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저녁에 둘리양의 초등학교에서는 스템 나잇 이라는 행사가 있었다. 미국인들이 수학 과학을 못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안 국가가 단연 앞서 있는 수학 과학 분야에서 우리도 분발해야 한다는 의도로 스템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거기에 더해서 어린 학생들에게 수학과 과학이 어렵다고 여겨지는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 이런 행사를 한다.
이번 행사는 PTA에서 주관을 했는데 PTA 회장님이자, 우리 동네 킵스팜 반장님인 제이크 엄마 제니가 수고를 많이 했다. 제니는, 남편과 같이 버지니아 공대에서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덕분에 여러 명의 교수와 대학생들, 심지어 자율주행 차를 섭외해서 데리고 올 수 있었다. 학교 건물 안 곳곳에는 버지니아 공대 관계자나 일반인 참가자, 교사들이 자리를 마련해서 여러 가지 과학 활동을 하거나, 최신 기술이 탑재된 장비를 보여주고 있었다. 프라이시스 포크 초등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가족과 함께 와서 마음껏 구경하고 배우고 작은 선물까지 받아갈 수 있는 유익한 행사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산골 마을은 소수의 대학교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과학 박물관에 가거나 최신 테크놀러지에 대해 직접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특히나 둘리양이 다니는 학교는 동네 외곽에 위치해서 그런지 (거주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함), 일용직에 종사하는 남미계 이민자 가족이나 저소득층 가족이 많이 있어서, 이런 행사가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둘리양과 함께 만들고 공부했던 레고 로봇을 보여주기로 했다. 평소에 사람들 많은 곳에 가서 자신을 드러내어 뽐내는 일을 아주 많이 싫어하는 남편이지만, 딸래미 학교의 일을 돕고 싶은 마음으로 바쁜 시간을 쪼개어 참가하기로 한 것이다. 수학적 사고와 냉철한 성격을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듯한 둘리양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라 좋기도 했다.
옛날 우리 어릴 때도 그랬지만, 아이들에게 로봇은 참 신기하고 매력적이다. 사람도 아닌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을 척척 해내기 때문이다. 정육면체의 여섯 면을 모두 같은 색이 되도록 맞추는 루빅스 큐브 퍼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닌데 레고 로봇은 센서로 색깔을 감지하고 수학 계산을 해서, 아무리 심하게 흩어놓은 퍼즐이라도 2-3분 이내에 맞추어 낸다. 센서 불빛이 반짝거리고, 퍼즐을 맞추기 위해 돌리는 일을 하는 모터에서는 연방 윙~윙 소리가 나고, 몇 분만 기다리면 마술처럼 퍼즐을 짠~ 하고 완성하니 지나가던 어른과 아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런데, 원래 같이 발표하기로 했던 둘리양은 어디로 가고 남편만 바쁜 것일까? 궁금해 하고 있는데, 동내 친구 매디와 여기 저기 함께 돌아다니던 둘리양이 다가왔다. 곳곳에 재미있는 활동이 많아서 찾아다니며 즐기는 중이었다. 종이접기나 컵쌓기 놀이 같은 것이 스템과 무슨 상관이 있나? 하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 컵의 모양과 무게 중심을 고려하면서 높이 쌓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종이를 여러 방향으로 접어서 다른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은 수학 과학 기술의 기초가 되는 활동이다. 한국에서는 유아기부터 색종이 접기를 흔하게 하는데, 그것과 한국 사람들의 높은 수학 실력이 상관관계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십진법의 사용이나, 1월 1일에 모두가 한 살씩 나이를 먹는 (그래서 영유아도 자기가 몇살인지 쉽게 기억하는) 문화도 수학 개념 형성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한국에서도 만나이를 사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둘리양과 동갑인 매디에게는 네 살 어린 남동생이 있는데, 함께 온 매디의 부모는 어린 동생을 데리고 다니고, 이제 곧 중학생이 될 매디는 엄마 아빠와 함께 다니는 것보다 친구와 다니며 활동을 하는 것이 더 재미있을 나이가 되었다. 둘리양도 어른의 에스코트 없이 친구와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즐거워할 만큼 많이 자랐다. 자기가 다니는 학교 건물이니 길을 잃을 염려가 없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아는데다, 친구와 함께 있으니 어른이 함께 있을 필요가 없었다.
