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 커네버럴을 모항으로 삼고 있는 디즈니 판타지 호는 언제나 여기에서 출발하고 동쪽이나 서쪽의 경로로 카리브해를 다녀온다.
다른 크루즈사의 배도 여기에서 입출항을 하지만, 디즈니 크루즈사의 배는 따로 지정된 터미널이 있고, 그 안에서부터 벌써 디즈니 분위기를 내며 장식이 되어 있었다.
온라인 첵크인 수속을 이미 마쳐두었기 때문에 항구 터미널에서의 수속 절차는 무척 간단했다.
여권을 보여주고, 몇 가지 서류에 싸인을 하고, 신분증에 들어갈 사진을 찍는 것이 전부였다.
큰 가방은 터미널에서 미리 부쳐두어서 곧 객실까지 배달이 될 것이고, 우리는 승선을 하라는 안내방송을 기다리고 있었다.
11시 30분이 조금 넘었을 무렵 승선을 했다.
아직 객실은 준비가 덜 되었고 – 먼젓번 항해에서 승객들이 내리고 청소를 한다 – 큰 짐가방도 아직 배달이 되고 있는 중이라서, 점심 식사를 하고 배 안을 돌아보기로 했다.
항구의 실시간 카메라를 장기간 살펴본 바, 매주 토요일에는 우리가 타는 디즈니 판타지와 카니발 크루즈사의 배 두 척, 놀웨이젼 크루즈사의 배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카니발 크루즈사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배를 소유한 거대한 회사인데,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할인 프로그램 등으로 지갑 사정이 얇은 20-30대 젊은층 고객을 유인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생들 중에도 카니발 크루즈를 타본 학생들이 제법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크루즈이다.
다만, 그러다보니 품질 관리는 다소 부족해서 – 혹은 주요 고객의 연령층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 객실이 초라하다거나,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즐길만한 활동이 충분하지 않다거나, 카지노와 성인 나이트클럽 혹은 사랑에 빠진 청춘남녀의 애정 장면 연출, 등등의 이유로 나에게는 전혀 끌리지 않는 크루즈이다.
이번에도 디즈니 크루즈의 뷔페 식당에는 게다리 요리가 잔뜩 차려져 있었다.
산악지방에 살아서 해산물을 원껏 먹기 힘든 남편은 아예 게다리로만 접시를 채워 담았다.
단단한 껍질을 까먹기 편하도록 미리 칼집을 내어서 쪘다.
나역시 오랜만에 해산물을 맛보려고 생선 튀김과 연어 스테이크를 담아와서 먹었다.
다양하고 예쁜 여러 가지 디저트 중에서 무얼 먹어야 할지 고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
이렇게 행복한 고민이라니!
커피와 티, 각종 탄산음료는 무제한으로 가져다 마실 수 있고, 다 먹은 빈 접시와 사용한 포크 나이프는 친절한 직원들이 수시로 치워주었다.
터미널에서 부치지 않고 일부러 들고탄 수영복을 꺼내 입고 객실이 준비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물놀이를 했다.
이 날 플로리다의 날씨는 다소 서늘해서 화씨 73도 섭씨 23도 정도였지만, 풀장의 물은 언제나 화씨 80도 (섭씨 27도)를 유지하고 있어서 물놀이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이번 크루즈에서는 둘리양이 많이 자라고 용감해져서 뒤에 보이는 바다 위를 지나가는 물미끄럼틀을 처음으로 타보았다.
예전에는 코난군과 코난아범만 타고 놀았었다.
객실에 짐이 도착해서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고 이번에는 키즈 클럽을 둘러 보았다.
이번에는 코난군이 윗 연령 키즈 클럽으로 등록했기 때문에 두 아이가 각기 다른 키즈 클럽에 가서 놀게 되었다.
만 3세에서 12세 까지 어린이들은 오셔니어스 클럽과 오셔니어스 랩 이라는 키즈 클럽에 가서 놀 수 있는데, 이 연령대 아이들이 가장 많아서 그런지 클럽도 두 개나 되고 공간이나 놀이 시설도 가장 크게 마련되어 있다.
코난군은 만 12세라서 아직 이 클럽에 남아있어도 되지만, 중학생이 되었다는 자부심에 그보다 윗연령인 만 11-14세 아이들이 가는 엣지 클럽에 등록하고 싶어했다.
그 위에는 만 14-17세 아이들이 가는 바이브 클럽이 있다.
둘리양이 가장 좋아했던 디즈니 캐릭터 따라 그리기 방에는 여러 가지 그림 도구가 준비되어 있고예쁘게 꾸며져 있기도 했다.
디즈니 영화를 보는 방도 있고,
디즈니 캐릭터가 나와서 쇼를 보여주거나 클럽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거나 하는 등의 활동을 위한 방도 있다.
예전에 타본 디즈니 드림호나 디즈니 원더호와 많이 다르지 않아서 아이들은 익숙하게 이곳저곳을 다니며 본격적인 크루즈가 시작되기 전에 배 안을 탐사했다.
다음으로 저녁 식사 시간이 되기 전까지 했던 일은 피쉬 익스텐더 선물 배달이었다.
우리 방 문에도 피쉬 익스텐더를 걸어놓고, 배 안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열 개의 객실을 다니면서 우리가 준비해간 선물을 배달했다.
다즈니 판타지호는 객실이 2층부터 10층까지 있고, 맨 앞에서 맨 뒤 객실까지 걸어가면 무려 300미터 가까이 되는 거리이다.
어떤 방은 우리처럼 일찌감치 피쉬 익스텐더를 걸어두어서 선물을 배달할 수 있었지만, 어떤 방은아직 짐을 다 풀지 못했는지 선물을 배달할 주머니가 걸려 있지 않아서 선물을 들고 되돌아 와야만 했다.
아이들과 함께 선물 배달을 하는 동안에 수 킬로미터는 걸었던 것 같다!
그래도 첫날에 배달을 다 하지 못하고 다음날까지 배 안을 열심히 걸어다녀야 했다 🙂
덕분에 운동이 되어서 저녁 식사를 잘 할 수 있었다.
커네버럴 항구에서부터 전속 사진사가 가족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사진을 미리 구입해두어서 거의 100달러 가까이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무제한으로 사진을 파일로 받아서 250달러를 지불했는데, 미리 지불하지 않았다면 350달러를 내야 했다.
이번에도 여행 첫날은 내가 만든 가족 셔츠를 입고 출발했다.
둘리양과 나는 미니 마우스 머리띠도 둘렀다.
항구 터미널에는 우리처럼 일가족이 단체 셔츠를 맞추어 입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크리컷 (자동 커팅기계) 의 보급 덕분인지 셔츠가 다양하고 완성도가 높아 보였다.
물론, 내 눈에는 우리 가족 셔츠가 제일 멋져 보였지만… ㅎㅎㅎ
나중에 배 안에서 어떤 가족이 입고 있던 셔츠를 보았는데, 내가 만든 디자인을 따라서 만든 것이 보였다.
나를 따라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디자인은 정말로 내가 고안해서 만든 것이지 어디선가 보고 가져온 아이디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셔츠를 처음 만들었을 때 페이스북 그룹에 자랑삼아 사진을 찍어 올렸는데, 그것을 보고 누군가가 따라 만든 것 같다.
내 디자인이 남이 따라 만들만큼 좋아보였다는 뜻이니, 기분이 좋았다 🙂
2020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