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1

오랜만에 일기처럼 써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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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커갈수록 일상의 자잘한 일이 – 나열하기에도 너무 자잘하고 사소한 일이 – 너무 많아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 말고 다른 일은 까맣게 잊고 살아왔다. 예를 들면 여기 블로그에 글쓰기라든지, 외출할 때 귀걸이나 목걸이 하기라든지, 한국에 계신 가족과 친구들과 연락하기라든지… 그 모두가 당장 안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일이다보니 쉽게 잊고 살게 된다.

아이들을 보살피는 자잘한 일이란, 아침마다 옷입히기로 한바탕 난상토론을 두 녀석을 상대로 하기부터 시작해서, 코난군의 머리카락 정돈해주기, 코난군과 코난아범의 도시락 준비, 추운 날씨에 맞추어 각종 겨울 장비 (모자 장갑 등) 챙겨주기, 아침 식사라고 하기에 부끄럽지만 우유와 씨리얼 같은 것도 차려주는 것이 일이다 🙂 그렇게 온가족의 등교와 출근을 준비하면서 내 출근 준비도 하다보면 귀걸이 목걸이 같은 것을 고르고 거울을 쳐다볼 시간이 충분치 않다. 맨낯을 가리기 위해서 파운데이션을 바르는 것만 겨우 하고 있다.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 시간이 되면 그 날의 업무가 마무리되었든 아니든간에 무조건 아이들 하원 하교 시간에 맞추어 퇴근을 해야 한다. 남편과 통화하면서 누가 누구를 픽업할지를 정하는데, 그것도 도로 교통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으므로 수시로 통화를 하기도 한다. 어제 저녁에도 원래는 내가 코난군을, 남편이 둘리양을 픽업하기로 했으나 (날씨가 무척 추워서 한 사람이 두 아이를 픽업하는 것이 나쁘다고 판단했기 때문. 둘리양의 카싯을 두 번이나 매고 풀고 해야하는데, 고집쟁이 둘리양은 자기가 직접 하겠다고 하기 때문에 시간이 꽤 걸린다), 중간에 남편의 도착이 늦어질 것 같아서 하교 시간이 조금 더 나중인 코난군을 남편이 픽업하고 내가 둘리양을 픽업하기로 했다가, 조금 뒤에는 남편의 주요 통근 도로에서 사고가 있어서 차가 막히는 바람에 결국 내가 두 아이 모두 픽업을 했었다.

그렇게 집에 오면 저녁을 먹고 먹이고, 코난군의 숙제를 돌봐주고, 두 아이를 씻기고, 설거지를 하고 다음날 도시락 준비를 하고 – 이렇게 쓰고보니 별 일도 없는 듯 하지만 사실 저 모든 과정에서 아이들을 설득하고, 달래고, 재촉하고, 꾸짖고, 또 그 와중에 화장실 볼일 본 녀석 뒷처리해주기, 혼자서 귤이 안까진다며 짜증내는 녀석 돕기 (그렇다고 엄마가 다 까주는 것은 절대 안된다. 귤의 맨 꼭대기만 살짝 손톱으로 따주어서 나머지는 둘리양이 혼자서 깔 수 있게 해주어야만 한다 ;-), 다음날 도시락 메뉴를 무엇으로 할것인지 토론 (학교 급식 메뉴가 무엇인지 먼저 확인하고 – 학교 급식도 두세가지가 있어서 그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지를 골라야 한다 –  엄마가 싸주는 점심은 무엇으로 할지 정하는데, 샌드위치라면 햄과 치즈를 넣을 것인지, 피넛버터를 바를 것인지, 초코렛 버터를 바를 것인지, 반으로 자를 것인지, 그렇다면 세모나 네모 어떤 모양으로 자를 것인지… 이 모든 것을 저녁에 미리 정하지 않으면 다음날 아침은 더욱 전쟁과 같은 상황이 된다), 등등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무척 신경쓰이고 손이 많이 가는 일들이 많다.

이 모든 일들이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어서 생기는 일이다 🙂

아이들이 매사에 자기 주장을 하고 고집을 피울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은 나에게 다음 단계의 부모가 되기 연습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셔츠의 소맷단 접어올리는 방식 조차 아이가 원하는대로 해야지, 내 마음대로 했다가는 귓청을 울리는 싸이렌 소리를 듣게 되니, 장차 이 녀석들이 자라서 사춘기가 되었을 때, 대학을 갈 때, 애인을 사귈 때, 직장을 구할 때 등등의 상황에서 부모인 나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좌절하거나 화내지 말라고 미리 아이들이 내게 연습을 시키는 것이다.

지금은 아침 아홉시.

둘리양은 남편이 출근하면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코난군은 엄마가 등교시간에 맞추어 데려다주고나니, 교생실습 참관을 할 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남는다. 그 동안에 집에 들어갔다 나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고, 학교 연구실에 갔다 오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자동차 연료도 아깝다. 사실, 오늘 참관은 무척 하기 싫었던 또다른 이유가 있는데, 이렇게 참관을 하고나서 늦은 시간에 학교로 가면 주차장에 빈자리가 없어서 캠퍼스를 빙빙 돌아야 하고, 결국에는 머나먼 곳에 주차를 하고 연구실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오늘 기온이 화씨 20도이다 (섭씨로는 영하 6.7도). 하지만, 자신이 계획한 무척 재미난 활동을 닥터박이 꼭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교생의 부탁을 어찌 날씨 따위의 이유로 거절하겠는가. 할 수 없이 오늘 아침에는 내복부터 모자 장갑에 부츠까지 꽁꽁 동여매고 나왔다.

커피샵에서 오랜만에 블로그에 일상 이야기를 적게 된 연유이다.

이제 교생실습 참관 갔다가, 출근해서 강의하고, 문제 학생 상담하고, 부랴부랴 퇴근하고…

그렇게 또 정신없는 일상이 닥쳐오겠지.

2014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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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공원

연구실로 출근해서 첨언한다.

블로그에 글도 좀 한적한 시간이 넉넉하게 있어야 좀 더 가다듬은 생각을 차분히 쓸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니 글에 두서가 없고, 빠뜨리고 건너뛰는 내용도 많기 때문이다.

위의 아침과 저녁의 일상의 잡다한 모든 일은 나혼자가 아니라 남편과 나누어서 함께 하는 업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모두 정신없이 해내야 하고, 그 모든 일을 마치고나면 머릿속이 멍~해질 정도로 피곤하다 🙂

아이들 아침을 차려주고 저녁에 씻기고 하는 일은 남편이 주로 하고, 나는 도시락과 아이들 의복을 주로 담당하지만, 정신없이 바쁠 때는 너나 구분없이 손발을 맞추어 일을 한다.

이렇게 정신없이, 하지만 열심히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에 우리 가족의 결속력은 나날이 강해지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