같은 날 저녁에 블랙스버그 중학교에서 새로 입학할 학생들의 부모를 위한 설명회가 있었는데, 남편은 둘리양 학교 스템 나잇에 참석하고, 나는 중학교 모임에 참석하기로 했다. 중학교 설명회가 스템 나잇보다 30분 늦게 시작하고 15분 먼저 마치기 때문에, 내가 스템 나잇에 가서 사진을 찍어줄 수 있었다. 우리집과 초등학교 중학교 건물이 모두 반경 3분 거리에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둘리양의 사진을 찍어주고, 나중에 집에서 만나자고 인사를 한 다음 중학교로 갔다.
블랙스버그에 소재한 다섯 개 초등학교 졸업생들이 모두 한 학교에 다시 모이게 된다. 전학을 온 이후 길벗링커스 초등학교의 친구들과 잠시 헤어졌지만, 이제 이번 여름 방학이 지나고나면 그 친구들과 모두 다시 한 학교에 다니게 되는 것이다. 설명회에는 둘리양의 옛 친구 부모들과 지금 친구 부모들도 참석했다. 설명회장은 중학교 강당이었는데, 몇 분 일찍 가서 앞자리에 앉아 기다리는데 주주 엄마가 ‘난 지금 네 오른쪽 뒷편에 앉아있어’ 하는 문자를 보내왔다. 뒤돌아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다가 더 멀찍이 앉아있던 주주 아빠와도 눈인사를 하게 되었다. 주주 엄마는 친한 중국인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앉아 있는 반면, 주주 아빠는 모르는 사람들 틈에 혼자 앉아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도 괜찮을지 물었다. 주주의 아빠와 엄마가 이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 나중에는 또다른 길벗링커스 친구인 니알라의 부모를 만나기도 했는데, 이 커플 역시 이혼을 해서 따로 설명회에 참석하고, 나와 각기 따로 마주쳐서 인사를 했다. 생각해보면 이혼은 참 소모적인 일인 것 같다. 아이 학교 설명회는 부모 중 한 사람만 참석하고 나중에 정보를 공유하면 될 것을, 아빠와 엄마가 모두 시간을 할애해서 참석해야 하니 말이다. 같이 참석해서도 따로 떨어져 앉게 되고, 아는 사람을 만나도 따로 인사를 하고… 그래도 이혼과 상관없이 아빠와 엄마 모두가 아이의 교육에 같은 마음으로 임하는 태도는 무척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저만치 이혼한 전배우자가 있어도 별로 상관하지 않고 각기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것이 내게도 처신을 편하게 해주어서 좋았다.
설명회를 주관한 교장 선생님은 20년이 넘게 블랙스버그 중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사실은 자신이 블랙스버그 중학교 졸업생이기도 해서, 학교의 오랜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했다. 다섯 개 초등학교 졸업생이 모이니 한 학년에 300명이 넘고 전교생을 다 합하면 천 명 가까이 되는 큰 규모라서 부교장은 학년별로 배정이 되어 있었다. 교장, 부교장, 상담교사 등의 직원이 간략히 소개와 인사를 하기도 했다.
블랙스버그 중학교 설명회 자료는 여기에: https://docs.google.com/presentation/d/1vOrtJOCg87Myv8R9AwN_Fsb9FJfcGVg_zedHLH0D0LI/edit#slide=id.p4
코난군이 중학교에 입학할 때는 남편이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하고, 나는 어린 둘리양을 보살피는 일을 전담했기 때문에, 이 날 설명회 참석은 경력자인 듯 경력없는 신입인 듯 그런 느낌이었다. 미국의 초중고 교육 시스템을 잘 모르는데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은 주주의 아빠와 엄마에 비하면 나는 확실히 경력자 중학생 학부모이지만, 교장 선생님이 중학교 교육과정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들으니 새로이 알게 된 것이 제법 많았다 🙂
중학교 교장 선생님은 마을의 다섯 개 초등학교 모든 5학년 교실을 방문해서 학교 소개를 하고, 중학교에 대해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둘리양의 초등학교 5학년 교사들은 이번 학기 동안의 수업 스케줄을 중학교와 비슷하도록 조정해서 아이들의 중학교 적응을 돕기로 했다고 들었다. 예를 들면, 하루에 두 번 있던 운동장에서 노는 시간을 하나로 모아 긴 시간으로 바꾸었는데, 중학교에는 운동장에 나가서 노는 시간이 없고 대신에 매일 체육관에서 체육 수업을 받게 된다.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몸을 움직이며 뛰어다닐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단 한 번 50여분 가량의 시간만 허락되는데, 지금부터 그런 스케줄에 익숙해지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혼을 하지 않은 덕분에 한 가족이 두 군데 다른 행사에 참석할 수 있었던 날의 이야기 끝 🙂
2023년 2월 4일