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블랙스버그의 여름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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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블랙스버그 다운타운에서는 연중 몇 차례 거리 축제를 하는데 여름이 시작하는 하지를 축하하는 Summer Solstice가 있었고, 어제와 오늘은 여름 방학이 거의 끝나가고 새학년을 준비하는 대학 타운의 축제인 Steppin’ Out 이 열렸다. 어제 맞은 코로나19 2차 부스터샷 (그러니까 네 번째 접종) 때문에 밤새 열이 나고 근육통을 앓은 후라 몸과 정신이 알딸딸 했지만, 아이들이 다 커서 나는 그저 뒤에서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기만 하면 되니까 힘들지는 않았다. 슬립오버를 하러 놀러온 콜비와 둘리양을 데리고 나가서 두 아이들이 이끄는대로 따라 다니다가 아이스크림을 한 개씩 사주고 벤치에 앉아서 잠시 쉬기도 했다.

파머스마켓 뒤로 보이는 버지니아 공대 건물이 고성같아 보인다.
둘리양과 콜비가 걸어가고 있다.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을 하자니 이 마을에서 17년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유모차를 밀며 가는 부부를 보니, 예전에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유모차에 태워서 이 축제에 왔던 생각이 나고, 아이들에게 풍선 장난감을 나눠주는 부스를 보니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그런 공짜 선물을 받아 즐거워했던 것도 생각났다. 그 시절이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오늘 이 순간이 더 좋게 느껴졌다. 아직 어린 아이들은 부모 손에 이끌려 무더위를 참으며 걸어다니다 장난감이나 간식을 얻어먹는 것이 고작일 뿐, 각종 부스와 행사를 제대로 즐기기에는 너무 어렸다. 유모차에 실린 아기는 말할 필요도 없고… 우리 아이들은 이제 고등학생과 초등 최고학년이 되는 나이가 되고보니 자기들끼리 거리 축제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코난군은 예닐곱명쯤 되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느라 나를 만날 새도 없었고, 둘리양과 콜비는 자기들 용돈이 두둑히 들어있는 지갑을 가지고 와서 예쁜 목걸이를 사고 반지를 샀다. 나는 그저 없는 사람인 척 멀찍이 뒤따라 가기만 했는데, 둘이서 속닥속닥 키득키득 즐겁게 다니면서 꼼꼼히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고, 그 와중에 돈이 모자라면 서로에게 빌리고 빌려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를, 어떤 사람들은 동물을 데리고 축제 구경을 나왔다.
강아지용품을 파는 부스 근처에는 개가 많았다.
아이스크림 한 개씩을 사주었다.

콜비는 둘리양과 이번 학년에도 같은 반이 되었는데, 영재반도 같이 다니고, 둘다 성숙해서 키가 큰 것도 비슷하다. 여름 방학 동안에 우리집에 몇 번 놀러와서 놀게 했고, 콜비 엄마는 둘리양을 데리고 수영장과 호숫가 비치에 데리고 가서 놀게 해주기도 했다. 아이들끼리 아무리 친해도 부모들의 성향이 맞지 않으면 불편한 점이 생기는데, 콜비의 엄마는 내가 베푼 만큼 고마워하고 되돌려 주려고 하는 예의바른 사람이라서 좋다.

두 소녀의 발길이 닿는 곳은…
언제나 반짝반짝 예쁜 작은 것들을 파는 부스였다.
하지만 별로 쓸모는 없는 것들이다…ㅎㅎㅎ

거리 축제가 열리는 다운타운을 두 바퀴 돌면서 두 아이들은 목걸이 반지 귀걸이 등의 장신구를 파는 부스에 몇 번이고 들렀다. 목걸이를 두 개나 사질 않나… 별로 쓸모없이 예쁘기만 한 장식품을 사질 않나… 만 열 살인 아이들에게 현명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기대하면 안된다. 자기 용돈으로 사는 것이니 간섭하지 않았다. 한 달에 20불씩 받는 용돈을 다른데 안쓰고 모아두었다가 축제에 데려다 준다고 하니 지갑에 잘 챙겨와서, 물건을 고르고, 값을 확인하고, 돈을 내고, 거스름돈을 챙기고… 그렇게 하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기특했다.

수국이 예쁘다.

두 소녀가 쇼핑을 마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는데, 코난군은 친구들과 아직도 즐거운지 연락이 없었다. 코난군을 기다리면서 블랙하우스 앞에서 잠시 쉬고 사진도 찍어주었다. 우리 동네 이름 블랙스버그는, 이 동네에 처음으로 정착한 블랙 가문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인데, 블랙씨네는 아마도 부자였는지 이렇게 멋진 집을 지어서 살았다고 한다. 동네 기념 사업으로 블랙씨네 옛집을 수리해서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재활용품으로 만든 미술품을 건물 바깥에 많이 전시해 두었다.

블랙 하우스 앞에서
드럼통으로 만든 소

마침내 코난군과 통화가 되었는데 우리가 좀전에 들러서 사먹었던 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있다고 했다. 저녁 8시가 다 되어가니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유모차를 타고, 엄마 손을 꼭 붙잡고, 그렇게 여름 축제에 왔던 우리 아이들이 이제는 친구들과 의논하고 계획을 세워서 자기들끼리 여름 축제를 즐겼다. 나는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즐거운 동안에 나혼자 호젓한 마음으로 여름 풍경을 누렸다.

숨은 그림 찾기: 코난군을 찾아보세요
즐거웠던 Steppin’ Out 축제

2022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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