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출산 예정일이 7주일 남았다. 코난군이 예정일보다 3주 일찍 태어난 것을 감안하면, 둘째 아이의 실제 출산일이 4주밖에 남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이젠 누가봐도 만삭의 배를 하고서 학교 복도를 왔다갔다 하다보면 만나는 사람들마다, 언제가 출산이냐, 아이를 낳을 때 한국에서 가족이 도우러 오느냐, 출산 휴가는 얼마나 쓸거냐, 휴가 동안 임시 강사는 구했느냐, 등등의 질문을 한다.
나의 야심찬 계획은 이러하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강사섭외는 하고 있지만, 출산한 이후 일주일 정도는 강의를 휴강하고 그 다음 주부터는 강의가 있는 날만 아기를 데리고 출근해서 강의를 한다.
-교생실습지도 과목의 세미나는 같이 지도하는 캐롤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학교를 방문해서 관찰 지도하는 것은 학생들이 비디오로 자신의 수업을 촬영해와서 내 오피스에서 함께 보며 피드백을 주기로 한다.
-각종 교수회의나 다른 행정업무는 어차피 강사에게 대신 참석해달라고 맡길 수 없는 일이므로, 동료들에게 미안하지만 빠지기로 한다.
-코난군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코난아범이 담당한다.
-요리는 효율성 높은 내가 하고, 나머지 집안일은 코난아범이 한다. (어차피 빨래는 원래 코난아범의 담당이었고, 집청소는 원래 자주 하고 살지 않았다 🙂
-코난군의 청결은 코난아범이 담당하고, 신생아 돌보기는 내가 담당한다.
그렇게 6주 정도만 버티면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는 나이가 되고, 학기도 마무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한 푼이라도 더 벌자는 욕심이 그득한 우리 부부는 여름 학기 강의도 할 것 같다 ^__^
이렇게 내 계획을 말하면, 나를 걱정해주는 친한 사람들은 ‘어휴,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며 걱정부터 해준다. 나역시 이번참에 내 체력과 능력의 한계점을 확인하거나 철인삼종경기를 간접경험하고싶어서 이런 계획을 세운 것은 결코 아니다. 나처럼 게으르고, 잠많고, 노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철같은 계획을 세운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이다.
첫째, 내 건강상태와 내가 해야할 업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코난군을 출산한 이후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신생아를 돌보는 것이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안거나 바구니에 담아 들고 다니기가 가벼운 무게이고, 먹이고 갈아주는 것만 잘 해주면 잠을 자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내 평소 건강상태로 볼 때, 그 정도의 일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학교의 일이라는 것도, 일주일에 두 번 강의를 하는 것은 20명 정도의 소규모 클래스에다 지난 학기에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라, 내가 쑥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것이고, 의자에 앉아서 파워포인트를 보여주면서 말로 설명하면 되는 것이라, 체력소모가 별로 없는 일이다. 강의도 교생실습지도도 7년째 해오는 일이라, 그닥 강의준비를 많이 하지 않아도 되고, 능숙하게 해낼 수 있다.
둘째,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데에는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여기서 지불해야할 “댓가” 라는 것은 금전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노력과 신경쓰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만일 한국에서 부모님이나 다른 친지가 내 산후조리를 도와주러 오신다면, 일단 가장 먼저 공항 마중을 나가는 것이 큰 부담이다. 그 다음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살림을 해주신다며 애를 쓰고 계시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 손에 내 일상을 맡기는 것이 영 편치않다. 운전이나 언어문제 때문에, 내가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일정 부분은 어쩔 수 없이 내가 (혹은 코난 아범이) 해야할 일이 생긴다. 장보기라든지, 코난군 어린이집 등하원이라든지, 등등…
그리고 결정적으로 강의를 대신할 강사를 구하면, 그거야말로 앓느니 죽지! 하는 말이 나온다.
