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이가 잘 먹고 잘 자고 있어서 산후조리 라는 명목으로 집에서 쉬는 시간이 매우 여유롭고 편안하다. 이렇게 시간이 날 때, 내가 경험한 미국 산부인과 진료와 출산 과정을 자세히 기록해두고자 한다.
임신을 하고나서 인터넷으로 임신과 출산에 관한 정보를 많이 찾아보곤 했다. 그리고 임산부 3대 굴욕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아기를 낳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면 그 누구도 예외없이 아랫도리의 털을 면도해야 하고, 출산하는 동안에 뜻하지 않게 대변을 보는 사고를 막기 위해 관장을 반드시 한다고 한다.
자궁경부가 얼마나 확장되었는지를 알아보기위해 의사가 손을 넣어서 촉진하는 것을 일컫는 내진 역시 산모들로 하여금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고 한다.
그 세 가지를 일컬어 임산부 3대 굴욕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제모, 관장, 내진
미국에서 아이 둘을 낳으면서 제모나 관장을 해본 적이 없고, 다른 산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미국 병원에서는 그런 것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것 같다.
아마도 위생적인 관점, 혹은 의사와 간호사의 편리를 위해 한국 병원에서는 그 두 가지를 하는 것 같은데, 위생관념이 다른 어느 나라 보다도 과하다 싶게 철저한 미국에서 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그렇게까지 위생상 큰 위험을 초래하는 문제가 아닌가보다.
반면에 출산을 앞둔 산모에게는 심리적으로 큰 충격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이 틀림없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신체의 부끄러운 부분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면도를 “당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견디기 힘든 일이다. 차라리, 임신 중 정기 검진 기간 동안에,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오기 전에 집에서 제모를 하고 오라고 미리 일러주는 편이 산모의 심리적 충격을 덜어주고, 위생이나 의사의 편의성도 도와주는 길이 아닐까 싶다.
관장-약물을 넣어서 임의로 대장을 비워내는 것- 역시 그렇다. 출산을 위해 입원한 산모라면 대게가 이미 아랫배가 아픈 진통을 겪고 있는 중인데, 그 와중에 관장약을 넣고, 그 약이 대장속의 변을 다 쏟아낼 수 있도록 한참을 기다렸다가 화장실에 가야한다는데, 그 얼마나 거북하고 불편하고 아플까 싶다.
미국 산모들도 사람인지라, 아이를 낳기 위해 힘을 주다가 변이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 관장을 미리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간호사가 조용히 닦아내며 뒷처리를 한다고, 현직 간호사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지금 아이가 무사히 나오는 것이 중요하지, 그 과정에서 대변이든 소변이든 조금 흘러나오는 것은 그 때 그 때 잘 닦아내면 되는 하찮은 문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진, 혹은 일반적인 산부인과 검진의 과정에 대해서도 한국과 미국의 의료진이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한국에서 산부인과를 가본 적은 없지만, 함께 일하던 선배 유치원 교사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와, 한국 임산부 싸이트에서 읽은 글은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장면을 상상만 해도 끔찍하기까지 하다.
하의를 완전히 탈의한 다음, 가리거나 덮을 것도 없이 다리를 벌리고 침대에 누워있으면 열린 문틈 사이로 바깥 복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보이고, 의사는 환자의 동의를 묻지도 않은 채 실습생을 여러 명 데리고 들어와서 예고도 없이 손가락을 쑥 집어넣어보고, 상태가 어떻다 하고 자세한 설명도 없이 나가버리거나, 심한 경우에는 둘러선 실습생들에게 한 번씩 손을 넣어서 살피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산부인과를 처음 갔을 때 긴장되고 불안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나 간호사와 의사 모두가 그런 긴장감을 이미 알고 있는 듯, 검진의 과정 하나하나를 미리 설명해주고,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어서, 처음 방문 이후 산부인과 진료 (내진을 포함해서) 는 내게 아무런 심리적 충격이나 수치심을 주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검진을 위해 옷을 벗어야 할 때는 방을 완전히 비워주고, 충분한 시간을 주어서,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준비하게 해주었다. 또한 가운을 입은 위에 다시 깨끗한 천을 덮고 기다리도록 해서, 누가 들어와서 보더라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도록 했다.
