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는 ‘코리안’ 얘기하고 데이케어 친구들은 ‘잉글리시’ 얘기하지?”
코난군이 한국어와 영어를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2년도 전부터였다. 2년 전 이맘때, 우리 학과에서 중요한 미팅이 있었고, 코난아범도 저녁 늦게까지 무슨 일이 있어서, 코난군을 바바라 선생님 댁에 오후부터 늦은 저녁 시간까지 맡겨야만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까지 코난군은 늘 나를 부를 때 “엄마” 라고 불렀지, 단 한 번도 “마미” 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바바라 선생님댁 거실에서 코난군과 작별 인사를 하고 코너를 돌아서 현관으로 나가려하고, 바바라 선생님은 코난군에게 이제부터 나랑 놀자 뭐 그런 이야기를 하려하는데, 내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마~아 미~~~~” 하고 우는 코난군의 목소리였다.
즉, 코난군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말을 알아듣는 엄마는 이 곳을 떠났고, 저 할머니는 영어밖에 못알아들으니, 내가 엄마가 보고싶어서 운다는 것을 알리려면 “마미~” 하고 울어야지, “엄마~” 하고 울어봤자, 바바라 할머니는 못알아들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던 것이다.
유아언어발달 에서는 이런 것을 프래그마티즘 이라고 부른다. 말을 할 때, 상대방이 알아들을 것을 염두에 두고 말을 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런 프래그마티즘 은 언어 능력의 발달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는 인지적 능력과 사회성이 동반 발달해야만 터득할 수 있는 기술이다.
요즘의 코난군은 영어와 한국어를 상황과 대상에 맞게 선택해서 말 할 수 있다. 그야말로, 한국어와 영어가 완벽하게 호환되는 이중언어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오랜 시간을 어린이집에서 보내다보니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빨리 발달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혹시라도 코난군이 한국어 말하기를 부끄럽게 여기게 될까봐 이중언어 능력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스마트한 피플이라서 ‘잉글리시’도 하고 ‘코리안’도 말 할 수 있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잉글리시’ 한 개 밖에 얘기 못하지? 그런데 우리는 둘 다 할 수 있어.”
이렇게 말이다.
그럴 때 대부분 “응, 나도 알어” 라고 코난군은 대답하곤 하는데, 얼마 전에는 “응, 그리고 ‘스페니시’도 얘기할 줄 알지?” 하고 말했다.
“코난군은 스페니시를 할 줄 알어? 엄마는 못하는데.” 그랬더니 코난군이 나에게 스페인어 말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엄마, 일케 해봐. ‘알라꼴랄빠루골록’ 일케 하면 ‘스페니시’ 얘기 할 수 있어.”
물론, 알라꼴랄빠루골록 이라는 단어는 스페인어에 없다 (혹은 없을 걸로 짐작된다 :-).
그저 자기 귀에 들리는 소리를 흉내내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검색한 동영상 중에 어떤 것은 스페인어가 나오는 것을 듣기도 하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토이스토리 3편에서는 주인공 버즈라잇이어 가 리셋되는 과정에서 실수로 스페인어 버전으로 바뀌어 스페인어를 말하는 장면을 여러 번 보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스페인어는 가장 많이 배우는 외국어라서, 학교나 어린이집에서 간단한 스페인어 단어를 가르치거나 티브이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자기 귀에 들리는 소리가 영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알라꼴랄빠루골록’ 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스페인어이다.
연구에 의하면 어린 아이의 두뇌는 유연성이 아주 높아서 외국어 소리를 구분해서 듣고 따라하는 능력이 어른보다 뛰어나다고 한다. 지금 한창 두뇌가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는 코난군을 위해서 어떤 환경과 경험을 제공해야 할까?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2012년 6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