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그레이: 그야말로 모호한 경계, 되는 것과 안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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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오랜만에 쓰는 코드 그레이 시리즈 글이다.

그 동안의 일을 업데이트 하자면, 코난군의 학교에서는 표면적으로는 모든 일이 마무리된 것처럼 보인다.

교사와 교장은 아이들을 잘 타일렀고 학부모들에게도 학교의 규칙을 잘 설명했다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나누어준 컴퓨터로 연동된 구글 어카운트를 이용해서는 더이상 소설을 쓸 수 없지만 여전히 수업을 잘 받고 학교의 모든 다른 일에 열심히 그리고 착실하게 참여하며 학교 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모들은, 이젠 지쳐서 손을 떼겠다고 한 부모도 있고, 코난 아범과 타미의 아빠 둘은 아직도 교육구의 부장학사와 이메일로 토론을 하고 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이렇게 몇 달이 지나면 모두에게 잊혀질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약 2주 전에 코난군의 리딩 수업 과제로 받아온 책이 코드 그레이의 다음 글을 쓰도록 나를 불러 일으켰다.

[우리 형 샘이 죽었다] (My brother Sam is dead) 라는 제목의 소설책인데 미국의 독립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리딩 수업은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그룹을 지어서 각기 수준에 맞는 책을 읽도록 하고 그 내용으로 시험을 보게 한다.

가장 높은 레벨의 코난군 그룹이 최근에 읽은 이 책은 원래는 중학생 정도의 연령을 독자로 삼고 있는 책이다.

부모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립전쟁에 참여한 군인의 이야기를 동생의 입을 빌어 풀어내는 이야기 중간 중간에는 참혹한 전쟁의 장면을 매우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칼로 사람을 아래 위절반으로 베어내니 뱃속의 내장이 쏟아져 흘러내렸다든가… 머리통이 터져서 뇌가 튀어나왔다던지… 어른이 읽기에도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이 책을 처음 읽던 날 코난군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부모에게 자신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를말해주었다.

그 날 밤에는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설치기도 했다.

 

코난 아범과 나도 잔인한 묘사가 있는 장면을 읽어보았는데, 잔혹함에 몸서리를 치기도 했지만, 동시에 학교측의 너무나 애매한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것에 관한 기준에 코웃음이 나기도 했다.

5학년 아이들이 쓴 소설 속에서 히틀러의 후손이 나치군을 부활시켜 폭탄을 투하하고 총을 쏘며 전쟁을 하는 장면은 너무나 폭력적이고 부적절한 내용이므로 학교내에서는 물론이고 학교 소유의컴퓨터나 구글 어카운트를 사용해서 쓸 수 없다고 쐐기를 박아놓고, 그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은지금 이런 끔찍한 소설을 읽으라고 하고 그 내용에 관해 시험을 보게 할 수가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라더니, 이게 바로 그 경우이다.

거의 2주간 이 소설을 읽고 공부하는 동안 코난군은 하루 걸러 한 번 꼴로 밤마다 자신의 배가 갈리거나 두뇌가 터져버리는 악몽을 꾸다가 깨서 울곤 했다.

잠을 푹 못자서 그랬는지 아니면 반대로 몸이 안좋아서 악몽에 시달렸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주 내내 심한 두통에 시달려서 조퇴를 하거나 결석을 하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책의 내용에 대하여 코난아범과 타미네 아빠는 다시 부장학사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부교육감 당신은 책의 내용에 대해서 알고 있냐? 그리고 당신의 룰이 애들의 소설과 책 속의 묘사와 비교할 때 어떻게 적용되느냐고 물었더니, 며칠이 흐른 후에 답장이 왔다. 사실 첫째 질문 (교육청이 알고 있느냐, 몰랐었냐) 에 대한 답변이 자못 궁금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답변을 하기가 약간은 딜레마일게다. 알고 있었다면, 그들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고, 몰랐다면 관리 소홀의 화살이 돌아갈테고..  그렇다면 현재로서의 그녀(부교육감)의 해법은????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라 다를까, 질문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고 이메일로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없으니 만나자는 것이다.  

 

