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람들은 입맛이 겸손한 탓도 있고, 피크닉이나 파티에서 음식 자체의 맛을 즐기는 것보다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더 중시하는 문화가 있어서, 미국인 손님을 초대하면 음식 장만에 대한 부담이 별로 없다.
예를 들면 몇 년 전에 우리집에서 피크닉을 했을 때, 남편이 한거라곤 냉동 패티와 소세지를 구운 것일 뿐인데, 캐롤 선생님이 "그 때 그 맛있었던 햄버거를 올해에 또 먹을 수 있겠구나" 하며 학생들 앞에서 남편의 바베큐 솜씨를 칭찬해주셨다.
물론, 고기가 타지 않고 잘 익도록 불 조절을 하고 적절한 시기에 뒤집어 주는 것도 솜씨라고 본다면 지당한 칭찬이긴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흔히 "음식 솜씨가 좋다" 라고 칭찬할 때에는 대장금 정도 되는 손맛을 기대하는 것과는 사뭇 차이가 크다.
우리 유아교육 전공 학생과 교수를 모두 합치면 백 명은 족히 넘는 인원이지만, 경험상 그 중에서 피크닉에 참석하는 사람은 대략 20-30명 선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에는 우리집 뒷마당이 궁금했던 학생들이 많았고, 또 싱글인 다른 교수의 집과 달리 우리집에서 하는 피크닉에는 가족이나 남자친구를 데려온 학생들이 많아서, 모두 합해 30명이 넘는인원이 다녀간 것 같다. (먹고 노느라 인원수를 세어서 확인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먹을 음식이지만, 미국식으로 준비하니 한 손으로 해도 충분할 만큼 일이 없었다.
햄버거와 핫도그 (한국식 핫도그는 미국에서는 콘도그 라고 부르고, 핫도그는 기다란 빵 사이에 기다란 소세지를 끼운 것을 말한다)가 메인 음식이었다.
햄버거에 넣을 재료를 따로 준비해두고, 먹을 사람이 직접 재료를 골라서 넣게 했다.
양상추는 씻어서 햄버거에 넣기 좋은 크기로 찢어담고, 양파는 색깔 좋은 적양파를 얇게 썰어서 상추와 함께 담았다.
토마토도 얇게 썰어서 담아두었다.
치즈는 네 가지 종류를 준비했는데, 한 장씩 뜯어서 넣기 편하라고 기름종이를 슬라이스 사이사이마다 끼워두었다. 이렇게 하면 손에 묻히지 않고, 한 장씩 편리하게 뜯어서 햄버거에 넣을 수 있다.
그리고 패티와 소세지는 마트에서 파는 걸 사다가 그릴에 굽기만 했다.
핫도그에 넣을 재료는 소세지와 렐리쉬와 겨자가 전부이다. 마요네즈와 케첩은 햄버거에 원하는 만큼 넣어서 먹도록 이렇게 각종 양념을 준비해두면 40인분 피크닉 음식 준비가 끝난다.
각자 먹고 싶은 것으로 만들어 먹으면 되니, 불조절 잘 해서 소세지와 패티만 잘 구우면 음식 맛은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신선한 재료를 쓰고 갓 구운 고기를 넣어 만드니 햄버거가 맛있긴 참 맛있었다.
손님은 40여명이 왔다 갔지만, 내가 준비한 재료는 50인분 정도라 재료가 많이 남았다.
아직 굽지 않은 패티와 소세지는 냉동실에 두고 다음번 파티에 쓰기로 했다. (5월 중순에 두 아이들이 친구들을 불러서 또 대규모 파티를 할 예정이다)
그리고 구워서 남은 쏘세지는 남은 양파를 넣고 볶아서 소세지 야채볶음을 만들고…
구워서 남은 패티는 잘게 썬 파와 계란을 입혀서 후라이팬에 지져내니 동그랑땡과 흡사한 반찬이 되었다.
햄버거에 넣고 남은 야채는 샐러드를 만들어서 알뜰히 다 먹었다.
먹다 남은 음식이지만, 사람의 입에 닿은 포크나 젓가락이 닿지 않아서 이렇게 재활용해서 먹어도 위생상 아무런 문제가 없고 비위가 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국식 간소한 피크닉 음식이 마음에 든다.
2016년 5월 10일
맞아요.. 대장금 정도는 되어야 솜씨 있다는 말을 듣는거… 진짜 격하게 공감합니다. 초대한 사람도부담없고 초대한 사람도 부담없는 미국식 파티.. 참 합리적이고 민주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