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게시판에서 꾸준히 발견되는 글 주제 하나가 바로, 아이들의 공부를 잘 하고 못하는 것은 엄마의 지능을 유전으로 물려 받은 영향이라는 것이다.
가정에서 자녀와 소통하는 주요 역할을 맡은 양육자가 엄마이다보니 – 특히 아이가 어릴수록 더욱더 엄마가 자녀와 상호작용하는 빈도수가 높다 – 엄마의 지능이나 교육 수준에 따라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대학원 다닐 때부터 익히 배웠고 관련 연구 논문도 많이 읽은 경험이 있다.
이런 연구 논문을 읽을 때는, 과도하게 일반화를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고 연구 과정에서 어떠한 변인이 통제되고 어떤 변인이 관찰 측정되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예를 들면 비교적 최근에 게재된 논문 중에서 저체중아로 태어난 아이들이 엄마의 지능이 높을수록 생후 5년 동안에 정상아의 발달 상태로 회복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는 연구가 있었다.
얼핏 보면 이 연구의 결과가 한국 인터넷에서 상식처럼 통용되는 [엄마 지능이 곧 아이의 지능이다] 라는 말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연구는 보통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저체중아 (혹은 미숙아 라고도 불림)를 대상으로 한 연구이고, 그 아이들이 얼마나 똑똑한가를 살핀 것이 아니라, 타고난 신체적 불리함 (부족한 면역력이나 오감기관의 발달, 신체 장기의 크기 등) 을 정상으로 태어난 아이들 수준으로 따라잡느냐 하는 것을 관찰한 것이다.
또한, 연구 대상은 미국의 어느 주에서 태어난 아기들이므로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이들에게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엄마의 지능이 높았다는 것도, 보통의 사람들보다 머리가 좋았다는 뜻이 아니라, 연구 대상 아이 엄마들의 지능을 올림차순으로 나열해놓고 보니, 비슷한 방향으로 미숙아 아이들이 제한적 건강 상태를 벗어나는 속도의 증가가 있었다는 말이다.
이것만으로 엄마의 지능이 직접적으로 미숙아의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미처 고려되지 않은 다른 변인을 더해서 분석해야 하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기 위해 논문 데이타 베이스를 검색해보니, 비슷한 다른 연구 논문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엄마 지능, 자녀 지능, 유전, 학업성취도, 등등 생각나는 키워드를 모두 입력하고 검색해봐도 엄마의 지능이 자녀에게 유전된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논문은 없었다.
관련 분야를 전공했고, 미국 학자들이 이용하는 방대한 데이타 베이스를 검색해봐도 관련 자료를 찾기 쉽지 않은데 반해서, 82쿡 자유게시판에 가끔씩 올라오는 "엄마가 머리가 나빠서 미안해!" 하는 글과 그에 달린 댓글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은 순전히 엄마의 책임이라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 중에는 제법 생물학이나 유전학적 사실을 접목해서, 지능을 관장하는 유전자는 x 성염색체에 들어 있기 때문에, x와 y 염색체를 전달하는 아빠가 아니라, 두 개의 x 염색체를 전달하는 엄마에게 책임이 있다는 설명도 자주 볼 수 있다.
미국 학술 논문에서 관련 증거를 찾기에 실패하고, 이번에는 구글에서 한글로 엄마 지능, 아이 지능, 유전, 등의 키워드를 넣고 검색하니 신문기사 몇 개가 상위에 올라왔고, 그 아래에는 학습지 회사의 판촉물이나 아이들 대상으로 무언가 비지니스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블로그가 떴다.
판촉물이나 상업적 게시물은 어차피 신문 기사를 인용한 것이 대부분이므로 신문 기사를 자세히 읽어 보았다.
중앙일보, 세계일보, 두 신문의 기사를 자세히 읽으면서 코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아래는 중앙일보의 기사 전문이다.
"전문가의 주장에 따르면" 이라고 기사의 첫머리를 시작했지만, 그 전문가가 누구인지, 그 주장이 어떤 것인지는 제대로 소개하지 못하고 있다.
