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문기 제 9편: 마산에서 첫날밤
너무나 좋았던 한국방문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하여 방문기를 써보려 합니다. 읽어보시고 첨삭이 필요한 부분은 친지 여러분께서 또한 올려 주시길 바랍니다. 아참, 그리고 보다 진솔한 글쓰기를 위해 존댓말을 쓰지 않는 점을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___^
창원시내 드라이브를 하고 다시 마산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잠자리에 들 시간. 그러나 텔레비젼에서는 개표방송이 한창이고, 예상했던대로 남편은 미국에서 전화를 했다. 안부 전화를 가장한 투표확인 전화였다. 아버님 어머님 시누이와 차례로 통화한 다음 내 차례가 되었다. 오늘의 일과를 간단히 브리핑하고, 아버님께서 3번 찍으신 얘길 했더니 무척 반가워하면서도 놀래는 눈치였다. 이때까지 아버님은 늘 1번 편이셨다고 한다. 무엇이 아버님의 마음을 바꾸었을까?
이부자리를 펴야 하는데, 잠들 때까지 텔레비젼을 봐야하는 시누이는 여러 채널이 나오는 텔레비젼이 꼭 필요하고, 따라서 1층에서 자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나는 언제나 시누이와 단짝이므로 덩달아 1층에서 자게 되었고… 어머님께서 2층으로 올라가보니 이미 아버님이 온 방을 다 차지하고 주무셔서 다시 아랫층으로 내려 오셨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바꾸자고 해도 괜찮다고 하시며 기어이 나와 시누이를 옥매트 요에 눕게 하시고, 당신은 이불 한자락을 깔고 반대편 자락을 덮고 누우셨다.
나는 평소에 잠을 아주 깊이 잘 자는 편이다. 한 번 잠들면 소방차가 와서 옆 집 불을 끄고 가도 모르고 계속 잘 정도로 (고등학생 시절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깊이 잔다. 하지만 여행을 가서 여관에서 잔다거나 할 때면 아무래도 낯설어 그런지 쉽게 잠들지 못한다. 그런데 시댁에서, 그것도 시어머님과 시누이 사이에 누워서 잠을 자게 되었다… 낯설고 불편한 것이 당연하겠지만… 신기하게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꼭 오래된 친한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저녁 먹고 놀다가 늦어져서 밤에 혼자 택시타고 가느니, 자고 아침에 집에 가는 게 안전하다는 친구 어머님의 충고대로 친구집에서 자게된 그런 느낌이었다. 시누이도 내가 옆에서 자는 것이 꼭 친구가 놀러와서 같이 자는 느낌이라고 했다.
연배로 치자면 시누이와 나는 친구를 해도 좋고, 시어머님은 친구 어머님이라 생각해도 좋겠지만, 우리 사이엔 시누이와 올케, 며느리와 시어머니라는 한국사회에선 아직도 무시무시한 장벽이 있는데… 내가 넉살이 좋아서 그랬는지, 시누이와 어머님 성격이 워낙 무던하셔서 그랬는지, 암튼 우리들의 첫날밤은 그렇게 푸근하고 친근하게 깊어갔다.
시누이는 이젠 열린우리당이 제 1당이 될 것은 확실하니 개표방송이 재미없다며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고, 나는 다음날 하동에 계신 시할머니를 찾아뵈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가물가물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