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교생실습 지도를 마치고 오후 강의를 하기위해 학교로 가던 도중에 교통사고가 났다.
늘 출퇴근 길에 다니던 익숙한 길인데, 무척 운이 나빴는지 제법 큰 규모의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내 차를 포함해서 세 대의 차가 심하게 부서지고, 중상자도 한 명 발생했고, 소방차과 구급차와 경찰차가 족히 열 대도 넘게 출동했으니 말이다.
일단 움직일 수 없도록 망가진 차는 토잉트럭이 수리점으로 끌고 갔고, 남편과 앞으로 어찌할 것인지를 의논하는 중인데… 아마도 차를 고치는 값이 10년된 중고차 값보다도 더 나올 듯 하니, 중고차든 새차든 아마 차를 새로 장만해야 할 듯 싶다.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않고, 차를 산다는 것이 무척이나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일이다보니, 남편은 신경이 많이 날카로와져 있다.
골치가 아픈 일이 생겼을 때, 너무 나쁜 쪽으로만 치우치지 말고 다행스러운 점을 기억해내면 마음을 다스리는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글을 쓴다.
교통사고 자체는 재수없고 기분나쁜 일이었지만, 그래도 천만다행이었던 것은…
1. 내 몸은 다치지 않았다. 다른차에서 발생한 중상자처럼 만약에 내가 다쳤다면 나는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보살펴야 하는 우리 아이들과 남편과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2. 내 과실이 전혀 아니었다. 내 잘못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면 그 보상을 감당하기란 너무 힘들었을 것이고, 정신적으로도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3. 사고가 난 경위가 무척 분명했고, 증인도 여러명이 있어서 나중에라도 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없어보인다. 경찰관은 내게 사고의 경위를 물어보기 전에 이미 여러 명의 증인들과 다른 피해자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듣고나서, 내가 간략하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더니, 앞서 말한 목격자들의 말과 일치하니 더이상 물어볼 것도 없다고 했고, 다른차 운전자의 과실이 분명해보인다고 말해주었다.
4. 사고가 나자마자 학교에 연락해서 강의와 학생 미팅을 취소해 달라고 알렸는데, 동료교수 섀런이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고현장까지 달려와주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당시 남편은 회의중이라 나와 연락이 불가능한 상태였는데, 섀런이 도착할 때 쯤에 남편과도 연락이 되었지만, 남편이 오후 강의를 마치고 한 시간 거리를 운전해서 집으로 오면 거의 저녁이 다되는 시간이라, 섀런이 차로 나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다.
5. 동료교수 섀런이 우리집까지 나를 데려다주면서, 일부러 그랬는지 우연히 그랬는지 사고와는 전혀 상관없는 우리 학생들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것도 기특하게 실습을 잘 하고 있는 학생들 이야기를 하다보니, 사고로 놀랐던 내 마음이 가라앉고 흐뭇한 학생들 이야기를 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사고가 나기 직전에 내가 참관했던 교생은 마침 둘리양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실습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교생실습을 열심히 잘 하고 있는 학생도 보고, 똘망똘망 어린이집 생활을 잘 하고 있는 둘리양도 보고 해서 무척 기분이 좋았던 일도 생각이 났다.
6. 남편과 내가 하는 일이 시간을 비교적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업종이라, 당장 내일 두 사람 모두 강의와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준 후에 차 수리비 견젹을 뽑아보거나, 새 차를 구입하는 것을 알아보러 다니기로 했다. 둘 중에 하나라도 꼼짝없이 출근해서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면 사고 뒷수습이 조금 더 힘들었을 것이다.
7. 친하게 지내는 제이 교수님이 내 사고 소식을 듣고 함께 안타까워 해주시면서, 자기 집에 남는 차를 급할 때 가져다 쓰라고 하셨다. 새로 차를 장만하는 일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면, 염치불구하고 신세를 져야겠다.
8. 우리학과 다른 동료교수들과,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사고 소식을 듣고 괜찮은지 물어보고, 안다쳤다니 다행이라는 이메일을 연달아 보내주고 있다. 인정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덕이다.
