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장자를 떠올리는 우주과학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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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닐 타이슨이 해설하는 개정된 티비 프로그램 [코스모스]를 본 적이 있다.

오리지널 교양과학 티비 프로그램 [코스모스]는 1970년대에 제작되었는데 저자인 칼 세이건이 직접 출연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뒤 무신론자인 칼 세이건은 우주로 돌아갔고, 그로부터 영감을 얻어 과학자가 된 닐 타이슨이 출연해서 새로이 제작한 것을 내가 본 것이다.

당연하게도 원작인 책에 관심이 가서 영어로 쓰인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티비를 보고난 직후인 몇 년 전이었다.

칼 세이건의 언어를 직접 느낄 수 있고 화려한 칼라 인쇄로 여러 가지 흥미로운 과학-특히 천문학-관련 사진을 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수 백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다, 내게는 생소한 자연과학 용어를 영어로 읽으려니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들어서 몇 챕터를 읽다가 그만 두고 말았다.

그리고 올 여름, 한글로 된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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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 박사가 감수하고 서광운이 번역했다는 이 책은 1981년에 한국에서 초판 발행된 것인데, 당시 우리 나라 출판계의 상황을 보여주는 듯, 출판사가 제각각이다.

위의 사진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것인데 보다시피 주우 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고, 내가 읽은 것은 이것과 똑같이 생긴 표지이지만 아랫쪽에 문화서적 이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국내 작가도 아닌, 외국의 작가가 쓴 책이니 – 저작권료나 제대로 지불했을까 의심스럽게도 – 그럴싸한 감수자와 번역자의 이름을 붙여놓고 여기저기 출판사에서 발행해서 판매했던가보다.

부끄러운 출판계의 당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든지간에, 이 책 덕분에 몇 달을 붙들고 있다가 포기했던 책을 며칠만에 다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지구가, 태양계가, 우리 은하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다른 항성과 행성에는 이른바 "외계인"이 살고 있을지,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와 통신할 수 있을지… 등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대학교 1학년때 수강했던 고전문학의 이해 과목이 떠올랐다.

벽에 붙은 선풍기 바람으로 이 백명은 족히 되었던 학생들이 땀을 말리며 수업을 들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아마도 2학기 수업이었던 것 같다.

계단식 강의실 뒷 편에 앉은 학생들까지 잘 들을 수 있도록 마이크를 들고 강의하시던 여교수님의 이름과 얼굴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리고 다른 수업 내용도 다 잊어버렸지만, 장자의 제 1장을 가장 첫 시간부터 몇 주간 배웠던 것은 뚜렷이 기억한다.

너무나 더웠던 날씨와, 너무 많은 학생들, 손부채를 부치며 마이크에 대고 말씀하시느라 떨리듯 들렸던 교수님의 목소리, 옆자리에서 졸던 친구, 지정 좌석에 앉아 있는 학생들의 출석을 점검하느라돌아다니던 조교언니…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몇 주간 배웠던 사실은, "장자는 뻥쟁이, 어마어마한 뻥쟁이!" 라는 것이다.

무슨 새가 있는데 (곤이 변해서 붕이 되었다고 함) 날개 한 쪽이 몇 천리라나 뭐라나…

그렇게 큰 새가 하늘을 날아서 바다로 갔다나 어쩐다나…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전혀 모르겠고, 물고기와 새가 얼마나 큰지를 묘사하는데 왜 그렇게 심한 뻥을 쳤는지 궁금하기만 했는데, 교수님의 해석은, 인간의 상상력을 훌쩍 신장시켰다는 것… 이만큼 큰 생각을 하다보면 인간사의 사소한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길 수 있다는 것…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듣고보니 그럴법하게 여겨졌다.

칼 세이건이 설명하는 우주의 모습은 "과학적"이라는 점에서 장자의 엄청난 상상력에서 나온 글에비하면 내게 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와야 하는 내용이었으나, 그 장대한 시간과 드넓은 공간에 대한 묘사는 도무지 현실적이지 못했다.

그러고보니 불교 재단의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겁" 이라는 시간 단위에 대해서 배운 것도 기억이 난다.

비단 치마가 바람에 흔들려 바위에 스치는데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한 겁 이라나 뭐라나…

(그러고보면 부처님도 상당한 뻥쟁이다 🙂

수소인지 헬륨인지 철인지 좌우지간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분자인지 원자인지 중성자인지가 우연히 뭉쳐서 그 인력으로 다른 원자인지 분자인지를 끌어들이고, 그렇게 해서 점점 커진 것이 지구라나… 태양이라나… 은하계라나…

책을 방금 다 읽고났는데도 이렇게 정확하지 못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뼛속까지 문과체질인 내가 원망스럽고, 아마도 이 독후감을 읽을 뼛속까지 이과체질인 남편은 틀림없이 "은하계는 빅뱅으로 인해 생겨났고, 분자는 원자가 결합해서 생성되는 거야…" 하는 등의 설명을 해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원자, 분자, 중성자, 양성자… 이런 것들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들이며…

태양계, 은하, 성단, 초신성, 백색왜성… 이런 것들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것이자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

이것이 내 지성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다.

그래도 도무지 이해하거나 짐작할 수 없을 듯한 내용을 읽은 것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의 그 모든 것이 우주에서 왔고 우주로 돌아갈거라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갈 것.

지금 이 순간이 괴롭거나 힘들어도 이 지구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시간, 저 하늘의 태양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에 비하면 금새 지나가버리는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

행성과 항성의 차이를 아는 것.

우주탐사는 사대강 사업보다 훨씬 더 인류에게 힘이 되는 일이라는 것.

이 정도만 배워도 충분히 유익한 독서였다고 생각한다.

 

 

2017년 7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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