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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 종목 중에 이제 시작했나보다 하면 금새 끝나는 종목으로 100미터 달리기가 있다. 경기 개시를 알리는 총소리가 나자마자 바로 뛰어나가는 반응 속도와, 길어야 십 몇 초 내외의 짧은 시간 동안 근육을 폭발적으로 사용해야 좋은 기록을 세울 수 있는 경기이다. 짧은 거리라서, 달리는 중간에 잠시라도 삐끗하거나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절대로 따라잡아서 다시 자신의 페이스로 돌아갈 수 없다. 관전하는 사람들조차 긴장한 마음으로 출발에서 종료까지 20초가 안되는 시간 동안 손에 땀을 쥐고 응원하게 된다.
한국의 입시는 100미터 달리기와 닮았다. 며칠 후에 있을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하고, 만약 그러지 못하면 재수를 해서 다음 해에 다시 도전한다. 수능 점수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소위 ‘스펙’으로 승부하는 여러 가지 종류의 수시 전형 조차도 100미터 달리기의 순간 폭발력을 보여주듯, 누가 얼마나 더 대단한 경력을 쌓았는지를 경쟁한다.
대단한 대학 교수의 지도 아래에서 대단한 의학 연구를 하고 대단히 경쟁력 높은 학술지에 논문을 몇 개나 출판했는지를 놓고 경쟁한다. 고등학생이 과연 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의문스럽지만 어쨌든 그런 것으로 줄을 세워서 평가를 한다.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봉사를 했는지를 경쟁하다보니 누적 봉사 시간이 천 시간 만 시간 이라고 부풀리기를 한다.
짧지만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거리를 잘 달리게 하기 위해서 부모들은 월급을 갈아넣고 몸과 혼을 갈아넣어 뒷바라지를 한다. 행여나 삐끗해서 페이스를 놓치게 될까봐 노심초사하고, 그러다보니 아이가 공부만 잘 하면 다른 모든 것들은 나중에 어떻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행동 지도나 인성 지도 같은 것은 잠시 접어둔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 트랙 위에 모래나 물 또는 그 어떤 이물질도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아이들은 그 긴장의 과정에서 또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는지 모른다. 절대로 넘어져서는 안되고 그 어떤 실수라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극도의 긴장감.
코난군이 놀려고만 하고 공부를 게을리 하려 할 때 가끔 한국의 입시를 앞둔 아이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사실은 요즘 아이들의 입시 준비는 잘 모르기 때문에, 내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말해준 것이기는 하다. 아침 잠이 덜 깬 채로 등교해서 자율학습, 정규 수업, 보충수업, 야간 자율 학습… 주말에도 독서실이나 학원, 과외 수업이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코난군 너는 거기에 비하면 이 정도 공부는 너무 쉽다, 나태해지지 말아라, 친구와 어울려 노는 것은 이 다음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라고 했다.
올림픽 종목 중에 1500미터 자유형 수영 종목이 있다. 50미터 길이의 풀을 30바퀴 도는 거리이다. 이 경기의 세계 기록은 쑨양이 세운 14분 31초 02 이고, 보통의 수영 선수라면 15-16분 정도라고 한다. 11초에 비하면 15분은 무척 긴 시간이다. 경기를 관람하는 동안 하품과 기지개를 열 번도 더 할 수 있는 시간, 급하다면 잠시 화장실을 다녀와도 여전히 경기가 이어지고 있을 그런 시간이다. 물속에서 하는 경기이니 땀을 흘리지도 않는다. (사실은 흘린 땀이 물에 섞여서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만) 그렇다고 1500미터 수영 경기는 100미터 달리기 경기보다 쉬운 것일까? 관람하는 사람은 덜 긴장하고 심지어 지루할 수도 있지만, 경기에 임하는 선수는 그렇지 않다.
얼리 지원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는 요즘, 코난군이 지난 십 몇 년 동안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왔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노력이란 학교 성적을 잘 받기 위한 노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최상위 내신 성적을 받기 위해서 기울인 노력도 많았다. 시험 준비와 예습복습을 함께 해준 아빠의 지원이 한몫을 했고, 더 놀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성실하게 과제를 하고 수업에 참여한 코난군의 노력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코난군은 자신이 좋아하는 테니스를 더 잘 하려는 노력을 했고, 오케스트라 연습과 바이올린 레슨을 빠지지 않았고, 수년 간의 아트 레슨에서 한눈팔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친구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친구들의 생일 파티에 가거나, 함께 영화를 보고 온라인 게임을 했다. 건강한 자신의 모습을 위해 지하실에서 땀흘리며 근력운동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스스로 찾아 먹었다. 여자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운이 좋은 코난군은 가족의 응원을 꾸준히 받았고, 핸섬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외모를 가졌고, 이름처럼 영민한 지혜를 갖추었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정도로 착하고 상냥한 인성을 가졌다.
이런 노력의 종합적인 결과를 대학 입학처에 보여주고, 한 대학이 거절하면 또 다른 대학에 다시 보여주고, 그 중에 나를 알아봐주는 대학, 즉 합격을 시켜주는 대학 중에서 나에게 가장 맞는 곳을 골라서 진학한다. 일련의 노력은 한 두 해 만에 드라마틱하게 늘어나거나 줄지 않기 때문에, 내년에 다시 한 번 도전하는 ‘재수’ 라는 것이 미국에는 없다.
100미터 달리기 처럼 소숫점 두 자리수 차이로 누가 일등인지를 가리는 아슬아슬함이 없고, 온몸에 흐르는 땀도 보이지 않지만, 긴 시간 꾸준히 토끼와 경주하는 거북이처럼 쉬지 않고 노력해온 미국 입시생들에게도 응원을 보낸다.
미주 한인 여성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대학 입시 게시판에 올라온 글과 댓글이다.


미국 고삼은 한국 고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쉽다고 생각했지만,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는 국적과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마치 올림픽 경기에서 100미터 달리기와 1500미터 자유형 경기가 사뭇 다르지만, 선수들의 노력은 차이가 없는 것처럼.
2025년 11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