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외 영화제에서 여러 개의 상을 받고 주목을 받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가이런 대사를 말한다.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ㅋㅋㅋ
우리집 둘리양을 보면 나도 저절로 저 대사가 나온다.
다음날 날씨가 어떤지, 체육 수업이 있는지 아닌지, 등에 따라 입고갈 옷과 신발을 미리 정해두고, 내일 학교에 싸갈 간식은 무엇이고 도시락 메뉴는 무엇인지, 또는 도시락 대신에 학교 급식을 먹을 것인지를 미리 정하는 것은 매일의 일상이다.
다음 달에 있을 자신의 생일파티는 작년 이맘때부터 계획을 해두었다 (가장 친한 친구 주주와 니알라 두 명만을 초대해서 슬립오버 파티를 하기로 함 🙂
어디 그뿐이랴.
엄마가 몇 시부터 지하실에서 운동을 할지 물어보고, 그 시간에 맞추어 자기도 지하실에서 철봉 연습을 한다든지, 엄마가 마실 물을 준비한다든지, 운동을 시작하고 마칠 때 티비와 전등을 켜고 끈다든지…
오는 주말에는 사우나를 함께 하자든지, 옷이나 신발 쇼핑을 하기로 정한다든지, 등등의 일정을 정할 때는 먼저 내 일정을 물어본다.
“엄마, 이번 토요일에 나 체조학원 라이드 말고 다른 할 일이 있어요?”
“아니 그것 말고는 아무 계획도 없는데?”라고 대답하면 그제서야,
“그러면 토요일에 체조학원 다녀온 후에 우리 같이 사우나 해요” 하고 부탁을 하는 식이다.
즉, 이런 일정을 정하는 것도 무작정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스케줄을 먼저 확인한 다음, 그것을 고려해서 새로운 일정을 정하는 것이다.
가끔은 이런 식의 의사소통이 피곤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냥 간단하게, 아이스크림이 먹고싶으니 사달라고 부탁하면 될 것을, 언제 장보러 갈거냐, (계획이 없다고 하면) 집에 우유가 다 떨어져가는데 내일쯤은 우유를 사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그렇다고하면 그제서야) 장보러 간 김에 민트초코칩 아이스크림을 사다줄 수 있겠느냐 하고 묻기 때문이다.
매사를 이런 식으로 자기가 생각해보고 결정을 내려야 하므로, 나에게 질문이 아주 많다.
장을 보러 가면 몇 분 만에 집에 돌아오는지, 저녁을 먹은 후에 바로 설거지를 할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할 것인지, 오늘 저녁에는 아빠와 엄마 중에 누가 자기를 픽업할 것인지, 친구가 놀러오면 몇 시간을 놀 수 있는지, 냉장고에 단 한 개 남은 사과는 누가 어떻게 먹을 것인지, 등등등……
매사에 자신이 계획하고 결정을 내린대로 실행하려는 습성은 곧 자기고집을 꺾지 않는 성격으로 이어진다.
잘해도 못해도 자신이 혼자서 해내야지, 엄마나 아빠가 대신 해주거나 도와주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아침에 늦잠을 잔다 싶을 때에라도 방문 밖에서 “일어났니?” 하고 말해서, 깨우지 않는 것처럼 깨워야지,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이불을 들춰내고 “빨리 일어나! 학교 늦겠다” 하고 깨웠다가는 아침부터 둘리양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서 하루의 시작이 괴로워진다.
“학교 가려면 얼른 이닦고 세수해!” 라고 말하기 보다는,
“이 닦고 세수했으면 이제 학교 가자” 라고 말하고 자리를 떠서, 둘리양이 아직 씻지 않고 있었다면 자존심 상하는 일 없이 얼른 씻고 학교갈 준비를 마치도록 해주어야 한다.
즉, 명령어로 말하지 말고, 객관적인 정보를 흘리듯 무심하게 던져주고 자리를 떠야 한다.
이것이 이제 곧 여덟살이 되는 둘리양과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는 비법이다 ㅎㅎㅎ
조금 피곤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의사소통이 가능해져서 무척 만족스럽다.
여러 가지 자료와 근거를 보여주고 설명해주면 그 어떤 일이라도 납득하기 때문에, 속터질 일도 생기지 않는다.
예를 들면 친구와 플레이 데이트를 하고 싶지만 친구네 가족이 다른 일이 있어서 못한다는 것을 문자 메세지 주고 받은 것을 보여주며 설명하면 떼를 부리거나 실망하지 않고 쉽게 받아들인다.
오히려 어른들끼리 주고받는 문자나 메모를 직접 읽어보는 것을 무척 재미있어 한다.
마침 2학년 담임인 메도우스 선생님은 학부모들과 이메일이나 메모를 이용해서 자주 교신을 하기 때문에 둘리양에게는 쏠쏠한 재미를 주고 계신다 🙂
지난 금요일에는 둘리양의 부탁으로 길벗 초등학교에 가서 함께 급식을 먹었다.
(물론 이렇게 되기 까지에도 수많은 질문이 있었다. “엄마 학교는 언제 개학해요?”, “이번 금요일에는 출근해요?” “출근하면 하루종일 일해야 하나요 조금 일찍 퇴근할 수 있나요?” 등등등… ㅎㅎㅎ)
맛도 없는 급식을 굳이 찾아가서 먹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지만, 다른 아이들의 부모가 가끔씩 학교에 들러서 함께 점심을 먹는 것을 본 둘리양이 자기도 그렇게 해보고 싶어하니, 게다가 아직 개강 전이라 시간도 여유가 있어서 그러기로 했다.
집에서 만두 몇 개를 빚어서 튀겨서 메도우스 선생님께 맛보시라고 가져가서 드렸더니 이런 예쁜 땡큐 카드를 둘리양 편으로 보내셨다.
만두가 맛있기도 무척 맛있었지만, 자기를 생각해주었다는 사실이 더욱 기뻤다는 내용이다.
2020년을 맞은 둘리양은 엄마에게 떼를 부리지도 않고 학교가는 것을 무척 좋아하며 잘 지내고 있다.
드디어 이런 날이 왔나보다 🙂
2020년 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