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삶과 죽음은 한 끗발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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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년간의 경험으로 나의 오늘은 어제와 비슷하고, 또 오늘과 비슷한 내일이 끊임없이 다가올 거라고 가정하며 산다. 그 가정 하에 내년의 휴가 여행 계획도 세우고,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기도 한다. 지금 한국에는 예전에 왔던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태풍이 상륙할 거라는 뉴스를 하고 있는데 유튜브에서도 그 뉴스를 생중계 해주어서 보고 있다. 수해에 대비하며 잔뜩 긴장하고 있는 사람들의 뉴스를 보고 있자니, 살아 있다는 것과 삶이 끝난다는 것은 서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목요일에 우리 가족이 겪은 일도 그런 생각을 뒷받침한다.

지난 목요일,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남편과 아이들의 도시락을 준비하는 매우 모범적인 하루를 시작했다. 목요일은 남편이 강의가 많아서 이른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도 다섯 시 삼십 분이 넘어서야 귀가하는 날이다. 나는 오전에 둘리양의 학교에서 실습하는 학생의 수업 참관을 하고, 오후에는 출근해서 저녁 강의를 하는 날이었다.

이른 아침 운동 후에 상쾌한 샤워를 하고 도시락 준비를 하고 남은 설거지를 하며 라디오를 틀어놓았는데, 남편의 출근길인 주간 고속도로 81번에서 큰 트럭이 넘어지는 사고가 나서 차가 무척 많이 막히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사고가 난 지점과 시각을 추론해보니 남편이 그 막히는 길에 갇혀 있을 것 같아서 상황이 어떤지 문자로 물어보았다. 다행히 남편은 운전 중에 늘 앞선 지점의 교통상황을 인터넷으로 확인하며 다니기 때문에 미리 막히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돌아돌아 겨우 첫 강의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고 한다.

남편의 학교 건물. 최신식 공법으로 지어서 실제로 봐도 이렇게 멋있게 생겼다.

두 아이들이 차례로 걸어서 혹은 버스를 타고 등교를 했고, 나는 예정된 교생 실습 지도 방문을 했다. 둘리양과 같은 학교에서 하는 실습이지만 학교가 커서 둘리양의 교실과 내 학생의 교실은 다른 복도로 한참 걸어가는 먼 거리이다. 둘리양은 최고 학년의 교실이 모여있는 복도에 있고, 내 학생은 가장 어린 유치원 반이 모여 있는 복도에 있다. 아무래도 어린 학생들이 소음을 내기 때문에 서로 방해받지 않도록 그렇게 교실 배치를 했나보다.

실습 지도를 마친 다음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에서 우리집이 2분 거리로 가까워서 집에 돌아와서 집안일을 조금 더 하다가 출근을 하려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서 여름 내내 울창하게 자란 잡초를 다 뽑고 그 자리에 김장 무를 심을 자리를 마련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학교 교육청에서 단체 전화 메세지가 왔다. 애플 와치가 있으니 손에 흙을 잔뜩 묻히고 일을 하다가도 전화를 받을 수 있어서 편리하다~ 생각하며 메세지를 듣는데… 그 내용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코난군의 학교에 무기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경찰견을 대동해서 수색을 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수업을 중단하고 불을 끄고 책상 밑에 숨어있는 락다운 모드로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는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고 있으니 학부모들은 학교로 찾아오거나 패닉에 빠지지 말고 30분 간격으로 업데이트 되는 전화 메세지에 귀를 기울이라는 권고도 있었다.

코난군이 다니는 고등학교 건물.

‘어떤 모지리가 학교에 무기를 가지고 왔담?’ 하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잡초를 뽑고 있는데, 지역 방송국 차량이 우리집 앞에 차를 세우더니 기자로 보이는 사람이 고등학교 쪽으로 걸어갔다. 우리집에서 걸어가면 경찰이 막고 있는 학교 진입로를 우회해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기자 양반, 잠시후에 돌아와서 차를 타고 사라지더니 곧 방송용 카메라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30분 간격으로 오는 전화 메세지는 계속해서 수색중이라는 말 뿐이고… 이제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동네 뉴스에 나온 방송 장면과 기사: https://www.wdbj7.com/2022/09/01/blacksburg-high-school-under-shelter-in-place-after-report-weapon-building/

뒷 이야기가 아주 많지만, 어쨌든 공식적인 결론은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학생들은 점심 시간 부터 정상 일과로 돌아갔다. 그런데 곧이어 또 교육청에서 보내는 단체 전화 메세지가 왔다. ‘이건 또 뭐야?’ 궁금해하며 메세지를 들어보니, 이번에는 둘리양의 학교가 갑자기 수도가 끊겨서 원인을 찾아 수리를 하는 동안에 정상 수업을 할 수가 없으니 평소보다 두 시간 삼십 분 이른 하교를 한다는 소식이었다. 무기를 수색중이라는 소식에 비하면 무척 안심되는 소식이긴 하지만, 내 오후 스케줄을 다시 조정해야 하는 일이다. 남편도 귀가가 늦고 코난군도 학교가 정상 스케줄로 돌아갔으니, 나마저 원래 계획대로 출근하면 둘리양이 혼자 집에서 두 시간 가까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평소에는 그 정도 시간 동안 둘리양을 혼자 집에 두기도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오전 내내 나쁜 일이 일어나는 날이어서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는 경험을 했다.

둘리양의 학교. 내 지도 학생이 교생 실습을 하고 있는 학교이기도 하다.

내가 저녁 강의에 들어가 있는 동안 둘리양은 내 연구실에서 혼자 놀다가 퇴근하는 아빠가 집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저녁 강의를 마치고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니 몸과 마음이 무척 피곤했다. 마당에 잡초 뽑는 일만으로도 육체노동을 충분히 했는데 거기에 더해서 가족의 학교마다 무슨 일이 생겨서 정신까지 혹사를 했던 날이다. 그래도 온가족이 무사히 다시 한 지붕 아래에 모여서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감사한 날이었다.

나중에 코난군에게 들으니 총을 학교에 가지고 왔을 것으로 지목된 학생이 코난군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어서, 자칫하면 정말로 코난군의 생명이 위험할 뻔 했다. (미국 고등학교는 한 반 아이들이 내내 함께 수업을 받는 것이 아니고, 대학생처럼 수강하는 과목에 따라 다른 그룹의 아이들이 수업을 듣는 시스템이다. 총기를 수색하던 그 시간에 코난군이 받는 체육 수업에 총과 살생부를 가지고 왔다는 그 아이가 같은 공간에 있었던 것이다!)

총기소지를 규제하는 법안이 얼른 마련되어야 한다.

2022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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