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방문기 제 4편: 근사했던 놀부집
너무나 좋았던 한국방문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하여 방문기를 써보려 합니다. 읽어보시고 첨삭이 필요한 부분은 친지 여러분께서 또한 올려 주시길 바랍니다. 아참, 그리고 보다 진솔한 글쓰기를 위해 존댓말을 쓰지 않는 점을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___^
김상현씨는 남편의 초등학교 및 중학교 동창인데, 지금 한국외대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터라, 남편이 부탁하는 책을 남보다 저렴하게 구입하곤 책값도 받지 않고 그냥 부쳐주는 고마운 이다. 우리 결혼식할 때 신랑이 던진 코사지를 받아 주었던 총각이기도 하다 (신부만 부케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신랑도 코사지를 던지라고 했던 것이 참 색다르고 재미있기도 했었다 ㅋㅋㅋ).
암튼, 남편이 그동안 공짜로 책을 많이 받아서 그 신세를 조금이나마 갚아야 한대서 미국에서 작은 선물 하나를 준비해 갔는데, 내 입장에서는 남편도 없이, 나보다 한참 나이도 많으신 남편 친구를 만나자니 그냥 웬지 멋적어서 어쩌나 고민을 하다가 큰 시누이가 오빠라 부르며 편하게 대했던 기억이 나고, 또 마침 시누이도 만나야 할 일이 있길래 셋이서 함께 만나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시누이 직장이 가까운 대학로에서 시누이와 둘이 먼저 만나서 가져간 노트북 컴퓨터를 전달하고 (이 컴퓨터는 구닥다리 기종이지만 시누이의 원활한 인터넷 접속을 도와,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기 위해 공수된 것이다), 만화방에서 남는 시간을 기다려 마침내 김상현씨와 만나게 되었다.
미국에서 먹기 힘들었던 한식을 먹자는 결론을 내리고 간 곳은 놀부집이라고 하는 한정식당이었다. 예전에 놀부 부대찌개집은 몇 번 가봤던 터라, 부대찌개를 먹는줄 알고 따라 들어갔더니 조그만 입구와 달리 엄청 넓은 공간에 조명과 인테리어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신발을 벗고 민속장판이 깔린 방으로 올라가니, 운동장같은 방바닥에는 방석만 곳곳에 놓여있을 뿐 식탁이나 밥상이 전혀 없었다. 삼월이 복장을 한 여자 종업원이 와서 방석을 내어주고 물주전자와 사기대접, 그리고 메뉴판을 두고 갔다. 이 곳에 가끔 온다는 김상현씨가 알아서 주문을 하는 동안 나와 시누이는 촌닭처럼 둘레둘레 주변을 살피고… 저쪽 방 한 켠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시간이 되면 국악 공연도 한다고 김상현씨가 설명해 주었다.
한참 후에 이번에는 마당쇠 옷을 입고 댕기머리를 옆으로 동여맨 남자 종업원들이 밥상을 통째로 들고 왔다. 아… 그것은 내가 몹시도 그리워하던, 밥과 국과 반찬이 많은 바로 그 ‘밥상’이었다. 각종 전과 나물, 김치, 찌개, 생선, 두릅강회, 잡채, 갈비찜, 그리고 또… 더 많이… 정말 눈이 튀어나올 뻔 했다. 한참 정신없이 먹고있노라니 공연이 시작되었다. 판소리, 시조창, 가야금 병창, 등을 연주했던 것 같다 (먹느라 바빠서리…ㅎㅎㅎ). 내 대학원 친구들을 이런 곳에 데리고 온다면 얼마나 신기해 하고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먹고 나오니 계산을 김상현씨가 발빠르게 먼저 해버렸다. 신세 갚으려다 오히려 신세를 더 지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중에 갔던 맥주집에서도 또 나는 지갑을 열지 못했다. 민망민망…
70년대 학교 풍경을 재현해 놓은 딱지치기라는 맥주집에서도 김상현씨는 역시나 과묵하기만 했다. 묻는 말에 오직 “응” 아니면 “예” 이것이 유일한 대답이었다. 도서관에서 책만 맨날 들여다보느라 그렇게 과묵해지셨다보다 짐작했다. 그 자리에서 미국에 있는 남편과 통화를 한 판 했고, 배가 이미 너무 불러서 맥주는 입만 헹구는 정도로 끝내고 헤어졌다. (나는 술을 먹으면 앨러지 반응이 일어나는 체질이라 콜라로 입가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