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가이버 운동이 마침내 끝났다.
맥가이버의 스토리는 단순명쾌해서 운동하면서 가볍게 보기에 아주 좋았는데 그만한 드라마를 찾지 못하고, 일본 만화 명탐정 코난도 다 봤고, 요즘은 스타트렉을 보고 있다.
그런데 곧 새로운 맥가이버 드라마를 CBS 에서 방송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게슈탈트 심리학 이론의 영향인지, 애플티비의 여러 채널을 이리저리 돌아보다가 GIVER 라는 글자를 발견하고, 저게 혹시나 새로 시작하는 맥가이버가 아닌가 싶어서 띠용~~ 하고 살펴보았다.
내가 상상했던 건, 위에 조그만 글자로 “맥” 그리고 그 아래에 “가이버” 라고 써있는 것이었는데, 철자가 달랐다.
위에는 “더”, 그리고 아래에 큰 글씨는 “기버” 였다.
기버??
도대체 그게 무슨뜻이지? 히고 궁금해하는 나에게 남편이 한 번 봐보라고 권했다.
먼 미래에 있음직한 세상에서 일어나는 공상과학 영화인데, 단순히 과학적 공상으로 흥미를 더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심도깊은 철학이 담겨있는 영화였다.
원래는 1993년에 출판된 원작 소설이 있고, 그 독창적인 세계관과 미래의 모습은 다른 영화에서 이미 여러 번 차용된 적이 있어서, 정작 그 소설이 2014년에 영화로 만들어 졌을 때는 식상하다는평을 들었다고 하니, 감독은 참 억울했겠다.
나는 전작 소설의 존재조차 모르는 상태로 영화를 봐서 그런지 식상하다거나 실망할 이유가 없었다.
대략의 줄거리는, 흑백으로만 보이는 미래 세상에는 싸움도 없고 고통도 없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색깔을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도 없고, 그래서 모두가 평등하다.
각 사람들의 능력과 타고난 성향에 따라 직업도 정해주기 때문에, 입시경쟁 같은 것도 없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통행금지가 전면적으로 시행되고 있고, 따라서 범죄도 없다.
주부인 나에게 근사했던 것은, 식탁으로 건강식을 듬뿍 담은 벤또(처럼 생긴 트레이)가 끼니마다 배달이 되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 혹은 등교할 때 현관문에 달린 주사기로 약물을 맞아서 감정이 통제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고 화를 낼 일도 없다.
영화 도입부에서 정말로 이런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일에 쫓기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고, 그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없어 공연히 아이들에게 짜증을내거나, 가족에게 더 잘 대해주지 못하는 내 생활이 떠올라서 말이다.
그런데, 그게 과연 행복한 삶인가? 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이 영화의 메세지였다.
더 기버 라고 불리우는 기억 전달자는 수많은 커뮤니티 구성원 중에 단 한 명만 선발되는데, 이 사람에게는 거짓말을 해도 되는 특권을 주는 대신에, 자신이 알게된 것을 다른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된다는 규칙이 있다.
주인공인 조나스가 선배 기억전달자로부터 전수받은 것은 다름아닌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완벽한 날씨 통제 하에서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서 눈이 내리지 않는 세상을 만들었기에, 주인공은 눈썰매를 타는 스릴감과 피부에 닿는 차가운 눈송이의 느낌을 전수받아서 난생처음 느끼게 된다.
음악 소리의 아름다움도 배우고, 살육이나 전쟁의 참혹함과 고통도 알게 된다.
인위적으로 배정된 사람들과 가족이 되어 살다가, 기억전달자로부터 가족간의 사랑, 그 사랑을 상실했을 때 겪어야 하는 고통도 배운다.
그러면서 주인공의 시야는 흑백이 아닌 총천연색이 되어간다.
전 인류의 복지를 위해 언젠가는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당장의 평화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불필요한 그 모든 느낌과 감정을 단 한 명 기억전달자에게만 보유하고 있도록 하는 제도였는데, 주인공은그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의 감정을 되돌려 주려고 “자격미달”이라 곧 죽게될 아기 한 명을 데리고 탈출을 감행한다.
그의 탈출을 도왔던 친구는 커뮤니티의 안전과 복지에 위해가 되므로 안락사를 당할 위기에 처한다.
죄우지간…
영화의 미장센이라든지 기법이라든지 뭐 그런 건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서 할 말이 따로 없고…
흑백으로 밋밋하고 무미건조하게 아무런 갈등과 고통없이 사는 세상보다는, 때로는 화를 내고 울기도 하고 소리소리 지르기도 하며, 나와는 안맞는 사람들과 갈등하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하거나 실망도 하면서 그렇게 지지고 볶으며 사는 세상이 살아가는 의미가 더 있다고 생각하게 해주었다.
피부에 와닿는 바람의 느낌과 차디찬 눈송이, 무더운 여름과 혹독하게 추운 겨울의 날씨…
내 아이의 땀냄새, 귓속말의 간지러운 느낌…
아기의 울음소리, 피아노 소리, 파도 소리…
그런 사소한 느낌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2016년 6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