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웹 사이트가 학교에서 차단 되었던 이야기
2월 18일 여느 금요일처럼, 첫교시 수업보다 약 시간 전 (내가 정한 오피스 아워: 학생들이 찾아와서 모르는 것을 물어볼 수 있는 시간)에 사무실에 도착해서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었는데 한국 사이트가 접속이 되지 않았다. 그날은 그냥 그려러니 했다. 학교 인터넷이 느리거나, 접속이 끊기는 일은 비일비재하니…오전 2시간 수업 후에 사무실에 점심을 먹으면서 다시 연결했지만 되지 않았다. 한국의 대선이 돌아가는 상황이 궁금해서 좀 답답했지만, 학생들이 찾아와서 물어보는 바람에 점심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1시에 시작한 수업이 2시에 끝나자 마자 곧바로 집으로 왔으니 한국 사이트 접속 문제는 그냥 잊어버렸다.
주말이 지나 월요일. 지난 주 금요일과 같이 접속이 안되었고, 수업, 학생들로 바빴고, 2시에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화요일 아침 일찍 실험 수업이 있어서 일찍 왔다가, 연결하니 안된다. 아니 이쯤 되면 뭔가 수상했다. 평소에 가지도 않는 한국 사이트를 하나 둘 씩 찾아서 접속을 하는데 모두 접속이 안된다. 방송국, 신문, 나중엔 대학교를 찾아서 접속하는데 모두 안되는 것이다. 그러면 영국의 사이트는? bbc.com 는 접속이 된다. guardian.co.uk 도 된다. 그러면, 독일 사이트가 뭐가 있지? 아 슈피겔. 연결이 된다. 일본 NHK 도 되고, 태국의 방콕 포스트도 된다. 한국 사이트만 안된다. 그래서, 학교에서 패스워드나 네트워크 등등 문제가 생기면 찾아가는 Help Desk로 메일을 보냈다.
“한 일주일 전부터 한국 사이트가 모두 접속이 안된다. 반면, 다른 나라의 사이트는 별탈 없이 접속이 된다. (그리고 위의 사이트를 나열했다) 실수로 뭐가 막혀있는지 알아내어 조속한 시일에 해결되었으면 한다” 는 메일을 보냈고, 접수가 되었다는 답장 메일이 왔다.
그런데, 금요일까지 아무런 답장도 없고, 그 사이에 한국 사이트 접속은 여전히 불통이다. 그래서 다시 메일을 보냈다.
“화요일에 보낸 이메일이 답장이 없는데, 어떻게 되었냐” 는 메일에 바로 답장이 왔다.
“VWCC isn’t blocking any of them. … Since we are not blocking these sites, that is as far as we can go in troubleshooting the problem.” (우리 학교 (VWCC) 가 막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우리 막는 것이 아니니, 딱 그정도 까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바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이글을 쓰느라 읽어보니 너무 성의가 없다. )
왱.. 뭔 소리여 이게.. 그래서..
“그러면 본사(VCCS: Virginia Community College system)에서 막고 있단 말이냐” 라고 메일을 보냈더니, 곧바로 답장이 왔다.
“우리(VWCC)도 본사(VCCS) 도 막고 있지 않아. 그래서, 우리는 뭐가 문제인지 설명할 수 없어.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해결책도 없어.” (처음에 이 답장을 읽을 때는 이런 성의 없는 답이 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 다음의 말들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지금 다시 읽어보니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그냥 안되는 일은 그냥 포기하는게 좋다는 말만 반복한 셈이다. 나도 이렇게 일하고 월급 받아갔으면 좋겠다.)
“도움이 될 지 모르니까 조금만 설명해 줄께. 집에서 어떤 사이트를 연결한 때 여러 곳을 경유하게 되는데 한 곳에서 다른 곳을 연결하는 것을 hop(뜀) 이라고 하지. 어느 사이트까지 수많은 hop 이 일어나는데, 어디서 막혀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집과 교육기관은 다를 수 밖에 없어. 이럴 경우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내 설명이 도움이 되었으면 해” (이런 성의 없는 답변에 욕이 나왔다)
다시 답장을 보냈다.
