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첫 날인 오늘 아침 코난군이 등교를 할 무렵의 기온은 화씨 25도, 섭씨로 환산하면 영하 4도였다. 요 며칠간 기온이 이렇게 낮은 날에는 남편이 돌아돌아 운전하는 길을 감수하고 코난군을 차로 태워다 주었는데 오늘은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해서 코난군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걸어서 등교를 해야 했다. 고작 5분을 걸으면 되는 거리이긴 하지만 바람이 제법 불어서 따뜻한 외투를 입고 등교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등교준비를 마치고 아랫층으로 내려온 코난군은 겨울 외투 대신에 안쪽이 기모재질로 되어 있는 후드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잔소리 대마왕 엄마였다면 ‘오늘 날씨가 얼마나 추운데 고작 후드 스웨터를 입고 등교를 하려느냐, 당장 겨울 외투로 갈아입어라’ 하고 말했겠지만, 나는 그보다는 성숙한 엄마라서 ㅎㅎㅎ 코난군에게 현재 바깥 온도를 말해주고, 얼마나 추운지 직접 느껴보라고 했다. 네가 지금 입고 있는 차림새로 걸어서 등교해도 괜찮을지 스스로 판단하라는 의도였다. 느릿느릿 걸어와서 베란다로 나가는 문을 열고 잠시 서있다가 윗층으로 올라가지 않고 소파에 앉았다. 옷을 갈아입지 않기로 결정한 것을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그 차림새로 걸어서 학교에 갈 수 있겠어? 오늘 아빠는 벌써 출근했고 너혼자 걸어가야 한다” 하고 말했다. 코난군은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인 후 스마트폰으로 친구들과 문자를 계속 했다. 고상하고 우아한 엄마 노릇을 위해서 더이상의 권유는 하지 않기로 했지만, 거기서 멈추기에는 조금 아쉬웠다. 내 의견은 거부당했지만, 내 의도는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네 판단을 존중해. 그 결정이 범죄행위가 아니고, 다른사람이나 너자신을 해하지만 않는다면 그 어떤 결정과 판단이라도 지지할거야. 오늘같은 날씨에 엄마는 네가 더 따뜻한 겨울외투를 입고 등교했으면 하는 생각이지만, 기온을 확인하고 내린 너의 결정을 존중하기 때문에 더이상은 따뜻하게 입으라는 권유를 하지 않을거야. 왜냐하면, 난 정말 좋은 엄마거든. 그렇지?”
묵묵히 전화기만 들여다보던 코난군이 나와 눈을 맞추고 미소를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색이라도 확실하게 내보자 하는 생각으로 더 떠들었다. 코난군은 내 수다를 다 들어주고 공감해 주었다. 요약하자면 겨울외투를 안입는 것이 범죄가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아니다, 코난군이 추위를 느낀다면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일 수는 있겠지만, 치명적인 피해는 아닐테니 그것은 피해라기 보다는 “경험” 이라고 봐야 한다. 화씨 25도와 풍속 12마일이 어느 정도의 추위인지 오늘 경험으로 다음에는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을테니까… 하는 내용이었다.
며칠 전에는 테니스를 치러 나가기 전에 급하게 뭘 먹어야 하는 코난군에게 후리가케를 뿌리고 간장에 비빈 쌀밥을 먹게 했다. 나중에 돌아온 코난군이 또 그 밥을 먹고 싶다길래 이번에는 내가 비벼주지 않고 후리가케, 간장, 참기름을 내주었다. 어떤 재료를 얼마만큼 넣어야 하는지를 직접 체험해보고 배우라는 의도였다. 잠시 혼란스러워하는 코난군에게, 후리가케와 참기름은 실수로 너무 많이 들어가도 못먹을 밥이 되지는 않지만 간장은 너무 많이 넣으면 짜게 되니까 조금씩 추가하면서 맛을 봐가며 그 배율을 직접 알아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과학 실험을 하는 것처럼 재료를 조금씩 추가해서 넣고 밥을 비벼서 맛있게 먹었다. 이제 무얼 얼마만큼 넣어야 할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도 했다. 다음에 엄마가 없는데 배가 고프면 언제라도 보온밥솥의 밥을 덜어서 후리가케 밥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나도 안심이다.
코난군에게 나는 좋은 엄마! 라는 인식을 한 번 더 각인시켜주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

2022년 12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