부장학사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동시에, 선거로 선출돤 교육위원에게도 보냈는데 답장은 부장학사의 메일과 거의 동일했다. (사실 별로 기대를 안했다. 이 교육위원의 프로필에 어이없게도 토마스 제퍼슨 고등학교, 버지니아 공대가 나온다. 대학은 그렇지만, 토마스 제퍼슨 고등학교는 대다수의 미국 사람들은 모르지만, 극소수의 계층만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또 아이비리그에 아이들을 입학시키기를 위하는 극렬 한국 학부모들이 잘 아는 그런 학교다. 페어 팩스 근처의 공립이지만 시험을 쳐서 들어가고, 주변의 집값이 장난이 아니여서 아무나 집을 사서 살 수 없는 학군에 위치한 작년에서 가장 좋은 고등학교로 뽑힌 그런 학교다. 그래서 그에겐 아주 자랑스러웠을 지도. 메일도 약간은 훈계쪼이다.) (직업이 교육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 교육위원 에게는 책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 하지 않아서, (부장학사가 덮고 싶어할지도 모르니) 책의 내용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메일을 답장 속에 포함시켜 보낼 것이다. 또 코난군의 학교에서는 아직은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부교육감이 교장에게 물어보거나 이야기 하지 않는 것 같아서, 다음 주에 교장에게도 책의 서술 내용을 알고 있는지 물어볼 예정이다. 교장이 내용을 알고 있다면, 비폭력을 주장하는 학교의 방침과 이 책의 너무도 생생한 살인 장면이 담긴 책을 학생들이 읽고 시험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양립하는지도 물어볼 예정이다. 그리고, 부교육감에겐 이미 물어봤는데 대답을 못들었다는 것을 덧붙이며…

 

 

참고로, 부장학사를 이메일로 계속해서 찌르는 일은 남편과 타미 아빠가 자원봉사 차원에서 하고 있는 일이라서, 나는 그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고 있다.

우리가 돈만 많았다면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해서 학교와 교육구를 상대로 제대로 싸움을 했겠지만, 우리는 빌 게이츠 만큼 부자가 아니므로, 우리 형편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싸우기로 했고, 그 방법이란 학교에서 이런 부당한 일이 발견될 때마다 이메일을 보내서 우리측에서 보기에 옳고그름을 나열한 다음, 설명이나 반박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돈이 없지 시간이 없냐, 이런 뜻이다 🙂

이 싸움의 목적은 지금 당장 학교측에서 코난군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한다거나 교육구에서 즉각적으로 규칙을 개정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즉,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학교가 제한할 수 있다는 모호한 문구로 자기들 마음대로 제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표현을 할 수 없는 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규칙으로 바꿔서, 애매한 해석으로 학생들의 자유를 박탈할 수 없도록. 

비록 우리 아이는 집필금지 처분을 받은 부당함을 서서히 잊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겠지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간섭하다보면 교사나 교장이 다음번에 다른 아이들에게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에는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하고 조금 더 공정한 결론을 내리려고 노력할 거라는 희망을 가질 뿐이다. 

교육구에서도 이런 식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가다보면 – 그 동안 테크놀러지는 더욱 더 발전할 것이고 – 현재 컴퓨터 사용이나 온라인 자료 활용에 대한 규정을 조금씩 개정해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학과 영어교육 담당 교수들은 코난군의 소설을 놓고 이것이야말로 21세기 영어교육과 영재교육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라며 입을 모아 칭송을 하고 있다.

학교측의 부당한 결정에 나만큼 속상해하고 안타까워하며, 코난군에게 그래도 글쓰기를 멈추지 말라는 격려를 보내고 있기도 하다.

나는 우리 학교 영문학과에서 개설한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 지도법 이라는 과목을 이번 학기에 수강하기로 했다.

교직원은 매 학기마다 공짜로 수업을 한 과목씩 들을 수 있는 복지 정책이 있는데, 아들 덕분에 그 혜택을 활용하게 된 것이다.

코난군은 다행히 이런 일이 있어도 여전히 학교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잘 지내고 있다.

선생님 중에는 자기와 사뭇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배웠고,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일관성 없는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는 것을 배우기도 했다.

또한, 코난군네 학교 교장 선생님은 복도에서 코난군이나 나와 마주치면 평균 이상으로 친한 척 하는 대응을 하고 있다 – 만날 때 마다 허그를 한다든지, 저 멀리 있어도 큰 소리로 이름을 불러 하이~ 한다든지 🙂

속마음이야 내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앞으로 코난군이 억울하게 부당한 꾸지람을 들을 것 같지는않으니 그것도 다행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학교나 교육청에서 하는 방식은 대충 아래와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 일단 빨리 수습을 한다. 그리고 통보를 한다.

2.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면, 그것을 방어할 내규나 가이드라인을 찾는다. 

3. 해석에 문제가 있어서 이의를 제기하면, 다시 가장 그럴 듯한 것을 찾아낸다.

4. 그 다음부터는 아랑곳하지 않고 규칙이 그렇다고 반복한다.

5. 불리한 증거가 나오면, 대답을 않고 그제야 만나자고 한다. 

 

이 과정을 이미 아이들을 대학교에 보낸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동의한다. 그들이 동의한다는 사실은 몇 년에도 그랬고, 그동안의 발전이 없었다는 것 아닐까? 그럴만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찮아 하거나, 혹은 그래봤자 소용이 없다는 생각에 계란 하나도 던지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 바위는 깨끗하고 공고히 남아 있다. 

 

종합해보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보다 일어난 것이 여러 모로 모두에게 경각심을 주거나, 깨달음을 주는 등의 이득이 있다.

남편과 타미 아빠의 집요한 장기전을 응원한다.

 

 

2019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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