 진학시키는 엄마의 고충을 나누기도 했다. 학교측에서 이런 안내문을 가정으로 보낼 때 받아보는 사람의 시선과 입장을 조금만 더 고려해서 알 수 없는 숫자와 문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해 주었다면, 그리고 학생과 부모에게 중요한 정보를 명확하게 써두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다른 설명없이 형식적인 인삿말 다음에 떡하니 붙여넣은 이 스케줄 표는 내 짐작으로 학군 전체에서 운영하는 컴퓨터 시스템에 들어가있는 정보를 추출해낸 것 같다. 그러니까 학교측에서는 이 표가 아주 익숙하고 이해하기 쉽겠지만, 학부모는 그렇지 못하다.

표를 보며 설명해보자 🙂

중간 칼럼부터 오른쪽으로는 이해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다. 각 과목의 이름과 담당 교사의 이름, 그리고 그 수업을 받을 교실을 써두었다. 교실 이름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6B6, 6B5, 6A7… 하고 써있는 것은 6학년 B파드의 6번 교실, 5번 교실, A파드의 7번 교실,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AUD 와 GYM은 강당 (Auditorium) 과 체육관을 말한다. 연극 수업은 강당에서, 보건체육 수업은 체육관에서 받는다는 뜻이다. 가족소비자학 과목과 농업과학 과목도 파드 안에 딸린 일반적인 교실이 아니라 특정 과목에 특화된 교실에 가서 받게 된다. AgSci 교실이나 F&CS 교실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는 학교 오리엔테이션 날에 학교에 가서 직접 찾아보아야 한다.

그러면 왼쪽의 두 칼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1, 2, 3… 교시는 매일 무슨 과목을 언제 배우는지 순서를 보여준다는 것은 알겠지만 숫자 옆 괄호 안의 대문자 에이는 무슨 뜻일까? 학기 라고 번역되는 TERM 이라는 칼럼의 문자와 숫자는 무슨 뜻인가 말이다!
일단 1교시 에이, 2교시 에이… 하는 식으로 붙어있는 대문자 에이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기호이다. 나중에 둘리양의 스케줄에서 설명하겠지만, A데이와 B데이로 구분이 필요한 스케줄을 가진 학생들을 위한 장치이다.
다음으로 텀 (Term) 은 각 과목의 길이를 보여준다. 25-26 이라고 써있는 과목은 일년 내내 수업을 받는 과목이다 (2025-2026학년도 라는 뜻). 즉, 수학, 역사, 과학 등 대다수의 과목은 8월 13일 개학일부터 내년 5월 말 학년이 끝날 때 까지 수업을 받는다. S1 과 S2 는 1학기 2학기 (Semester) 를 구분해서 겨울 방학 전까지만 듣는 수업, 겨울 방학 이후 5월 말까지 듣는 수업이다. 그래서 위 표에서 8교시에는 두 과목이 나열되어 있다. 1학기에 듣던 수업이 2학기에는 다른 과목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Q1, Q2, Q3, Q4 는 9주일로 나뉘는 분기 (Quarter) 를 말한다. 이 학생은 선택과목으로 다양한 과목을 맛보기처럼 배울 수 있는 옵션을 선택했기 때문에, 매일 3교시에 8월 부터 9월 말까지는 연극 수업, 10월부터 겨울 방학 전까지는 가족소비자학, 1월부터 3월 까지는 농업과학, 4월과 5월에는 아트를 배우게 된다.

줄기에 달린 파드, 그리고 파드 안에 든 콩

이렇게 설명을 듣고 보면 별것아닌 것이 되지만, 누군가가 설명을 해주기 전에는 첫 아이를 블벅중학교에 보내는 부모라면 누구라도 – 미국인이든 이민자이든 상관없이 –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앞서 교실을 설명할 때 “파드” 라는 말을 썼는데, 주머니나 콩깍지를 뜻하는 Pod 라는 영어 단어를 몰라서가 아니라, 그게 우리 아이 학교 생활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고, 내 아이가 무슨 파드에 배정되었는지는 안내문 그 어디에도 써있지 않다.
블벅중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학년별 복도가 있고, 그 복도는 다시 몇 개의 작은 골목으로 나뉘어 있다. 각 골목의 입구마다 출입문이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교실 여러 개가 위치하고 있다. 이 작은 골목을 파드라고 부르는 것이다. 학년별 복도가 큰 줄기라면, 그 안에 작은 골목이 서너개씩 나뉘어진 것이 마치 콩깍지를 연상하게 한다. 콩깍지 안에 콩이 여러 알 들어있는 것처럼, 작은 골목 안에 교실이 여러 개 들어 있다.
이렇게 파드를 나누어두면 300명이나 되는 한 학년 전체 학생들을 관리하기가 용이하고, 파드별로 가르치는 교사들이 회의를 하고 협업을 하기에도 좋다. 예를 들면 소풍이나 견학을 파드별로 가면, 빠진 수업을 보충할 날짜를 파드 교사들끼리 정할 수 있고, 점심 시간도 파드별로 시차를 두면 급식실이 덜 붐비게 된다. 같은 파드의 학생들은 수업을 함께 들을 확율이 높기 때문에 아이들 사이에서 내가 무슨 파드인지, 내 친구는 무슨 파드인지를 아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학부모도 파드를 알아야 점심 시간이 언제인지를 알 수 있고, 학교 오리엔테이션 날에 어느 파드로 가야할 지 알 수 있으니, 안내문에 ‘귀댁의 자녀는 *파드에 배정되었습니다’ 하고 한 마디만 써주면 될 것을, 그 작은 일 하나를 안해준다.

