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 미국의 수도 워싱턴디시(DC)를 11년간 이끌었던 전설적인 흑인 시장 월터 워싱턴의 장례식이 열린 지난해 11월1일, 그의 부인 메리는 이렇게 말했다.
“워싱턴이 나에게 청혼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당신이 나와 결혼해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오면 투표권을 잃게 된다.’ 그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정말 나는 투표권을 잃었다.”
1967년 흑인으로선 처음으로 주요 도시의 시장에 취임한 워싱턴은 이듬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에 항의하는 흑인 폭동이 일어나 주 방위군이 진주했을 때, 약탈자들에게 발포하려는 주 방위군을 끝까지 말렸다. 그는 또 평생 워싱턴 시민들의 투표권을 찾기 위해 애쓴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워싱턴시의 인구는 57만여명이다. 지금 민주당 경선 주자인 하워드 딘이 주지사를 지낸 버몬트주와 비슷하다. 그러나 워싱턴 시민들은 상원·하원의원을 선출하는 투표권이 없다. 이들이 대통령선거 투표권을 가진 것도 1960년대에 들어와서다. 미국 건국 직후 워싱턴을 특별구로 처음 만들 때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은 전통이 21세기까지 그대로 내려온 것이다.
투표권을 쟁취하려는 노력은 힘겹다. “세금도 내고 군대에도 가는데 투표권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워싱턴 시민들은 항변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엔 워싱턴에 거주하는 대통령 차량에도 ‘대표 없는 과세 없다’라는 구호가 적힌 번호판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2001년 1월 조지 부시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이 번호판을 떼어버렸다. 그는 워싱턴시에 투표권을 부여하는 데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지난해엔 워싱턴시 깃발의 문양을 바꾸는 문제로 1년 내내 시 의회가 시끄러웠다. 기존의 시 깃발에 역시 ‘대표 없는 과세 없다’라는 문구를 넣자는 일부 단체와 시 의원의 주장이 제기됐다. 한 독지가는 시의 모든 깃발을 교체하는 데 드는 1만3000달러를 자신이 대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새 문양이 ‘품위가 없다’는 이유로 반대가 많아 도안을 다시 하기로 했다.
워싱턴 시민들은 올 11월의 대선을 겨냥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전국 처음으로 1월13일에 열어 워싱턴의 투표권 문제를 쟁점화시키자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민주당 전국위원회의 강한 반대에 부닥쳤다. 전통적으로 대선 개막을 알리는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분산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때문에 지난 13일의 투표는 단순한 인기투표 형식으로 치러졌고, 실제 전당대회에 보낼 대의원 선거는 2월에 열기로 했다. 유력후보들이 대거 불참한 가운데 열린 이 투표에선 하워드 딘 전 버몬트주 지사가 승리했다. 그는 “워싱턴의 투표권 쟁취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투표율은 전체 등록유권자의 10% 정도에 머물렀다. 하지만 워싱턴 투표권 운동단체들은 “아이오와 코커스의 투표율이 보통 8%다. 그에 비하면 워싱턴의 투표율은 높은 셈”이라며 많은 워싱턴 시민들이 운동에 동참했다고 주장한다.
워싱턴 시민들이 기본권인 투표권을 찾게될 날이 곧 올 수 있을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워싱턴 시민 중 60%가 흑인이다. 조지타운 대학 부근의 유일한 백인 밀집촌도 대학가 정서 때문에 진보적이다. 그러니 공화당이 의회에서 호의적일 이유가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보기 드문 투표권 쟁취운동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