” hop 은 임의로 일어나는 것이니 매번 연결할 때마다 경로가 다른데, 어떻게 한국 사이트 매번 모두가 막혀 있냐고??” “여기에 한국 대학교 리스트와 일본 대학교 리스트를 함 가봐. 어떻게 다른지?”
금요일 오후에 보낸 메일이니 답장을 할리가 만무하다. 이쯤되면 한번 해보자는 것인데, 나도 한번 알아보마. 말도 안되는 설명으로 적당히 넘어 가려고..누굴 바보로 아나?
월요일 오전에 답장이 왔다.
“네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안됐는데, 우리가 조사해보고 결정한 바에 의하면, 이것은 우리 영역 밖의 일이야.”
결국 IT (information technology) 를 가르치는 교수들 중, 네트워크와 연관이 있는 교수에게 물어보니, 방화벽 스페셜리스트에게 물어보란다.
나는 ‘아니 Help Desk 인간들이 이 사람에게도 물어보지 않고, 내게 답장을 이따위로 했단 말이야?’ 라고 생각을 했다. 설마 아니겠지, 얘네들이 말한 ‘우리’는 그러면 누군데?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렇게 주먹구구로 일을 한다고는 생각을 못했기에, 몇 사람들에게 더 물어보았다. 다들 자기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Help Desk 가 그렇게 유능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냥 간단하게 패스워드 잊어버렸거나, 혹은 무선 인터넷이 안되거나 그런 것들을 해결해 주는 정도의 일만 할 줄 알지 더 깊은 내용은 모른다고 했다. 또 남자들끼리의 자존심 때문인지 다른 오피스의 사람들과 소통도 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도 했다.
퇴직한 후에도 한 달에 한번씩은 식사를 하는 옛 동료는 문자를 교환하는 도중에 북한의 인터넷 주소 끝자리는 뭐냐고 물었는데 몰라서 찾아보니 .kp로 나왔다. 그래서 혹시 .kr 을 .kp 착각하고 차단시킨 건 아닐까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 했다.
다음 날 화요일 학교에서 좀 진보적인 화학 교수에게 이야기 했더니, “한국 사이트가 검열 되었으면 다른 나라 사이트는?” 이러면서 지금 막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 사이트, 중국의 베이징 대학을 검색해서 찾아가보니 연결이 안되는 것이다. 그는 그 나름대로, 학교가 검열을 하다니 하고 흥분했다.
결국 그날 저녁에 마음을 정하고 방화벽을 담당하는 직원에게 조심스럽게 메일을 보냈다.
“한 2주 전 부터 수많은 한국 사이트가 집에서는 접속이 되는데 학교에서는 일절되지 않는다. 반면 이웃 나라인 일본 사이트로의 연결은 아주 잘 된다. 아마 누군가의 실수로 어딘가에 특정지역을 차단하는 버튼을 누른 것 같다. 로우녹 시가 원주 시와 자매 결연도 맺고 있고, 우리 학교는 원주에 있는 상지대학교와 자매 결연을 맺고 과거에도 교류가 있었다. 팬데믹이 끝나고 왕래를 하게 되면, 학교에서 한국 사이트에 연결이 안되는 일을 어떻게 해결하겠나. 그리고, 만일에 누군가 북한 ( North Korea) 의 주소 끝자리 (.kp) 와 한국 (South Korea)의 끝자리 (.kr) 를 착각했을 수도 있는데, 한번 확인해 주면 고맙겠다. 그리고 안되는 사이트 몇개를 여기에 적어 놓는데, 더 궁금하면 여기에 적어 놓은 한국의 대학 리스트 사이트와 와 한국의 언론 리스트 사이트를 전부 확인해 보기 바란다.”
Help Desk 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고, 좀 부드럽게 이야기 하기 위해서 원주 시와의 자매 결연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만일 누군가 의도적으로 막았다면, 막았을 때 학교에게 불편할 수 있을 이야기와 함께. 그리고, 북한의 이야기는 그냥 슬며서 꺼냈을 뿐이었다.
수요일 새벽에 보낸 메일이 아침에 읽었다.
“Help Desk 가 처음부터 자기에게 이야기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미안하다. 그랬더라면, 훨씬 수월하게 일이 진행이 되었을 텐데” (같은 IT 소속이라 내가 Help Desk 에 보낸 메일을 본 듯하다.