두번째 아이를 3년째 블벅중학교에 보내게 되는 유경험자 부모인 나도 여전히 스케줄을 해독하는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학년 과정을 순서대로 차근히 밟아온 코난군과 달리, 둘리양은 수학 과목을 한 학년 건너뛰고 윗학년의 수업을 들어왔고, 그래서 이번 학년에는 고등학교에 가서 수학 수업을 받아야 한다. 둘리양의 스케줄을 해석해보자 🙂

둘리양의 중학교 3학년 스케줄

1교시는 밴드, 2교시는 영어, 3교시는 지구과학, 4교시는 보건체육, 5교시는 사회경제 수업을 각기 밴드교실, 8학년 D파드 6번 교실, 3번 교실, 체육관, 7번 교실에서 받게 된다. 여기까지는 지난 몇 년간의 경험으로 문제없이 이해했다. 교실의 숫자와 문자를 보니 둘리양은 이번에도 D파드에 배정받은 것도 알겠다. 그런데 5교시 이후에 왜 4교시가 다시 한 번 더 나오는지, 그 4교시 옆에는 갑작스럽게 문자 B가 왜 붙어 있는지, 교실 숫자는 왜 전혀 딴판으로 생겼는지, 이 표만 봐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8학년 전체 학생 중에 단 두 명이 수학을 월반해서 고등학교로 가서 수업을 받는데 한 명이 둘리양이고 또다른 한 명은 둘리양의 절친 주주 이다. 학교 상담 교사와 통화하고 이메일을 주고받은 후에 명확하게 알게 된 스케줄은 이러하다. ㅎㅎㅎ
둘리양의 하루는 A데이와 B데이로 나뉘어져 있어서 A데이에는 수학 수업 없이 6, 7, 8 교시 수업을 지정된 교실에서 받게 된다.
사실 6교시는 점심 시간이고 브루인 타임이기도 하다. 여기서 초보 학부모는 또 하나의 암호를 마주치게 되는데, 브루인 타임, 브루인 티쳐가 무엇이고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브루인 (Bruin) 은 갈색곰을 뜻하는 옛말이라고 한다. 블벅중고등학교의 마스코트가 무섭게 생긴 곰인데 그 곰의 이름이 브루인 이다. 6교시는 점심 시간인데 밥을 다 먹은 후에 다음 7교시가 시작하기 전까지 학생들이 머물 곳이 필요하다. 다른 학년 다른 파드의 학생들은 아직도 수업을 받고 있는 중이어서 아무 빈 교실에나 들어갈 수도 없고 다음 학생의 식사를 위해 급식실을 얼른 나와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식사 전후에 남는 시간을 보낼 교실을 정해두었고 그 교실에서 아이들의 쉬는 시간을 감독하도록 배정된 교사가 브루인 티쳐이다.
다시 둘리양의 A데이 스케줄로 돌아가서, 6교시 점심과 브루인 타임을 마치면 7교시와 8교시는 몰아서 독일어 수업을 온라인으로 받게 된다. 독일어 교사를 구하지 못했거나 수강하는 학생 수가 적어서 그런지 도서관에 앉아서 컴퓨터를 보며 독일어 수업을 받는다.
다음, B데이에는 6교시 점심을 먹은 후에 약 500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서 (그것도 무거운 책가방과 악기 가방 등 모든 짐을 챙겨서) 블벅고 H235 교실로 이동을 한다. 거기서 고등학교 4교시 시간 (부연설명 1 참조) 동안에 고등학교 수학 수업을 받고 하교하게 된다. 마칭 밴드 시즌인 가을 학기 동안에는 어차피 중학교 수업을 마치면 고등학교 밴드 교실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수학 수업을 마친 후에 바로 같은 건물에 있는 밴드 교실로 갈 수 있으니 동선이 절약되기는 한다. 다만, 다른 중학생 마칭밴드 아이들은 방과후 학교 버스를 타고 고등학교 밴드 교실로 오지만 (부연설명 2 참조), 둘리양은 비가오나 바람이 부나 혼자 걸어서 이동을 해야 한다.
부연설명 1: 중학교의 1교시는 50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고등학교의 1교시는 90분이어서 고등학교의 4교시가 중학교의 7-8교시에 해당한다.
부연설명 2: 중고등학교 하교 시간이 동시에 있기 때문에 중학생 마칭밴드 아이들이 고등학교 밴드교실로 이동할 때 두 학교 사이에 있는 도로가 무척 혼잡하다. 혹시 모를 안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학교 버스로 500미터 거리를 아이들을 실어나르고 있다.
참고로, 주주는 밴드 대신에 합창 수업을, 독일어 대신에 스페인어 수업을 받게 되어서 그런지, 둘리양과 고등학교 수학 수업도 따로 듣게 되었다. 주주는 B데이는 아침 등교를 고등학교로 해서 1교시 수학 수업을 듣고 중학교로 이동해서 나머지 수업을 받는다고 한다. 며칠 전에 주주 엄마를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두 아이가 같이 걸어가서 같은 수학 수업을 못받게 된 것을 아쉬워했다.

고작 학교 수업 시간표를 설명하는데에 이렇게 긴 글을 써야할 정도로 시간표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사실 저 암호와도 같아보이는 시간표에 내가 일부러 설명하지 않은 정보가 더 있다. 어드밴스드, 또는 아너 또는 대문자 에이치 라고 과목 이름 옆에 붙어 있는 말을 설명하자면 오늘 이 글 보다 더 길게 쓸 말이 많다. 다음을 기약한다.

2025년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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