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0월 31일,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유행했던 그 시월의 마지막 밤이다. 그리고 이곳 미국에선 오늘이 그 할로윈이다. 아무 말 없이 모든 것은 믿고 맡기는 보스에게 보답이라도 할겸, 그동안 마음 편히 하지 못했던 공부도 할겸,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는 오늘 이따가 들어 닥칠지도 모르는 꼬마 손님들의 피하기도 할겸 도시락 싸들고 연구소로 갔다.
나에게는 나도 인정하는 이율배반적인 것이 하나 있는데, 내가 미국에 남아서 살고자 하면서도 지독히 미국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미국민 개개인을 만나면 대다수는 선량하고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이 아닌 국가라는 개념으로 와 닿을 때는 이 나라는 다른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 폭력적인 존재다. 테러리스트란 말은 미국이란 국가를 지칭할 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2000년 대통령을 뽑는 관경을 보고는 이 나라는 민주주의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국민들이 투표한 용지를 다 세지도 않고 결과를 이미 발표해버린 그런 나라다. 이렇다면 선거는 왜 필요할까 라는 질문은 초등학교 학생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반장 선거를 하다가 표를 다 세지도 않고 반장이 당선되었다고 발표하는 꼴이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 이렇게 되었다면, 그 반 학생들은 어떻게 이야기 할까? 사실 순수한 초등학생 하나가 그렇게 되어 반장이 되었다면, 반장이 되었다면 그는 필히 부끄러워 얼굴을 못들고 다녔을 것이고, 그 반으 학생들은 그렇게 되어 반장을 선출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을 강탈하고도 뻔뻔해 하면서 마치 자기가 민주주의의 전도사 인양 자처하고, 이 나라의 국민들은 자기네 제도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주주의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국민의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해도, 선거인단을 많이 가져가기만 하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 그래서 아예 질 것 같은 곳에선 유세를 하지 않는 그런 나라다. 그리고 만일 선거인단에서 과반을 차지 하지 못하면 하원에서 대통령을 뽑는 단다. 옛날 전모씨가 대통령이 될 때 체육관에서 뽑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부통령은 상원에서 뽑는 단다. 그러면 애초에 러닝 메이트란 제도가 왜 생겼는데?
근데 역사가 짧은 이 나라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이런 잘못된 제도를 전통이라며 고치기를 거부하면서, 스스로를 가장 민주적이라 여기며 자기네 방식을 세계에 퍼뜨리려 하고 있다. 사실 그나마 그런 것을 퍼뜨리면 다행인데, 퍼뜨리는 척 하면서 미국에 이익을 안겨다 주는 꼭두각시를 앉히면서 민주주의을 전파했다고 자랑을 하니 더욱 가관이다.
나는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이란 나라, 시스템을 싫어한다.
이야기가 곁가지로 샛는데, 어쨌든 나는 미국을 지독히 싫어 하면서, 미국적인 것도 싫어 한다. 대표적으로 내가 싫어하는 것이 ‘미식 축구’다. 한국에선 이를 미식 축구라고 불러주니까 그래도 반발심이 덜하게 느껴지겠지만. 미국에선 풋볼 즉 축구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곳에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축구는 사커(soccer)다. 이 말은 사실 미국이 만들어 낸 말이다. 영국 사람에게도 축구는 풋볼이고 독일어로는 ‘푸스 발’ 역시 ‘발(foot)’ 과 공(ball)’을 합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피파(FiFA)에서 두번째 F 도 풋볼의 약자다. 근데 미국인들은 풋볼을 정말 발과도 상관이 없는 (오히려 공을 들고 뛰는데) 것을 풋볼로 만들고는 사커라는 말로 살짝 밀어낸 것이다.
오늘 계속 이야기가 곁가지로 샌다. 어쨌든 나는 미국적인 것을 싫어 하는데 그중에서 ‘할로윈’도 빠질 수가 없다. 그래서 난 사실은 오늘 집에 찾아들 아이들에게 줄 사탕과 초콜렛이 없거니와, 또 그걸 산다는 것에 돈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피신을 가 있었다. 모처럼 공부도 많이 하고 즐겁게 집에 돌아오는데 현관문이 좀 이상했다. 뭐가 묻어있는 것 같았는데 이게 옛날부터 그랬는지 좀 이상하기도 하고 해서 일단은 집으로 들어왔는데, 마침 옆집에 사는 러시아 커플도 집으로 들어오면서 문 이야기를 했다. 우리집과 옆집을 방문한 아이들이 집에 아무도 없다는 이유로 뭔가를 던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꼭 집에 있어야 하는 지를 서로 반문하면서, 어처구니 없어 했다. 결론은 국가적인 폭력에서 부터 헐리우드 영화의 폭력에 익숙해져버린 미국 아이들의 소행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으로 맺어 졌다. 자연스레 이틀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 선거이야기로 옮겨 갔는데, 러시아 커플은 선거 결과에 관계 없이 부시가 대통령이 된다고 했다. 부시가 이겨도 이긴 것이고 부시가 져도 이긴 것이라나? 깡패가 따로 없지. 그래도 난 케리가 이길 것이라는 아주 낭만적인 기대를 한다. 오랜만에 횡설수설 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