그 전문가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것처럼 보이는 문단은 주어와 술어가 명확하지 않은, 신문 기사로 자질이 부족한 글로 채워져 있는데,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하며 해독해보면 그 내용도 전혀 과학적이지 않고 황당무계하다.
"다른 유전자에 의해 영향을 받은 유전자는 어머니쪽 유전자에 대해서만 반응한다는 점이다. 만약같은 유전자가 아버지쪽에서 영향을 주려고 하더라도, 이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어떤 유전자가 다른 어떤 유전자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인지, 그 영향에 대해 반응을 하는지안하는지를 어떻게 밝혀낸 것인지 아무리 읽어봐도 모르겠으니 이 문장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머니의 유전자는 대뇌피질로 영향을 주고, 아버지의 유전자는 대뇌의 변연계로 가기 때문이다"
ㅎㅎㅎ
유전자라는 것은 우리 인체 세포 안에, 핵 안에, 크로모좀 이라는 부분 안에, 염기서열이라는 나선형 물질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대뇌피질의 세포나 대뇌변연계의 세포, 머리카락의 세포, 위점막의 세포, 소변이나 혈액으로부터 체취되는 세포가 모두 핵을 가지고 있고, 핵 안에는 염색체가 있고, 그 안에는 유전자가 있다.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서 생성된 수정란 안에도 핵이 있고 염색체가 있고 유전자가 있는데, 그 유전자가 어떤 신분 확인을 거쳐 아빠로부터, 엄마로부터 온 것인지를 분류해내고 신체 장기 어떤 부분으로 보낼지 말지를 결정한다는 말인가!
내가 보기에 기사의 첫 두 세 단락은 과학적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척 하면서 공연히 어려운 말을 나열해서 독자에게 그럴싸하게 보이게 하려는 위장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아래에 "전문가"가 했던 연구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1984년 (내가 "국민학교" 졸업하던 해이다. 참고로 이 기사는 2016년에 작성되었다.) 캠브리지 대학에서 한 실험은 사람이 아니라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다.
쥐에게 어떠한 조작을 해서 아빠나 엄마 한 쪽의 유전자만 가지도록 만들었는데 대부분이 생존하지 못했고, 연구자들이 "해결책"을 찾아내서 생존하도록 만들었더니 엄마쪽 유전자를 많이 갖고 태어난 쥐는 보통보다 머리와 뇌는 크고 몸은 작은 크기로 이른바 기형적인 신체상태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도대체 이게 엄마의 지능과 자녀의 지능의 연관성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없다.
머리와 뇌가 정상적인 크기보다 더 크면 지능이 높다는 뜻인가?
기자가 다행히도 또다른 연구결과를 소개하고 있으니, 계속해서 열심히 읽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비교적 최근인 1994년의 연구이다.
내가 대학 4학년이던 시절이니 불과 25년 밖에 안된 연구이다 🙂
영국의 14-22세 쳥년 12,686명을 조사했더니 그들의 지능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가 어머니의 아이큐였다고 한다.
조사는 청년을 대상으로 했는데, 그들의 어머니의 지능은 누가 어떻게 측정했을까?
아버지의 지능은 왜 조사하지 않았을까?
과연 그 연구 논문에서 정말로 어머니의 지능이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소 이름과 연구 연도, 키워드를 입력하고 검색했지만 논문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아쉽게도 이 연구에 관한 소개는 이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뒤를 이어 병주고 약주는 식으로, 오직 어머니의 유전자만이 아이의 지능을 결정짓지는 않는다고 썼다.
기사의 첫머리 부분을 완전히 뒤집는 내용이다.
그리고 기사 막바지에는 그 말이 다시 한 번 더 번복된다.
"유전적인 영향이 없다고 아버지가 포기할 필요는 없다" 라고 한다… 헐…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큐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아이의 지능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이건 또 무슨 말이래.
아이가 태어났을 때라고 하면 신생아기인데, 신생아의 아이큐를 측정하는 의사나 연구자는 드물다.
출생시의 아이큐가 중요하다면 왜 소아과 의사나 아동심리학자, 유아교육학자들은 아이큐 검사를안하는 것인지, 그것이 알고 싶다.
