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10월 3일 금요일인데 집을 떠나온지 벌써 사흘째이고 내일에야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지난 여름 연간업적 보고서를 쓰면서 부터 였다. 교수의 업적은 강의, 연구, 서비스의 세 부문으로 나뉘는데 학생들의 강의 평가는 항상 높게 받고 있으며, 줄어든 교수 숫자 때문에 안가르치던 과목을 새로 가르치거나, 학생 숫자가 줄어서 원래 정해진 것보다 더 많은 과목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강의 부문의 평가는 언제나 최상급을 받고 있다. 서비스 부문도, 줄어든 학생 수를 만회하기 위해 기회만 되면 학생 모집 관련 일을 하는데다 몇 년째 지도해 오고 있는 교육학 전공 학생들의 아너스 소사이어티 지도 업무 등등으로 학과장으로부터 감사의 말과 함께 최상위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에, 연구 부문에 있어서는 다소 실적이 저조한 편인데 그나마 지난 여름 보고서에는 한명숙 선생님과 함께 쓴 책이 출판되어서 체면 치레를 했지만, 내년 보고서에 넣을만한 연구 활동이나 업적이 없어서 무언가를 찾아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예전에 한명숙 선생님과 또 다른 책을 한 권 더 쓰자고 다짐했었지만 선생님은 외손주를 보살피느라 바쁘셔서 당분간은 어려울 듯 했다. 그런데 마침 내가 해마다 참석하는 학회에서 탐구 주도 그룹(? Inquiry Initiative 가 영어 이름이다) 회원을 모집한다는 이메일이 왔다. 대략 읽어보니 신청한다고 아무나 다 받아주는 것은 아니고, 나름 지원서를 잘 써서 내면 심사해서 뽑아준다고 했다. 탐구 주제는 교사가 번아웃 등의 이유로 교직을 떠나는, 그래서 교사 부족 현상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자는 것이었다. 교사의 번아웃 현상이라면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일찌기 경험했던 일이고, 미국 교육 현장에서도 자주 목격하는 주제여서 관심이 가기도 했다.

지원서를 제출해놓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9월 초순에 내가 회원으로 뽑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버지니아 주 곳곳에 산재한 교사교육 교수들 30여명으로 구성된 연구 그룹 회원은 학회 등록비를 할인받는 대신에 2년간 일 년에 두 번 하는 학회에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했다. 학회가 버지니아 주 안에서만 열리니, 그나마 이동 거리가 한나절 운전하면 갈 수 있는 거리이고, 우리 아이들이 많이 자라서 엄마가 며칠 집을 비워도 일상 생활과 학교 등하교에 지장이 없어서 잘 되었다.

우리집에서 운전해서 네 시간 거리에 있는 윌리엄 앤 메리 대학교에서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에 걸쳐 학회가 열렸는데, 여러 연구 발표를 듣기도 하고, 버지니아 주정부 교육국에서 새로운 교육 정책과 법률을 알려주는 것도 들었다. 그리고 학회의 가장 마지막 순서로 연구 그룹 회원들끼리만 모여서 서로 소개도 하고 앞으로 연구할 방향에 대해 의논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나와 크리스틴 이라는 신입 교수가 동시에 선발되었는데 연구 그룹 내에서도 같은 주제의 소그룹에 배치되어서 반가웠다.
모든 학회 관련 활동을 다 마치고 나오니 금요일 오후 4시가 다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길로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나는 일부러 하룻밤을 더 호텔에서 지내기로 계획을 했다. 전날에 나 없이 시험을 본 학생들의 시험 결과를 얼른 채점해야 하고, 학회 참석 때문에 밀려있는 이메일이나 기타 서류 작업 할 것이 좀 있었다. 게다가 금요일 오후에 붐비는 고속도로 운전을 네 시간 동안 하고 집에 도착하면 너무 피곤하고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 되어버린다. 내가 없는 동안 치울 거리가 잔뜩 쌓여있을 부엌 씽크대와, 얼른 채워놓아야 할 냉장고, 토요일 밴드 대회에 갈 둘리양 도시락 준비… 등을 하다보면 시험 채점이나 서류 작업은 계속해서 늦어질 것이고 내 피곤함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금요일 늦은 오후에 호텔로 돌아와 시험 채점을 다 마치고 서류 작업도 좀 하고 다음 주 강의 준비까지 어느 정도 해놓은 다음 저녁을 사먹고 침대에 누워 이 글을 쓰고 있다. 호텔 숙박비는 학과에서 출장비로 내주니, 이게 바로 호캉스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다만, 내일 아침 자기가 먹을 점심 도시락을 직접 챙겨나갈 둘리양에게 쬐금 미안하다.
2025년 10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