“내가 확인해보니 문제가 있어서, 주의 본부에 연락해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겠다” 그리고는 Help Desk에 주 본부의 어떤 팀에 티켓을 끊으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Help Desk 로부터 메일이 왔다. 미안하다는 일언반구도 없이 “이제 한국 사이트가 되니 즐감하라”고.
아니, 이렇게 간단히 해결될 일은 왜 일주일 동안 안된다고 우겼던거야? 화가 나서 고맙다는 답장도 보내지 않았다. 한바탕 쏘아 붙이는 메일을 보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참았다. 앞으로 계속 볼 얼굴인데..
이것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왜 한국 사이트가 막혀 있었을까 궁금해 하던 방화벽 전문가는 Help Desk 에 보낸 메일을 나에게 첨부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무슨 이유로 한국 사이트가 불통이었는 지를 Help Desk 는 주 본부에 물어봐 달라.”
몇 시간 뒤에 날라온 내용은 가관이다.
“우리 (주 본부)에서 나라 별로 사이트를 차단하고 있는데, 그 나라들은 러시아, 중국, 이란, 그리고 북한이다. 이번의 일은, 누군가 남한을 북한으로 착각하고, 남한 사이트를 차단해서 생긴 실수다. 그리고 4 나라를 차단한다는 내용은 2월 17일에 각 학교의 모든 정보 총괄 책임자들에게 알렸다.”
설마가 사실이었던 것이다!!!!! 어떤 멍청이가 요즘 세상에 ‘South Korea’ 와 ‘North Korea’ 를 구분도 못하고 엉뚱한 짓을 했냔 말이야!! K-pop, K-drama, K-food, 기생충, 오징어 게임, 그리고, BTS 로 온 세상이 한국에 열광하는데…
방화벽 담당자는 IT 팀이 이렇게 헛발질을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도 위의 나라들의 사이트를 차단한다는 이야기는 예전에 들어본 적은 있지만, 실제 차단을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Help Desk 의 대응 소홀과 소통의 부재, 예상하지 못했던 차단 사실, 담당자의 어쩌구니 없는 실수 등등이 한꺼번에 일어난 드문 경우라고 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의견을 교환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기가 막혀 했다.
대단히 진보적인 화학교수는 이 해프닝도 웃기지만, 학교가 다른 나라들의 사이트를 차단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해 했다.
학교가 자의적으로 어떤 나라의 인터넷을 차단하면 될 일인가 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다음에 떠오른 셈이다. 버지니아 주 본부에 몇 나라의 사이트를 차단하면, 주 내의 23개 모든 곳에서 차단이 될 텐데, 누군가는 이것에 불평 부당을 느끼고 이의를 제기할 텐데..
현재로서는 주에서 특정 4 나라를 차단하고 있다는 것을 나와 내 주위의 몇 사람들만 알고 있지만, 이제 곧 알게 될텐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동료 교수와는 좀 두고 생각해 보기로 하고 금요일에 각자 집으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나를 시험하는 일들이 자주 생긴다. 그런데 이것은 내가 삶에 대하는 태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귀찮지만 포기하고, 그냥 한국 사이트는 한국에서 읽어보면 되지, 수업 끝나자마자 바로 집으로 오면 되고, 굳이 이런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일 필요까지, 이렇게 생각했더라면, 왜 이번과 같은 일이 생겼는지도 몰랐을 테다. 예전에 아이들이 학교 컴퓨터로 책을 쓰는 일과 싸운 경우처럼 해결하지 않고 넘어갔더라면, 이번의 경우에도 굳이 꼭 해결하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생기는 문제도 당연히 여기면서 살다보면, 굳이 해결해야 일이 별도로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에 반해, 하나를 제대로 해결하니, 다른 (남들은 포기하는) 일이 생겼을 때 또 해결하고, 그러다 보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점점 더 늘어가니, 해결해야 할 일이 점점 더 많아진다. 옆에서 보는 누군가는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 일이 계속 생기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어느 시점에 결정한 삶에 대한 태도가 이렇게까지 발전하게 된 것 같다.
좀 귀찮을 때도 있지만, 이런 일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일이 나쁘지 않다. 잘 알지 못했던 일을 더욱 더 깊이 알게 되기도 한다. 나는 나 스스로에 서슴치 않고 해결사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