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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일 전에 개강을 해서 첫 주간은 강의 과목 소개와 여러 가지 안내를 하느라 제대로 된 강의는 없이 분주하고 들떠있기만 했다. 그 다음 주는 마틴루터킹 공휴일로 시작해서 하루가 짧은 주간이어서 역시나 약간 붕뜬 느낌으로 바쁘게 그럭저럭 지나갔다. 그런데 이 주간 동안에 심상찮은 일기예보가 나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규모의 눈폭풍 (snow storm)이 미국 동부 전역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눈폭풍이 오면 일단 모든 도로가 위험해지니 장을 보러 나갈 수 없어 생필품과 식량을 미리 준비해두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정전에 대비해서 발전기에 넣을 휘발유를 구입하고 제설기와 모든 차에도 연료를 가득 채워두었다. 아이들 학교는 당연하고, 남편과 나의 학교도 일찌감치 휴교령이 내렸는데, 눈 내리는 주말이 끝난 월요일 하루 뿐만 아니라 기온이 한낮에도 눈이 녹을 만큼 올라가지 않는 날이 일주일 내내 이어질 예정이어서 아마도 월요일 이후에도 휴교령이 며칠 더 지속될 거라는 예상을 하고 있다.

이번 눈폭풍은 미국대륙 북쪽에서 내려오는 극지방의 추운 기단과 남쪽에서 올라오는 따뜻하고 습한 기단이 만나서 눈을 내리다가 진눈깨비 (sleet) 로 바뀌어 내리다가 마침내 최악의 강수형태인 얼음비 (freezing rain) 를 내린다고 한다. 눈은 공기를 품고 있어서 제설기로 밀어내면 쉽게 치워지지만, 얼음비는 지면에 닿는 순간 표면을 얼려버려서 제설기가 효과를 내지 못한다. 내 느낌으로 비유하자면, 마룻바닥에 흘린 팝콘은 빗자루질을 대충 해도 쉽게 치울 수 있는데 반해, 우유를 쏟으면 빗자루로 제거할 수 없고, 열심히 제거하려 노력해도 그 미끈거림은 바닥 틈새에 남아 있어서 찜찜한 느낌과 비슷하다.
거기에 더해서 기온은 일주일 내내 영하 십 몇도를 유지하게 되어서 얼음비가 얼린 지표면이 녹지 않는다. 각 지자체에서는 도로에 쌓인 눈과 얼음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 버지니아 주에서도 주지사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 거의 이틀 내내 내리는 눈과 얼음비를 단시간에 치워서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모든 인력이 고속도로나 큰 도로에 우선적으로 집중되니, 동네 작은 길까지 눈을 치워줄 수는 없다. 이런 날은 그저 집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도로에 차를 몰고 나가는 것이 위험해서 학교도 휴교하고 외부활동을 자제하라는 안내가 인터넷 곳곳에 뜨고 있다. 하지만 물품을 배송하는 큰 트럭이나, 응급환자를 실은 차량, 안전한 집으로 가기 위해 운전을 해야 하는 필수 차량들은 어쩔 수 없이 위험한 길을 가야만 한다. 그래서 이런 사고 소식도 인터넷에서 종종 보인다.


그런데 집안에만 머무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눈과 얼음비가 내리면 도로 뿐만 아니라 나무까지 얼게 되는데, 고압전선이 지나가는 산속 구간에서 큰 나무가 쓰러지면서 전선을 덮쳐 정전이 되는 것이다. 한국처럼 국토가 작은 나라에서는 전선을 지하에 설치할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나마 주택이 모여있는 마을 내에서는 전선을 땅속에 묻어서 하늘에 얼기설기 전선이 보이지 않고 외부로부터의 파괴를 예방하고 있지만, 그 마을로 들어오는 고압전선은 여전히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나들며 전봇대에 걸쳐 있다.
우리가 사는 주택단지는 다른 단지와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유난히 정전이 자주 일어난다. 대부분 몇 시간 안에 복구가 되기는 했지만, 작년 2월의 정전은 꽤 길어져서 사흘간 전기 없이 불편하게 지낸 적이 있다. 이번 눈폭풍에는 전국적으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질 거라고 하니, 우리 마을은 틀림없이 정전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정전이 되면 가스렌지가 아닌 전기렌지를 쓰고, 가스 보일러가 아닌 전기 난방 전기 온수를 쓰는 우리집은 심하게 불편한 생활을 하게 된다. 다행히도 외부 온도가 낮으니 상할지도 모를 우유나 고기 같은 것은 집밖에 보관하면 되고, 신축 주택이라 단열이 잘 되어 있어서 수도관이 얼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몹시 추운 날씨를 견뎌야 하고, 요리, 세탁, 샤워 같은 것을 할 수 없게 되니 미리미리 대비를 했다. 정수기 물을 미리 받아놓고, 휴대용 가스버너를 준비해놓고, 거기에 데워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준비해놓는 등…
게다가 비상 발전기가 있으니 촛불 대신에 전등 한 두 개 정도는 켤 수 있고, 방 하나에 히터를 켜서 온가족이 모여 있으면 추위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 많이 불편하고 많이 심심할 것 같다. 휴대폰과 컴퓨터의 배터리는 발전기로 충전할 수 있지만, 정전이 되면 와이파이도 끊어지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시청할 수 있는 동영상을 마음껏 볼 수가 없다. 핸드폰 회사로부터 제공받는 데이터 용량은 중요한 이메일을 확인하고 반드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기 위해 아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토요일 밤부터 눈이 얼음비로 바뀌면 일요일 낮 부터는 정전이 될거라 예상했는데, 다행히도 바람이 심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점심시간인 지금까지도 전기는 들어오고 있다. 귀중한 전기가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하고 설거지도 얼른 해치우고 빨래도 다 해두었다. 이번 정전은 워낙 대규모로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복구되는 데에 며칠이 걸릴 것 같아서 내 블로그 독자들에게 소식도 알릴 겸, 귀중한 와이파이도 마지막으로 누릴 겸, 이 글을 썼다.
2026년 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