의사나 간호사가 그렇게 준비하고 기다리는 진료실에 들어올 때에는 반드시 노크를 하고, 내가 오케이 라고 하기 전에는 먼저 왈칵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들의” 진료실이 아니라, 진료받는 시간 동안에 나에게 배당된 진료실은 “나만의” 공간인 것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함부로 내 허락없이 들락날락 하거나 문을 휑하니 열어놓고 다니면 안된다는 사고방식이다.
실습생을 데리고 들어오기 전에 먼저 내 허락을 구하고, 한 두 명의 실습생이 의사 혹은 간호사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오면 나에게 자기 소개를 하고 (경기도지사가 그렇게 원하던 관등성명 을 하는 것 :-), 참관을 허락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하곤 했다. 나역시 후학을 양성하는 직업에 종사하면서 교생실습을 받아주는 학교와 교사들의 도움을 받곤 하는 처지라, 거리낌없이 의료실습생들의 참관을 허락했고, 어김없이 그들은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환자의 인권을 존중해주었다.
여기는 분만실이자 입원실이지만, 일반 진료실도 출입문과 침상의 방향을 반대로 해서 환자의 인권을 존중해준다. 입원실은 방문을 열고 들어오면 커튼이 한 겹 더 있고, 간호사든 의사든 청소부든 상관없이 노크를 한 다음 문 안에 들어와서 커튼 밖에서 내가 오케이 라고 할 때 까지 기다린다.
세 번째 굴욕으로 인정받은 내진 이라는 것을 할 때에도, 의사가 먼저 설명을 해준다. 왜 하는지, 어떤 식으로 하는지, 어느 정도 아플 것인지, 그 이후에 약간의 출혈이 있을 것이라든지, 하는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더 알고 싶은 것이나 질문이 있는지 물어보고, 그 다음에 내 몸을 덮은 천을 필요한 만큼만 최소한 들어올려서 진찰을 하고, 다시 잘 덮어준다.
조금 아프기는 하지만, 내가 동물이나 물건 취급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충분히 존중받았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기분이 나쁠 일은 없었다.
미씨유에스에이 에서 읽은 글 중에 웃기고도 서글픈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온지 얼마 안된 산모가 아이를 낳으러 병원엘 갔는데, 한국에서 산부인과 진료를 받았던 경험과 아직은 서투른 영어 때문에, 간호사가 가운으로 갈아입고 기다리라는 말을 미처 못알아듣고, 아랫도리를 홀라당 다 벗고 아무것도 가리지않은 채, 다리를 한껏 벌리고 진료실 침대에 누워서 기다리고 있는데 간호사가 노크를 하고 들어와서는 그 광경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오, 보이!”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산모는, 한국에서는 혼자도 아니고 처음 보는 여러 명의 산모들과 함께 그런 차림과 자세로 한 방에 나란히 누워서 기다리고 있으면 의사가 와서 닭장속의 닭을 살피듯 주루룩 훑어보며 차례대로 검진을 하고 나가곤 했기 때문에, 그 간호사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더란다.
물론 미국 병원의 이런 훌륭한 써비스 뒷편에는 무시무시하기까지 한 비싼 의료비가 숨어있다. 한국과 미국의 의사나 간호사가 하루에 평균적으로 대하는 환자 수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고 한다. 즉, 한국의 의사 간호사가 악마 기질을 타고나서 환자를 무시하고 모멸감을 일부러 주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쨌든 환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주정부 산하 기관인 주립대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의료보험료를 아주 좋은 조건으로 지원받는 덕분에, 돈 걱정 전혀 없이 좋은 의료 써비스를 누리며 두 아이를 낳을 수 있었던 나는 정말 행운아이다.
2012년 2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