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두번째날 저녁 식사는 정장을 입고 참석하는 포멀 나잇 이었다.
전체 7일 중에 하루는 가장 잘 차려입는 포멀, 또 다른 하루는 약간 잘 차려입는 세미 포멀, 나머지 다섯 번은 편안하게 아무렇게나 입어도 되는 크루즈 캐주얼의 드레스 코드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드레스 코드는 어디까지나 제안일 뿐, 원하지 않으면 정장 대신에 얼마든지 편안한 옷을 입어도 된다.
우리 가족은 맨 처음 크루즈 여행에서는 정장이 불편하다며 대충 차려입었었는데, 나중에 보니 재미삼아 옷을 쫙 빼입고, 그렇게 차려입은 김에 가족사진도 찍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빠를 닮아 정장을 차려입는 것을 불편해 하는 코난군이지만, 잘 달래고 설득해서 넥타이를 매고양복 자켓을 입혔다.
둘리양의 드레스는 우리 동네 중고 옷가게에서 5-7달러 주고 여러 벌을 사서 매일 다른 것으로 갈아 입히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
딸 키우는 재미가 이런데에 있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서 과자로 만든 집을 근사하게 꾸며놓아서 사진 찍기에 좋았다.
화려하게 장식한 배 안은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그림과도 같은 풍경 속에 우리도 들어있었다.
옛날옛날에 (Once upon a time)… 하고 시작하는 동화 이야기는 그래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더란다 (Happily everafter) 하고 끝나는데, 우리 가족의 모습이 마치 그 동화의 행복한 결말처럼 보여서 좋았다.
둘리양은 아직 어리지만 패션감각이 제법 있어서, 이 드레스를 중고 옷가게에서 직접 골랐었고, 이 날 입겠다며 고르기도 했다.
새로산 검정 구두와 잘 어울리는데다 크리스마스의 색깔과도 잘 어울리는 색감의 드레스를 잘도 골라 입었다.
잘 차려입으면 아직도 전광렬처럼 멋져 보이는 남편과 명탐정 코난처럼 잘생긴 코난군…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온가족이 쫙 빼입고 근사한 복도를 따라 걸어가서 저녁을 먹기 전에 가족사진을 먼저 찍기로 했다.
전문 사진사가 포즈를 이렇게 하세요, 손을 이렇게 올려보세요, 고개를 살짝 들어보세요, 하는 지시에 맞추어 성공적으로 찍은 가족사진이다.
화려한 장식 앞에서 잘 차려입고 조명을 받으며 찍으니 매우 흡족한 사진이 나왔다.
세 번째 디즈니 크루즈를 타게 되어 사진을 찍는 것도, 배 안의 모든 일에 참여하는 것도 익숙해져서 표정도 여유로워 보인다.
이렇게 예쁜 아이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시골 동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
결혼한지 어언 18년…
불타는 사랑은 한 때였고, 아이 둘을 키우면서는 동지애로 똘똘 뭉쳐 살아온 부부이다.
비록 18년 전 결혼식때 사입었던 양복과 드레스를 다시 꺼내 입은 묵은 커플의 모습이지만…
이만하면 해필리 에버 애프터 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2020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