학기가 시작한지 절반 가까이 지나온 시점에서, 내 학생들의 성향이나 이때까지 배워온 내용을 전혀 모르는 강사에게 그걸 다 설명해주고, 앞으로 배워야 하는 내용이 어디까지이며 어느정도 깊이로 다루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하고, 시험문제는 내가 출제해야 할 것이며 (그 와중에, 강사가 시험에 출제된 내용을 제대로 가르쳤는지 미리 확인도 해야한다), 채점도 마지막 확인은 내가 하고, 학교에 점수를 올리는 것도 내 일이다.
게다가 동료교수 케티의 강의과목과 내 과목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어서, 발표 과제라든지, 숙제제출일 같은 것은 내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다. 학생들의 모의수업을 참관하고 채점하는 것은 절대로 강사에게 맡기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다년간의 내 경험과 케티와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이메일은 또 어떤가! 강사가 무언가 내가 말했던 것과 다른 내용의 정보를 줄 때마다 (과제에 대한 설명이라든지), 내 이메일 박스는 폭포수처럼 넘쳐날 것이 뻔하다. (이것 역시 다년간의 강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100퍼센트 확실한 예상이다.) 그림이나 사진으로 보여주고 말로 설명하면 10분이면 충분할 것을, 이메일로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답장을 해주려면 열 배 스무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강사를 고용하고도, 내가 해야만 할 일은 여전히 남아있을 뿐 더러, 내가 직접 하면 간단할 일도 강사에게 시키면 훨씬 더 복잡하고 힘들어진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셋째, 우리 학과의 분위기가 가족적인 점이다.
동료교수 대부분이 아이를 둔 부모이고, 전공들이 모두 교육학 분야라서, 어린이에 대한 이해와 관심과 사랑이 많은 사람들이다. 예전에 코난군이 아기였을 때 유모차를 끌고 출근을 하면 동료들이 서로 앞다투어 안아보려고 하고, 내가 강의나 회의에 참석중일 때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우유를 먹이거나 하는 것을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해주곤 해서 감동을 받기도 했다. 그러니 내 연구실에 아이를 데리고 와서 일을 한다고해서 이상한 눈초리로 보거나 나쁘게 생각할 사람이라곤 전혀 없다. 오히려 집에서 혼자 아이를 데리고 이메일이며 문서작업을 하는 것보다, 학교에 나와서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일에 집중도 더 잘 되고, 집안에 갇혀있다는 답답한 느낌도 떨쳐버릴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
이러한 전차로… 나의 출산이후의 계획이 세워졌다.
별다른 어려움없이 – 제왕절개라든지 하는 – 순산하기만 하면 날씨도 곧 봄이 올테고, 아이도 잘 키우고, 일도 잘 하며,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내가 많이 낙천적인 성격이라 더욱 그런가보다.
2012년 1월 12일
이제 남은 것은 출산 직전과 직후 며칠 동안의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코난군만 아니면 굳이 치밀한 작전과 계획이 필요없이, 그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아기가 태어나는 날짜와 시간을 따르면 되겠지만, 만일에 한밤중에 진통이 오거나, 출산의 진행이 더디어져서 중간에 코난군을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와야 한다든지 하는 일이 생기는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차라리 어디가 아파서 수술을 하는 것이라면 몇월 몇일 몇시 라고 스케줄을 미리 못박아둘 수 있으니 계획을 세우기가 훨씬 수월할텐데… 아기를 낳는 건… 삼신할매 밖에 그 정확한 타이밍을 모르니, 참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임의로 제왕절개를 하거나 유도분만을 무리하게 잡을 수도 없고, 미국에서는 의사가 그렇게 해주지도 않는다고 한다.
암튼, 지금까지 정한 원칙은, 가능한 한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우리 가족끼리 힘을 합쳐 버티는 것이다.
주변에 가까이 친하게 지내는 좋은 이웃과 친구들이 많지만, 앞서 말한대로 아기가 언제 어느 때에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 누가 유용한 도움이 될지 미리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일단 우리끼리 해결해보자 하는 마음을 먹고 있으면서, 막상 때가 닥치면 그 당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섭외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주변 사람들과 긴급 연락이 가능한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항상 지니고 다니는 것이 우선 할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