아이큐가 지능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라는 말은 아이큐가 인텔리전스 쿼오션트의 약자임을 부정하거나, 웩슬러 지능검사 점수는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심리학계의 상식을 과도하게 축약해서 쓴 것일게다.
세계일보 기사를 읽어보기로 했다.
중앙일보 기사는 2016년 9월 19일에 나왔는데, 세계일보는 그보다 며칠 뒤인 2016년 10월 9일자기사이다.
기사 첫머리의 글래스고 의학연구위원회의 연구 결과는 아마도 중앙일보에서 단 두 문장으로 소개했던 그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첫 문장에서부터 벌써 시점과 주체가 부정확하고 개제된 매체조차 불분명하다.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 글래스고 의학연구위원회, 미국 국립과학원회보, 논문분석, 자체 실험, 그래서 결국은 과학전문 "블로그" 사이콜로지 스폿에 발표했단다.
암튼 기사 첫머리에 영국 현지 시각 (10월) 8일자 인디펜던트 신문에 이 기사가 나왔다고 해서 인디펜던트 신문사 웹페이지를 검색했다.
https://www.independent.co.uk/archive/2016-10-8
거의 100개쯤 되는 기사 목록 중에서 글래스고 의학연구위원회나 사이콜로지 스폿에 관한 기사는없다.
굳이 10월 7일이나 9일의 기사 목록을 검색해볼 가치가 느껴지지 않아서 인디펜던트 웹페이지 검색은 여기서 멈추었다.
이번에는 과학전문 "블로그" 인 사이콜로지 스폿을 검색해보았다.
아무리 과학전문이라고는 하나, 블로그 라는 것은 나도 하나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문서 저장고가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블로그는 웹 로그, 즉 인터넷에 기록하는 일지 라는 말이다.
웹의 비읍과 일지라는 뜻의 로그를 결합해서 만든 신조어이다.
암튼, 사이콜로지 스폿 에 가보았지만, 1994년의 글래스고 연구 결과 및 다른 주요과학 저널에 실렸다는 논문을 분석한 글은 거기에 없었다.
블로그 주인장은 자신을 심리학자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그녀의 학력이나 최종학위 같은 것은 블로그에서도, 그녀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https://psychology-spot.com/about-jennifer-delgado/
기사의 나머지 부분은 20일 먼저 쓰인 중앙일보의 기사와 똑같은 내용이다.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무척 모호하고 신문기사로서의 형식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도 똑같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확인했지만, 인디펜던트 신문에 10월 8일자 기사 목록 어디에도 이런 내용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02-2006 세계 80개국의 아이큐 평균 점수가 무에 그리 신기해서 2016년 신문에 기사를 쓰겠는가.
아이큐 테스트 문항의 문화적 중립성 같은 문제에 대해 쓰면서 위의 국가 평균 아이큐 순위에 대해 반박하자니,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기사 분석은 여기에서 마치려고 한다.
기자들이 이런 엉터리 기사를 쓰고, 편집 데스크에서는 이런 기사를 지면에 싣는 이유가 무엇일까?
금전적 이득이든, 정치적 이득이든, 어쨌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직업윤리를 위배하면서까지 꼭 얻어내야만 하는 이익이었겠지.
그렇지만, 번듯한 신문사에서 기자의 이름을 박아놓고 올린 정식 기사를 읽은 아이키우는 아줌마들은, 내가 머리가 나빴으니 우리 아이들은 나를 닮아 머리 나쁜 약점을 보충해주기 위해서 학원에등록하고 학습지를 신청하고 있을 것이다.
공부를 잘 했던 엄마들은 자녀가 공부를 못하면 나를 닮은 너희들이 공부를 못할 리가 없어! 라고 생각하면서 학원에 보내고 학습지를 강요할 것이다.
그러다가 사교육비로 주머니가 털리고, 아이들이 받아온 성적표에 멘탈이 털리는 때가 오면 82쿡 자유게시판에 익명으로 하소연 글을 쓰는 것이다.
2019년 3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