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기 2> 호텔방과 흡사한 입원실겸 분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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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와서 공부하면서 학회 발표 등의 이유로 호텔에 숙박하는 일이 많았다. 거의 매 해 타주 혹은 타도시에서 하는 학회에 참석을 했고, 거기에 방학을 맞아 여행을 다니면서 숙박한 경험까지 더하면 과장없이 수 십 번도 넘게 미국 호텔에 묵어보았다. 학교에서 출장비가 전액 지원될 때 묵었던 호화 럭셔리 호텔도 있었고, 내 주머니 사정이 열악해서 아주 허름한 여인숙 수준의 숙소에서 묵었던 적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의 호텔방은 비슷비슷한 구조이다.

여러 개의 침실이 딸린 스위트 구조가 아니라면, 문을 열고 들어서면 침실이 있고, 각 침실마다 욕실이 딸려 있고, 욕실 안에는 어김없이 헤어 드라이어가 있고, 욕실 가까운 곳에는 붙박이 장이 있으며, 티브이와 소형 냉장고, 전자렌지 같은 가전제품이 있고, 2인용 테이블과 의자, 서랍장겸 화장대 등의 가구가 놓여있다. 럭셔리 호텔이라면 멋진 그림 몇 점이 침대 머리맡에 걸려 있기도 하고, 욕실에 구비된 수건과 비누 로션이 아주 최고급품이다. 싸구려 모텔에는 냉장고 대신에 얼음을 받아다 비교적 장시간 보관할 수 있는 얼음통이 있고, 전자렌지나 커피 메이커는 객실마다 있지 않고, 복도 한 켠에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있다거나 하는 차이가 있다.

각설하고, 아이를 낳기 위해 입원한 분만장은 내가 다니던 커릴리언 메디칼 센터 내에 위치하고 있는데, 각각의 입원실이 분만실로도 쓰이는 구조이고, 그 내부는 미국 호텔과 매우 흡사하다.

방의 가장 중심에 침대가 있고, 그 옆에는 태아와 산모의 상태를 모니터 하는 기계가 설치된 카트가 있다. 산모 침대 왼쪽에 있는 것은 나무 재질의 신생아 침대인데, 바퀴가 달려 있어서 침대 채로 밀어서 신생아실로 왔다갔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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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침대 머리맡 간접조명만을 켜두고, 의사가 와서 진료를 할 때는 천장의 밝은 조명을 켜고, 아이가 태어날 때는 천장에 설치된 아주 밝은 수술등을 켠다. 침대에는 높낮이와 상/하체를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는 리모콘이 달려있고, 특이한 것은, 그 리모콘에 티브이 리모콘과 스피커도 함께 붙어있는 점이다.

침대 건너편에는 티브이가 있는데, 이건 미국 어~~딜 가나 똑같은 호텔방의 구조이다. 상당수의 가정집 안방에도 이렇게 침대에 누워서 티브이를 볼 수 있도록 가구 배치를 하는데, 아마도 티브이 왕국이라는 별명이 이래서 붙었나보다.

나는 티브이 보다도 그 위에 걸린 시계를 아이 낳는 동안 수 십 번도 더 쳐다보았다. 진통이 몇 분 간격인지, 탯줄을 자르는 시간이 정확히 몇 시 몇 분인지, 등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창가에 놓인 소파는 잡아당기면 어른 두 사람이 잘 수 있는 크기의 침대가 되는데, 환자 보호자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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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실겸 입원실은 혼자 쓰기에는 꽤나 넓었는데, 눈짐작으로 한국의 20평 아파트 정도 넓이는 족히 되어보였다. 벽에 붙은 수납장 안에는 각종 의료기구 – 고무장갑이나 거즈, 주사기, 등등 – 가 들어있었다.

열린 문 안쪽은 욕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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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 바깥에도 씽크가 있고, 아래에는 소형 냉장고도 있다.

쓰레기통은 아기 기저귀나 의료처치를 하고난 후에 생긴 의료 폐기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구분해서 버리도록 두 가지가 따로 있었으나, 한국의 분리수거처럼 엄격하게 단속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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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욕실 안에 있는 세면대이다. 손을 가까이 대면 자동으로 나오는 일회용 타올도 있고, 면으로 된 타올도 충분히 구비되어 있다. 다 쓰고 더 갖다 달라고 하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갖다주는 것도 호텔과 똑같은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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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 드라이어가 벽에 붙어있는 것도 호텔방과 똑같다.

여기가 호텔이 아니라 병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손을 씻는 물비누 디스펜서가 함께 붙어있다는 점과, 타올 옆에 잔뜩 놓인 출산후 분비물을 처리하는데 필요한 대형 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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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면대 옆의 붙박이 장에는 개인 소지품을 넣어둘 수 있는데, 아기가 퇴원할 때 입힐 두툼한 외투를 걸어놓은 것이 보인다. 오빠가 태어나서 퇴원할 때 입혔던 것이라 파란색이다 (수민, 미안~~).

선반 위에는 내가 싸가지고 간 짐이 든 가방인데, 둘째 아이 출산이라 – 그것도 같은 병원에서 – 짐이 많지 않고 단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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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을 할 수 있는 코너에는 월풀 욕조가 설치되어 있었다. 한국의 어떤 산모들은 아이를 낳고 몇 일 동안 샤워는 커녕 이도 닦지 않는다고 하는데, 모유수유를 해야 하는 산모와 아기에게 위생상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첫 아이와 둘째 아이 모두 낳고 나서 바로 그날 혹은 다음날 부터 따뜻한 물에 샤워를 했는데, 깨끗한 몸의 개운한 느낌이 좋았다. 물론 산후풍이라든지 뼈마디가 쑤시고 아픈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나이가 더 들면 아플거라고? 그건… 아마도 정말 노화현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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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욕실임을 알려주는 또 한가지 힌트는 이렇게 생긴 비상벨이다.

변기 옆과 욕조 안쪽에 각각 한 개씩 붙어 있는데, 환자가 갑자기 도움이 필요할 때 잡아당기면 병실 바깥 간호사 스테이션과 바로 통신이 가능하다. (당겨보진 않았지만, 그러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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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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