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뒤집힌 태극기-한심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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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상하가 바뀐 태극기를 들고 올림픽 한국 선수단을 응원하는 장면이 포착돼 빈축을 사고 있다. 이에 대해
‘deulpul’이란 블로거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필자의 동의를 구해 전문을 소개한다.
<프레시안 편집자>

  
  뒤집힌 태극기
  
  영화 <엘라
계곡에서(In the Valley of Elah)>는 이라크 전쟁에 갔다가 돌아온 뒤 병영에서 실종된 아들을 찾는 퇴역
군인 아버지의 이야기다. 전쟁이 인간성을 파괴하는 양상을 잔잔하게 잘 그리고 있다. 영화를 주도하는 토미 리 존스의 연기도
뛰어나다.
  
  아버지 행크는 오랜 군대 봉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애국적 퇴역 군인이다. 그는 전쟁터에 갔다가
돌아온 아들이 난데없이 병영에서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주둔 기지로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막 길을 나서며 마을의 고등학교를
지나다가, 학교 건물 앞에 걸린 국기를 발견한다. 국기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한심하고 기가 찬 표정을 짓다가, 학교로 들어가
교직원 후안을 불러낸다.
  
  Hank: Where are you from?
  Juan: El Salvador.
  Hank: Do you know what it means when flag flies upside down?
  Juan: No.
  Hank: It’s an international distress signal.
  Juan: No shit.
  Hank:
No shit. It means we are in a whole lot of trouble, so come save our
ass, cause we don’t have a prayer in hell to save ourselves.
  Juan: It says a lot.
  Hank: Yes, it does.
  
  행크: 어디 출신인가?
  후안: 엘 살바도르요.
  행크: 국기가 거꾸로 매달려 흔들리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후안: 아니요.
  행크: 그건 국제 조난 신호라네.
  후안: 정말요?
  행크: 그렇네. 뒤집힌 국기가 뜻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큰 곤경에 빠져 있으며, 우리를 위해서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제발 달려와 구해달라는 것이야.
  후안: 많은 뜻이 있군요.
  행크: 그렇지.

  
  

  
크의 말은 사실이다. 뒤집힌 국기를 구조 요청 신호로 보는 것은 단순히 국제 관행이 아니다. 실제로 미국 법률은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국기에 관한 법률(United States Flag Code) 제4절 제1장 제8조 a항은 다음과 같다.
  
  The
flag should never be displayed with the union down, except as a signal
of dire distress in instances of extreme danger to life or property.
(국기는 어떤 경우에도 상하를 뒤집어 게양해서는 안 된다. 다만 생명과 재산에 극단적인 위험이 예상되는 긴박한 재난 상황을
알리는 신호일 경우는 예외로 한다.)

  
  
이명박이 괜히 그렇게 필사적으로 흔든 것이 아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그런 생각이 드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저 장면에서 행크가 후안에게 “Where are you from?” 이라고 물은 것은 ‘미국 국민이라면 설마하니 제 나라 국기
상하도 모르겠냐’ 싶어서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민자다. 그렇다면, President Lee, where are
you from?
  
  한국 상황은 “Just like that”
  
  우리 법률에는
미국법에 규정된 것과 비슷한 ‘구조 신호로서의 뒤집힌 국기’ 조항이 없다. 그러나 상하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밝혀져
있다. 우리나라의 국기에 대한 사항은 ‘대한민국 국기법’에 규정되어 있고, 자세한 내용은 대통령령인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에
정해져 있다.
  
  대한민국 국기법 제7조 2항에는 ‘국기의 깃면은 그 바탕을 흰색으로 하고, 태극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은 각각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하며, 괘는 검은색으로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도 제2장 제6조 3항에서 ‘반원으로 연결된 원의 윗부분은 빨간색으로, 그 아랫부분은 파란색으로 한다’라고 명시한다. 또 제13조(게양 및 강하 방법) 2항에서 ‘국기는 그 깃면의 건괘가 왼쪽 위로 오도록 하여…’라고 명시한다.
  
  
이렇게 상하를 바로잡도록 되어 있지만, 국기법이나 시행령 어디에도 뒤집힌 국기에 대한 언급은 없다. 너무나 상식적이어서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또 이 법령들은 처벌 규정이 없다. 다만 형법 제105조(국기, 국장의 모독)에서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는 5년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하고, 또 제106조(국기, 국장의 비방)에서는 ‘전조의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비방한 자는 1년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5년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2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한다.
  
  
이명박이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그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기는 어렵다. 그저, 국가 원수로서의 자질과 품격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려운 대통령을 가진
한국민의 원죄 정도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명박이 들고 흔들던 것이 태극기가 아니라 성조기였다면, 그는 분명히 국기가
뒤집힌 것을 알고 격노했으리라 생각한다. 다른 뜻에서가 아니라, 성조기는 코흘리개도 아래 위를 구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영화 <엘라의 계곡에서> 마지막 장면에서 뒤집힌 국기는 다시 한번 등장한다. 아들의 병영을 찾아가 아들이 겪고 당한
기막힌 상황을 알게 된 행크는 다시 그 고등학교를 찾아간다. 그는 제대로 매달려 있던 국기를 내리게 하고, 아들의 사망통지서와
함께 온 낡은 국기를 자신이 직접 매단다. 뒤집어서다.
  
  Juan: Just like that?
  Hank: Just like that.
  Juan: Looks really old.
  Hank: It’s been well used.
  (Hank duct tapes the line firmly to the pole.)
  Juan: And I shouln’t take it down at night?
  Hank: No, you leave it just like that.
  
  후안: 저렇게 (거꾸로) 매다는 거에요?
  행크: 그렇다네.
  후안: 무척 오래 된 국기 같은데요.
  행크: 한참 쓰였지.
  (테이프를 꺼내, 국기를 내리지 못하도록 줄을 깃대에 단단히 고정시킨다)
  후안: 밤에도 내리지 말아야 하나요?
  행크: 그렇네. 그냥 저대로 저렇게 두는 것일세.

  
  
이명박이 흔드는 뒤집힌 태극기는,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솔직하고도 상징적이다. 태극기도 행크의 성조기처럼 저렇게 뒤집어
단단히 붙여놓고 싶다. 한국이 지금 큰 곤경에 빠져 있으며, 한국을 위해서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제발 누군가 달려와
구해달라는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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