9. 저녁에 코난군 이발도 시켜주고 귀도 파주고 하면서 새삼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일상생활에 감사함을 느꼈다. 마침 코난군은 앞니 한 개가 오늘 저녁에 빠졌는데, 어른들은 사고를 당하고, 수습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그러고 있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즐겁게 뛰어놀고, 잘 먹고, 이도 빠지고… 자기들 할 일에 충실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무척 다행스러웠다. 더욱 기특했던 것은, 코난군이 아빠와 함께 집으로 오는 길에 엄마 차가 사고가 났었다는 말을 듣고 엄마가 괜찮은지 걱정했다고 내게 말해준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다치지 않아서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한단다. 대견한 녀석!
10. 이만하면… 불행중 다행이 충분하지 않은가…!
2014년 9월 24일
사고가 일어난 다음날은 남편과 하루종일 보험사, 정비소, 자동차 딜러샵을 돌아다니며 일을 보았다.
우리측
보험담당자는 노마 힐 이라는 할머니인데, 아주 일처리가 명확하고 똘똘한 사람인데다 친절하기까지 해서, 원칙대로 하자면 상대방
보험사에서 일처리를 할 때까지 이쪽에서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일부러 경찰서 기록도 찾아봐주고, 상대방 보험사에 먼저
전화해서 일을 빨리 처리하도록 해주었다. 노마 덕분에 경찰서 기록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고, 상대방 과실이 확실하다는
것도 확인했다.
다음은 정비소. 윌리엄 프라이스 라고 하는 역시나 나이 많은 어르신이 운영하는 곳인데, 이 할아버지도
연세는 족히 80살은 되어 보이지만, 직접 비지니스를 운영해온지 오래되었고, 머리가 비상하신 분이다. 우리가 찾아가니, 전날에
토잉해서 들어온 우리차를 먼저 기억하고는 “그 차는 볼 것도 없이 토탈이야 (=고칠 수 없는 정도라서 폐차해야 하는 수준)” 라고
말해주었다.
전날밤에 열심히 검색을 해보니, 중고차값이 터무니없이 너무 높아서 아무래도 새 차를 구입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동차 딜러샵을 여러 군데 돌면서 가격을 협상하는 중이다. 아마도 다음 주말 까지는 결판이 날 듯 한데, 그
동안은 제이 교수님네 남는 차를 빌려 쓰기로 했다. 렌트카를 빌려타도 상대방 보험사에서 비용을 대주게 되어있기는 하지만, 만약에
(거의 확실하게) 내 차를 폐차하기로 결정이 나고 보상금을 받은 다음에는 렌트카 비용 지급이 중단되는데, 만약에 주중에 그런
결론이 내려지면 렌트카 사무실을 왔다갔다 해야해서 번거롭기 때문이다.
어제 자동차 딜러샵에서 남편의 활약은 대단했었다 🙂
계
산기를 두드리는 딜러보다도 빠른 암산으로 세금과 이자율을 계산해내거나, 미리 뽑아온 자료를 펼쳐들고 기선을 제압해서 딜에서 우위를
선점했다. 마침, 차값 관련 자료를 출력한 이면지에는 어려운 물리학 논문과 복잡한 수식이 잔뜩 적혀있어서, 그것만으로도 딜러에게
만만한 호구가 아님을 강력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ㅋㅋㅋ
몸은 좀 어떠세요?
저도 교통사고를 당해보니 그 당시에는 놀란 마음에 통증을 모르다가
나중에서야 욱씬거리던데요.
새 차는 뽑으셨나요? 왜 차를 뽑는다고 표현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주변 분들과 가족들 모두 멋진 모습을 보여주셨네요. ^^
미모로 애국 님 오랜만이네요 🙂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던 덕분에 왼쪽 팔꿈치가 문에 살짝 부딪히긴 했지만, 다음날이 되니 멀쩡해졌어요.
보통은 사고가 난 다음날 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면서 안좋아진다고 하던데, 저는 워낙에 경상이라 그랬는지 정말 멀쩡하게 괜찮아졌어요.
이번 주말은 자동차 쇼핑 때문에 바쁠것 같아요.
걱정해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10월 4일 토요일에 새 차를 데리고 왔다.
전기와 휘발유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라서 연료비가 절감되는 것도 좋고, 차체가 아담해서 내가 운전하기에 부담이 없다는 점도 무척 마음에 든다.
앞으로 10년간 무사히 타고나면 코난군에게 물려주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